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한채 40대 "투기꾼도 아닌데 왜 세금 많이 내야하나"

황의영 입력 2018. 9. 14. 00:13 수정 2018. 9. 14.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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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축 투자 70대 "집 팔 퇴로 막혀"
온라인엔 "세금뜯기 정책" 비난 글
전문가 "매물 품귀 거래 절벽 올 것
집값 안정될 가능성 크지 않아"

[9·13 부동산 대책] 요동치는 민심
정부가 주택시장 안정 대책을 발표한 13일 오후 서울의 한 공인중개사 사무소에서 직원이 부동산 대책 발표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뉴스1]
“큰불은 껐지만, 잔불이 여전하다.”

‘9·13 부동산 종합대책’에 대한 고준석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장의 진단이다. 세제·대출 규제가 강화되면 단기적으로 주택 수요가 줄겠지만 공급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집값을 안정시키는 데 큰 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얘기다. 종합부동산세 세율 강화 등으로 ‘세금 폭탄’을 맞는 다주택자·은퇴자를 중심으로 대책에 대한 반발도 크다.

이번 대책은 다주택 보유자에 대해 주택분 종부세 최고세율을 참여정부 수준 이상인 최고 3.2%로 중과하고, 세 부담 상한을 150%에서 300%로 올린다는 게 골자다. 이렇게 되면 세 부담이 급격히 높아져 주택 수요 위축이 불가피하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강력한 수요 억제책”이라며 “공포에 가까운 심리를 조장해 주택 추가 구매를 막고 투기 수요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1주택 이상 보유자가 규제지역 내 신규 주택 구매를 목적으로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게 된 것도 시장엔 악재다. 이남수 신한은행 PB팀장은 “돈줄을 철저히 옥죄겠다는 의미로, 대출을 활용해 집을 사려는 움직임에 제동이 걸릴 것”이라며 “특히 공시가격 9억원이 넘는 주택은 사지 말라는 신호”라고 말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집값 고점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예상보다 강도 높은 대책이 나와 서울·수도권에선 집값 상승세가 둔화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당장 다주택자를 중심으로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서울 강남구에 재건축 단지 2채를 보유한 최성덕(71·가명)씨는 “금융소득 외에 소득이 없는데 세금만 갈수록 느니 미칠 지경”이라며 “집을 팔 수 있는 퇴로를 열어 주고 규제를 해야지 다주택자가 무슨 죄인이냐”고 말했다. 8·2 대책에 따른 재건축 조합원 지위 양도 금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로 인해 보유한 주택을 팔고 싶어도 못 판다는 얘기다. 송파구 잠실동 전용 84㎡ 아파트에 사는 ‘1가구 1주택자’ 이모(40)씨는 “투기꾼도 아닌데 왜 이렇게 많은 세금을 내야 하는지 납득이 안 간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집값이 올랐다고 해도 집을 팔아 차익을 얻은 것도 아니고 10년 전 결혼할 때 대출을 최대한 끌어다 내 집을 마련해 살고 있는데 이젠 빚내서 세금을 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이날 인터넷 부동산 카페 등에도 “이건 부동산 대책이 아니라 세금 뜯기 대책이다” “소득은 줄었는데 세금만 늘어나는 것 아니냐” 등의 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한편으로는 중·장기적으로 집값이 내려갈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집값이 안정되려면 시중에 매물이 나와야 하는데, 최고 62%에 달하는 양도세 중과 때문에 다주택자들이 매물을 내놓기 어렵기 때문이다. 김규정 NH투자증권 부동산연구위원은 “강남 등 고가주택 보유자나 다주택자의 매도를 유도할 만한 정책이 없어 매물이 늘거나 집값이 안정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강남구 대치동 제이스공인중개업소 정보경 대표는 “매물 품귀 현상이 심해지면서 ‘거래 절벽’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세 부담에 따른 매물도 많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익명을 원한 시중은행 PB는 “전세보증금을 끼고 집을 산 ‘갭 투자자’나 중산층은 매물을 내놓을 수 있지만 고액 자산가들은 ‘움찔’하는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했다.

종부세율 인상이 내년에 적용되고, 근본적인 공급 확대 정책이 없다는 점도 시장이 꺾이지 않을 것으로 보는 이유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세금으로 부동산 시장을 잡는 건 한계가 있다”며 “재건축·재개발 규제를 풀어 도심에 주택 공급을 늘리지 않는 이상 중·장기적으로 집값은 우상향할 것”이라고 말했다.

황의영 기자 apex@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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