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찬호의 시선] "임종석, 이젠 불편해져야" .. 추미애는 억울하다

강찬호 2018. 8. 23.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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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지난 1년여간 여당 패싱하고 독주"
할 말 할 수 있는 이해찬을 대표로 적극 밀어
강찬호 논설위원
지난해 7월 12일. 국민의당 박주선 비상대책위원장 방에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전병헌 정무수석(당시)이 찾아왔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제보 조작’ 의혹에 휘말린 국민의당에 대해 ‘자연 소멸할 당’ 등 날 선 말을 써가며 맹공한 직후였다. 격분한 국민의당이 “‘추’자가 들어간 건 무조건 안 된다”며 정부의 추경안 보이콧을 선언하자 놀란 청와대가 임종석을 ‘진사 사절’로 급파한 것이었다. 임 실장은 “죄송하다. 누가 봐도 잘못됐고…”라고 운을 뗐다. 박주선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사과하러 왔으면 진실하게 하시오. 도대체 누구의 잘못에 대해 사과하는 거요?” 임종석은 “추미애 대표”라고 실토했다. 그제야 박주선의 표정이 풀렸다. “사과는 그렇게 하는 거지…”

그런데 청와대는 이 상황을 브리핑하면서 “임 실장이 추 대표를 언급한 바 없다”고 해 국민의당을 격분시켰다. 그러자 임종석은 박주선에게 전화해 “혼선이 있었다. 죄송하다. 추 대표 잘못을 사과드린 게 맞다”고 재차 확인했다. 청와대발 ‘추미애 패싱’의 대표 사례다.

금주 말 민주당 대표에서 물러나는 추미애는 이례적으로 2년 임기를 다 채우고 물러나는 행운의 대표다. 임기 중 대선과 지방선거, 재보선을 몽땅 승리로 이끌어 초유의 3관왕 기록도 세웠다. 그러나 욕을 본 일도 많다. 가장 큰 욕은 정치력 부족과 과격한 언행 탓에 청와대의 ‘패싱’을 당한 끝에 당의 존재감을 잃게 한 장본인이란 것이다. 하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추미애가 억울한 측면도 많다. 아무리 집권 초라 해도 청와대가 여당을 투명인간 취급하고 독주한 정황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추미애 주변 인사들 사이에서 들은 말이다. “(문 대통령이 집권한) 지난 1년 3개월 동안 추 대표와 민주당은 없었던 거나 마찬가지다. 청와대는 우원식 원내대표 등 편한 사람들과만 직거래하며 당을 허수아비로 만들었다. 추미애가 바보라 가만있었겠나. 지방선거 앞두고 아군끼리 싸우는 모습 보이면 안 된다는 충정에 참은 거다. 대신 당·청 간에 물밑에서 드러나지 않게 협의할 건 하자는 거였다. 한데 (청와대는) 그마저 건너뛰고 독주했다. 그러니 사고가 안 날 수 있나.”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이 말이 맞는지 우원식 원내대표 시절(2017년 5월~18년 5월) 그의 대야 협상을 지켜본 정치인들에게 물어봤다. 대충 일치했다. “우원식과 협상하면 짜증이 나 돌아버릴 지경이 된다. 우선 대통령 관심사인 개헌 등 청와대 관련 사안이 나오면 우원식은 무조건 한병도 정무수석이나 임종석에게 물어보더라. 본인이 아무 결정을 못한다. ‘조금만 양보하라’고 요구하면 나가서 청와대에 전화하든지, ‘다음에 얘기하자’며 자리를 뜬다. 후임인 홍영표 현 원내대표는 친문 실세라 그런지 대화가 된다. 드루킹 특검도 그래서 통과된 것이다. 여당 원내대표가 지금도 우원식이었으면 절대 안 됐을 거다.”

추미애가 청와대가 불편해하는 것으로 알려진 이해찬을 차기 당 대표로 미는 이유도 여기서 나온다. 추미애는 이해찬이 당 대표 출마를 망설이고 있을 때 강력하게 출마를 권유했다. 또 주변 민주당 정치인들에게 이해찬 지지를 적극 권유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추미애 주변 인사들 사이에서 들은 얘기들이다.

Q : 왜 추미애는 이해찬을 미나.

A : “그가 대표가 돼야 당이 잘 되고, 정부도 제대로 일할 환경이 조성돼 성공할 것이란 판단에서다.”

Q : 그러나 문 대통령과 청와대는 대선배인 이해찬이 대표가 되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듯한데.

A : “(단호한 목소리로) 추 대표는 (대권 도전 등) 본인의 향후 목표가 있기에 청와대의 독주를 참아줬다. 그러나 이해찬은 당 대표가 마지막 자리라 무서울 게 없다. 그러니 청와대가 겁먹은 것이다. 하지만 겁먹을 필요 없다. 청와대는 일만 잘하면 된다. 일 못하면 당이 조용히 불러다 타이르는 것이고.”

Q : 당장 임종석 실장과 이낙연 총리부터 이해찬이 대표가 되면 불편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A : “(더 단호한 목소리로) 당연히 불편해져야지! 당에 편한 사람 앉혀놓고 ‘형님’ ‘아우’ 소리나 해가면서 국정을 자신들 편한 대로 끌고 갈 때인가. 이젠 청와대가 당 대표 권위를 인정하고 힘을 실어줘야 한다. 청와대 비서실장이나 정무수석이 백날 야당과 만나봐라. 뭐 하나라도 되겠나"

Q : 청와대가 ‘협치’를 한다고 박지원·박선숙 등 야당 평의원들을 만나 장관직 주는 문제를 논의했다는 얘기가 있는데
A : “사실이라면 여당을 배제하고 야당 공식 라인도 건너뛰어 ‘비선 대화’를 한 것 아니냐. 그래서 성공할 수 있겠나.”
요즘 민주당은 ‘끓는 물 속 개구리’ 신세다. 가랑비에 속옷 젖듯 지지율이 추락을 거듭해 30%대까지 떨어졌다. ‘청와대 거수기’를 넘어 ‘ATM(현금자동입출금기)’이라 불릴 만큼 당의 존재감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해찬의 전당대회 출마와 추미애의 이해찬 지지는 당의 이런 현실에 위기의식을 느끼고 ‘정부와 청와대에 할 말이 있을 때는 하는 여당’으로의 변신을 원하는 세력이 늘어났음을 보여주는 징후일 수 있다. 전당대회 이후 민주당과 청와대의 관계가 어떻게 달라질지 정치권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다.

강찬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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