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아무도 기억 못하는 'MB물가지수'

입력 2010. 9. 19. 18:46 수정 2010. 10. 1.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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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농축수산물 관리 어려워 2년전 도입초 논란 10개월만에 폐기

추석을 앞두고 채소값이 치솟고 있다. 9월 2일 정부는 경기도 구리농수산물시장 3층 대회의실에서 '추석 민생과 서민 물가 안정 방안'을 확정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새벽 구리농수산물 시장을 방문해 상인들과 만났다. 이날의 '서민행보'에 대한 서민들 반응은 오히려 아우성이다. "불과 한두 달 전만 하더라도 구입할 수 있었던 물품의 절반도 같은 돈으로 구입할 수 없다"는 하소연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연이은 채소값 폭등으로 다시 상기하게 되는 이명박 정부의 '친서민정책'이 하나 있다. 바로 'MB물가지수'다. 언제부터인가 이 지수는 더 이상 거론되지 않고 있다. 배추나 무, 마늘 등 지금 폭등하고 있는 채소류의 대부분은 이 'MB물가지수'의 물가 집중관리 52개 품목에 속해 있다.

「Weekly경향」은 'MB물가지수' 선정 이후인 2008년 4월부터 지난 9월 2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0년 10월까지 누적그래프를 작성해봤다. 통계청의 자료에는 두달치의 통계밖에 실려 있지 않다.

현재 폭등양상을 보이고 있는 배추, 무, 파, 양파, 마늘 등의 그래프 등락폭은 컸다. 특히 배추는 올해 3월, 2005년 대비 236.5% 상승이라는 기록적인 수치를 나타냈다(그래프1 참조). 상대적으로 경유, LPG, 등유, 휘발유 등 석유류는 일정한 비율을 유지했다. 특히 한때 200% 넘게 치솟았던 밀가루는 140%대로 안정화되었다(그래프2 참조). 하지만, 그래프로만 봤을 때 52개 물가지수는 '관리되고 있다'는 흔적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앞의 농산물의 경우 최근 상승세가 심상찮다. MB물가지수가 발표된 이래 최대의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것은 8월까지의 양상이다. 9월 들어 벌어진 최근 폭등양상을 반영하면 그래프는 더 가팔라질 것으로 판단된다. 정부는 관리를 포기한 걸까.

"기상이변이 채소값 폭등 근본원인"

"전화 잘하셨다. 조금 설명이 길 텐데 괜찮겠습니까." 이억원 기획재정부 물가정책과장은 'MB물가'의 탄생 배경에서부터 시작해서 최근의 농산물 폭등 원인에 관해 자세히 설명했다. "가장 주의 깊게 봐야 하는 것은 물가를 안정시킨다고 할 때 정부가 컨트롤·화시킬 수 있는 부분은 어떤 것이냐는 것이다."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계약재배를 한 농협 물량의 일부를 구매, 출하시기를 조절하는 방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급량을 늘리는 것은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농축산물의 경우 원래 변동성이 심하다. 게다가 최근의 가격 폭등에는 기후변화 문제가 맞물려 있다. "올 겨울에는 폭설이 와서 망가지고 봄에는 이상기후로 냉해가 있었다. 고랭지 배추는 5월과 6월, 장마가 오니까 속이 물러졌다. 과실의 경우 최근 태풍 곤파스 등으로 인한 피해가 가격 폭등의 원인이다." 이 과장은 실제 서민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볼 때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유가 관련 지수라고 밝혔다. "그때(MB물가지수를 만들 때) 상황을 알아야 한다. 당시는 고유가 상황이었다. 석유는 그래도 유통구조를 많이 개선했다. 휘발유가격이 70달러에서 140달러로 2배로 뛸 때, 세금을 깎고 오피넷이라고 소비자들이 주유소 가격비교를 할 수 있는 사이트를 만들어 경쟁하는 구조를 만들어냈다." 그렇다면 무·배추 등 채소류는? "사실 사전에 기상이변을 발생하지 않게 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 아니냐. 그런 것을 미리 예측해서 농림부에 어떤 품목을 더 많이 지어라, 이렇게 지시할 수도 없는 것이고…."

북한이나 과거 사회주의 사회처럼 배급경제가 아닌 이상 농산물의 가격관리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은 관련 학자들도 동의한다. 그렇다면 52개 관리품목에는 왜 포함시켰을까. "처음부터 말도 안되는 조치였다. 조금 심하게 말한다면 일종의 사기였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이근식 서울시립대 경제학과 교수의 말이다. 그는 "MB가 관리가 안된다는 것을 모르진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시를 내렸을 때는 가능하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옆의 관료들이 다 그런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강행한 것은 국민들에게 서민들을 위해 뭔가 한다는 시늉을 내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

'MB물가지수'의 탄생 배경은 이렇다. 2008년 3월 17일,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지식경제부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내린 '생활필수품목 50개 집중관리 지시' 발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이 대통령의 '발언'에서 드러난 '구상'을 보자. "생필품에 해당하는 품목 50개를 집중적으로 관리하면 전체 물가는 상승해도 50개 품목은 그에 비례해서 올라가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정부 MB물가지수 관리 포기?

결국 기획재정부가 총대를 멨다. 하루 뒤, 기획재정부는 국내 생활물가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로 50개 품목 인덱스를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10일 뒤 국무회의를 통해 확정된 정부 관리 생필품 리스트는 2개가 늘어나서 52개가 되었다. 당시 정부가 이 항목과 관련해 정한 방침은 △열흘마다 가격동향을 집중 모니터링 △매월 1일 소비자물가지수 발표 후 서민생활안정 태스크포스(TF)를 통해 가격동향 집중 점검을 하는 동시에 "할당관세 인하, 유통구조 개선, 시장경쟁 촉진을 통해 가격안정을 꾀할 계획"이었다. 'MB물가지수'는 그러나 도입 초기부터 논란이 되었다. 시대착오적인 관치경제가 아니냐는 지적이 주였다. '집중관리품목 52개'가 오히려 물가인상을 주도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그리고 지난 2009년 1월. 노컷뉴스는 "기획재정부가 MB물가지수를 지난해(2008)말 공식 폐기한 것을 확인했다. 실효성 논란 때문에 연장하지 않은 것"이라고 보도했다. 최종적으로 실패했다는 것이다.

기획재정부는 노컷뉴스 보도에 대해 "해당 대통령 지시사항은 이행이 완료되었기 때문에 종료하였으며, 52개 품목에 대한 점검은 폐기된 것이 아니라 종전과 같이 지속될 것"이라고 '보도해명'했다. 그런데 기획재정부가 밝힌 대통령 지시사항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서민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품목 선정 △해당 품목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방안 마련. 그런데 이것은 조금 이상하다. 기획재정부 주장대로라면 2008년 3월 'MB품목 52개'가 확정되고 열흘마다 가격동향 모니터 등의 방침이 나오면서 이미 9개월 전에 종료된 것이다. 어쨌든 기획재정부 말마따나 통계청이 매월 발표하는 '소비자물가동향'의 통계표 3번 항목이 바로 이 '52개 주요 생필품 소비자 물가 동향'이다.

'농산물 가격 폭등'에서 단기 처방을 제외하고 정부가 내놓을 수 있는 정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위평량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은 "미시적 정책보다는 정책기조의 문제를 봐야 한다"며 "과도한 성장추진 정책이나 '기업 프렌들리' 환율 정책의 용인이 생활물가 폭등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말했다. 생활물가 폭등의 기저에 깔린 문제가 이명박 정부의 환율과 금리정책이라는 것이 학자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홍종학 경원대 경제학과 교수는 "물가를 잡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화폐량을 줄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거시경제적 측면에서 물가가 불안정한 근본적인 이유는 정부가 환율을 인위적으로 낮춰 놓아 원화가치를 떨어뜨려 놓으니 대체재인 해외 수입농산물이 비싸진다는 것이다. 정부의 환율정책은 물가를 낮추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높이려는 것이 근본 문제라는 지적이다. "모든 정책은 물가를 높이는 방향으로 해놓고, 대통령이 TV에 나와 '물가에 신경을 써라, 특정상품을 집중 관리하라'는 것은 말이 안된다. 관리는 무슨 관리인가. 할 수도 없거니와 해도 소용없는 것이다. 관리를 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관치이고 반시장경제인데…."

MB물가지수 '보수'는 왜 침묵했을까

'시장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유주의 혹은 보수 진영의 생각은 어떨까. 김영용 한국경제연구원 원장은 "52개 MB물가지수는 처음부터 만들 필요가 없었다"고 말했다. 경제학 교수였던 그는 뉴라이트바른정책포럼 공동대표를 역임했었다. "정부가 개입하고 규제가 들어가는 순간, 시장은 왜곡된다. 정부가 만약 물가를 통제하려 들면 결국 억지로 가격을 묶어놓는 것인데, 그러면 물량이 조달이 안돼 다시 폭등하는 악순환이 생기게 된다." 자유기업원의 최승노 박사는 "물가를 관리하겠다고 하는 것은 오만"이라며 "생산성을 높이거나 개방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규제를 풀어 허가해주는 방식이어야 하지 '관리물가'는 바람직한 방법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궁금하다. MB물가지수가 나올 당시, 관리를 반대하는 보수·자유주의 진영에서 '시장의 왜곡'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었을까. 경제정책에 관한 보수진영의 목소리를 대변해온 자유기업원과 바른사회시민회의의 성명서·논평을 검색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의견 표명은 없었다. 보수정권이 보수주의에 걸맞지 않은 행보를 보일 때 감시하는 보수의 목소리가 없었던 것이다. 자유기업원 최 박사는 "당시에 이야기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안타까운 부분이 있다"고 덧붙였다. 바른사회시민회의의 전희경 정책실장은 "우리가 모든 사항에 대해 논평을 내는 것은 아니다"라며 "MB물가지수와 관련해 만약 정부가 구체적인 액션플랜을 발표하고 실행에 옮겼다면 시민단체로서 모니터링을 했겠지만 그런 것은 없지 않았느냐"고 반론했다. 다시 말해 'MB물가지수'와 관련해 정부가 실제적으로 '관리'한 것이 없기 때문에 대응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지금 서민들이 농산물 폭등으로 체감하고 있는 생활물가 폭등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전망은 우울하다. 경제개혁연대 소장을 맡고 있는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는 "9월 9일 한국은행이 금리를 동결시킨 것과 연결시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농산물이 워낙 컨트롤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의 저금리 고환율 정책패키지를 갖고는 정부가 오히려 생활물가 상승을 부추기는 정책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

사실 물가안정과 관련, 정부가 단기적으로 탄력있게 운용할 수 있는 정책은 금리밖에 없는데, 한국은행이 이번에도 금리를 동결하는 조치를 취한 것은 향후 물가나 자산버블, 구조조정에 미치는 악영향이 클 것이라는 게 김 교수의 진단이다.

취재를 진행하면서 기자는 MB물가지수 발표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과 경제비서관실 방에도 「Weekly경향」이 이번에 작업한 <mb가지수 누적그래프 현황표>를 만들어 붙여놓고 있었다는 보도를 접했다. 아직도 청와대에는 MB물가지수 그래프가 붙어 있을까. 대변인실에 문의했다. 지금은 그런 그래프가 없다. 대변인실 관계자는 "초기에 잠깐 붙여놓았던 것 같고, 어차피 통계청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게 아니냐"고 말했다. MB물가지수를 통한 물가관리가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은 이제는 청와대에도 남아있지 않은 것 같다.

채소값 파동, 4대강 사업 때문?

이번 채소값 폭등사태를 두고 인터넷 등에서 제기되는 주장이 "채소값 폭등의 근본원인은 4대강 사업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정부가 4대강 살리기를 하겠다고 하천부지 농사를 정리시켰는데, 하천부지 농사의 대부분이 바로 이번에 가격이 폭등한 채소류라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사실일까.

한 가지 기준이 될 수 있는 자료가 있다. 민주당 정범구 의원이 국토해양부에 요구해 받아낸 '4대강 사업으로 사라질 농경지 현황' 자료다. 자료에 따르면 지난 5월 말 현재 4대강 살리기에 편입되는 경작지 면적은 5952만㎡이며, 이 중 80.6%인 4767만㎡가 하천 내 경작지다. 흔히 비교기준으로 삼는 여의도 면적의 약 31배 면적이다. 그러나 국토해양부는 같은 자료에서 "이 면적은 전국 농경지 면적의 0.3% 정도"라고 강조하고 있다. 즉 다시 말해 4대강 사업으로 수용되는 경작지에서 더 이상 재배되지 않을 채소류 등이 실제 농산물 가격 시장변동에 끼칠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는 게 국토부 자료가 깔고 있는 함의다. 정범구 의원실 관계자는 "올해 (정부 쪽 주장처럼) 작황이 전반적으로 좋지 않다는 것은 인정한다"면서도 "올해 헥터당 수확량을 알아보고 지난해 작황 기준으로 봤을 때 4대강 사업 수용으로 인한 공급 저하가 어느 정도 되는지 관련 데이터를 모으는 중"이라고 밝혔다. 4대강사업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는 운하반대교수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경제학 박사)는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긴 하지만 그런 의구심은 이전부터 제기되어 왔다"며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예컨대 영산강의 경우 미나리 집산지가 이 사업에 수용되면서 공급 부족으로 폭등이 올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이어 "이를테면 정부가 4대강 사업의 경제적 타당성 조사를 하면서 농지수용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나 경제적 비용을 상당히 중요한 항목으로 고려했어야 하지만 그런 비용은 타당성 조사에서 빠졌다는 점에서 처음부터 타당성 산정이 엉터리였다는 점도 지적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정용인 기자 ing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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