"첫 장편도전 폭풍우 뚫고 나가는 것 같아"

입력 2008. 1. 17. 10:20 수정 2008. 1. 17.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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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 소설가 김미월씨는 첫 장편소설 분재에 중압감을 느끼면서도 "진정한 작가가 되기 위한 단련"이라고 말한다.

"반말로 인터뷰하려니까 기분이 묘해."

지난해 첫 소설집 '서울동굴가이드'를 펴낸 작가 김미월(31)씨는 기자와 동갑이다. 지난해 11월, 송년회 자리 맥주잔 앞에서 "서로 너나들이 하자"고 합의했다.

하지만, 그는 만인에게 높임말 하는 습관이 몸에 뱄다. 손아랫사람에게도 꼬박 존대를 한다. 그에게 타인에 대한 존중은 거의 생래적이라 끊임없이 '반말 협정'을 상기시켜야 겨우 말을 놓았다. 인터뷰는 노력하듯 쥐어짜낸 반말과 공손한 경어가 뒤섞여 진행됐다.

#생애 처음으로 장편에 도전

김씨는 현재 장편소설을 집필하고 있다. 올봄부터 계간지 '세계의문학'에 분재할 예정이다. 데뷔하자마자 빛을 잃는 작가가 수두룩한 시대에 그는 계속 전진하고 있다. 2004년 신춘문예(세계일보)로 등단한 신인이 3년 반 만에 단편집을 묶고, 이어 장편을 연재하는 것은 필력을 공인받았음을 증명한다.

김씨는 사회와 단절된 개인의 고통을 짚어내는 능력과 섬세한 묘사로 주목받았다. 단편 '서울동굴가이드'는 상처 입은 현대인이 서울 한복판의 인공 동굴을 위안처로 삼는 이야기다. 평론가 이광호씨는 그의 작품에 대해 "'개인 낙원의 외톨이'라는 현대의 어두운 그들을 상징한다"고 평했다.

신인 소설가답게 단편만 써온 그는 장편 도전이 히말라야 등반처럼 혹독하게 느껴진다. 마감 압박에 숨막히던 차 "없던 일로 했으면…" 하고 편집자에게 말했다가 된통 퉁바리 맞았다.

현재 그는 강원도 인제 만해마을에 들어가 글쓰기에만 전념한다. 얼개는 대강 짜놨다. 이사를 자주 다니는 20대 중반 여성의 삶을 '방'과 엮어 풀어낼 생각이다. 8곳의 방을 거치면서 주인공의 사랑, 인생관도 다른 향기를 풍긴다.

"강원도 강릉 출신이라 서울에서 타향살이를 꽤 오래 했어요. 어떤 사람에겐 방이 집에 부속된 공간이 아닌 생활의 터전이에요. 대략 밑그림을 그려놓았어도 수월히 써지지가 않네요. 장편의 광범위함, 다양한 인물과 사건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불경을 읽는 자라면 친구가 될 만하지

장편 집필에 전력투구하기 위해 지난달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는 1년 동안 불교 경전 편집자로 일했다. 학승의 에세이를 다듬거나 새로운 불경을 기획 출판하는 일을 맡았다.

김씨는 "참 즐겁게 일했는데…" 하며 아쉬운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에게 불교는 기복신앙이 아니라 세상을 보는 철학이다. 자비심, 인간 감각(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의 실체, 공(空) 사상 등을 가슴 깊이 새긴다. 기자가 '법구경'을 읽는 중이라고 말하자, 크게 반색한다. 그는 활기를 띠며 가장 오래된 경전 '숫타니파타'도 일독해볼 것을 권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장편 '상실의 시대'에선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를 매개로 우정을 맺는 장면이 나온다. 김씨는 불경이 매개다.

가끔 그는 산사를 찾는데, 경내의 석탑, 불상이 친근하게 느껴진다고 한다. 운주사에 잠깐 머물렀을 땐, '석상 아래서 밤을 지새운다면 전혀 무서울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님들이 종종 "머리 깎으면 예쁠 두상이고, 이름 '미월'은 그대로 법명으로 써도 될 듯하다"며 농담 섞어 출가를 권하기도 한단다.

#라디오 출연은 색다른 경험

장편 때문에 속세를 떠나다시피 했지만, 지난 10월부터 해온 라디오 고정 출연은 계속 이어갈 예정이다. 그는 KBS 라디오 프로그램 '문화포커스'(97.3㎒)에서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격주로 소개한다.

"내 목소리는 탁하고, 중성적이라 라디오에 안 어울리는데…. 하지만, 내겐 새로운 경험이에요. 청취자에게 책을 소개해주려면, 적어도 두세 번 정독해야 하죠. 준비하면서 호기심이 촉발돼 스스로 깊이 파고드는 게 좋아요. 지난주엔 무담보 소액대출, 대안기업 관련 책을 읽으면서 경제 분야에 흥미를 느꼈지요. 청취자들이 빠르게 반응하는 것도 재미있고요."

아무래도 장편이 버거운가보다. 그는 "앞으로 라디오 출연이 힘겨워질지도 모르겠다"며 걱정한다. 중압감을 느끼면서도 목소리에서는 조바심과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마음을 주시하고 제어하는 불교 교리에 오랫동안 매료된 까닭이다.

선배 소설가 윤대녕씨의 격려도 큰 힘이 됐다. 그는 "폭풍우가 닥쳤을 때, 몸을 웅크리는 것은 소설가의 처신이 아니다"라며 "압박감을 이기고, 글을 쓰는 것도 작가의 능력"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에겐 이번 장편이 큰 도전이자 기회다. 단단하고, 생명력 있는 작가가 될 수 있을지 자신에게 묻는 '자기 진단'이기도 하다.

"장편을 완성하고 나면 달라져 있을 거예요. 장편이든 단편이든 조금 여유있게 쓸 수 있지 않을까요. 사실 준비 없이 등단한 탓에 그간 습작하듯 단편을 썼어요. 그게 좀 마음에 걸렸는데, 이번 폭풍우를 뚫으면 더부룩한 감정이 가시겠죠."

이제 막 프로 작가로 한발 내디딘 그에게 수행자의 각오가 언뜻 비친다.

심재천 기자 jaysh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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