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 여성 왜 도와야 하냐고요? "사회적 약자 외면한 대가" [더(The)친절한 기자들]

이정하 2018. 9. 24.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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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The) 친절한 기자들][더(the) 친절한 기자들]성매매 피해자 자활지원 논란
인천 성매매집결지 '옐로하우스' 연내 폐쇄
종사 여성 "착취의 악순환 반복..빚만 쌓여"
"불법 행위자에 혈세 지원" 논란 있지만
혼자 힘으론 못 벗어나..자활 지원 불가피
성매수자 강력 처벌 '노르딕 모델' 도입해야
담다 전시회’ 한편에 성매매업소 내부를 재현해 놓은 공간.

인천의 마지막 성매매 집결지인 미추홀구 숭의동 ‘옐로하우스’. 일제 강점기 중구 선화동에 있던 기생집을 1962년 군사정권이 강제 이주시킨 곳입니다. 옐로하우스라는 이름은 1970년대 미군 부대에서 노란색 페인트를 얻어다가 외벽을 칠한 데서 붙여졌습니다. 2000년대 90곳에 달했던 성매매업소는 현재 10~15곳으로 줄어 연내 도시정비사업으로 모두 철거될 예정입니다.

■ 문닫을 옐로하우스의 종사자 자활 지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이곳을 기록한 전시회가 17~21일 인천수봉문화회관에서 열렸습니다. 2003년부터 반성매매 활동을 펴는 단체인 ‘인권희망강강술래’가 ‘옐로하우스 보다, 듣다, 담다’를 주제로 여성 인권이 착취당한 역사를 기록으로 남기고자 기획한 전시입니다. 빛바랜 업소 안팎 풍경과 종사자들의 일상을 그대로 담은 사진과 함께 성매매 종사자의 생활공간을 그대로 재현한 공간도 마련됐습니다.

듣다

인권희망강강술래가 옐로하우스 종사자 5명의 이야기를 담아 펴낸 자료집을 보면, 여성들은 “ㅇㅇ호 집 ㅇㅇ”으로 불렸으며, 여성의 몸은 남성들에게 쾌락을 주는 성적도구이자 착취의 대상일 뿐이었습니다. 포주가 알선 수수료 명목으로 화대(성매매 대가)의 절반을 떼어갑니다. 옷값 등 각종 구매대금으로 떼어가고, 월세 명목으로 50만원, 심지어 아파서 일을 쉬면 벌금으로 하루 30만원을 내야 한다고 합니다. 현재 옐로하우스에 남은 종사자들은 70여명가량입니다. 30대부터 60살을 훌쩍 넘긴 여성들도 있습니다. 종사자들은 온갖 형태의 채무 등으로 빚만 쌓여 이곳을 떠나지 못합니다.

이들 여성은 옐로하우스가 폐쇄되면 더는 갈 곳도 없습니다. 그래서 미추홀구는 이들의 사회 복귀를 돕는 조례를 제정하고, 내년부터 1인당 최대 2260만원을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이곳 종사자가 ‘탈성매매 확약서’와 ‘자활계획서’를 제출하면 생계비 월 100만원, 주거지원비 700만원, 직업훈련비 월 30만원씩을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 여성들의 성매매 재유입을 방지하고 사회로의 복귀를 돕기 위한 것입니다.

20일 인천 미추홀구 수봉문화회관에서 열린 ‘옐로하우스 보다

■ 불법 행위자에 혈세 지원 비난도 그러나 시행 전부터 ‘불법 성매매 행위자에게 혈세는 지원해선 안 된다’는 비난 여론이 급속도로 퍼지면서 시행규칙이 공포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조례 제정 반대 청원이 잇따랐고, 미추홀구에도 비난 민원이 빗발쳤습니다. 조례 제정 반대하는 이들은 ‘도심 속 흉물’이 사라져야 한다는데 공감하면서도 “성매매 단속은 하지 않으면서 불법 행위 종사자에게 수천만원의 국민 혈세를 주는 것은 부당하다”고 성토했습니다. 이들은 종사자를 비난하면서 ‘인신매매처럼 강제성이 없이 제 발로 성매매에 나선 여성’을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옐로하우스를 직접 방문해 종사자를 만나 그들의 생활상을 지켜보고, 삶의 여정을 들여다본 서은미 작가의 말은 달랐습니다. 서 작가는 “착취에서 착취로 이어져 종사자들이 돈을 벌 수 없는 구조였다. 종사자 대부분 각종 폭력과 고리사채의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결국 인생의 마지막 종착지 같은 이곳으로 내몰린 사람들이다. 감금된 상태는 아니지만, 사실상 세상과 단전될 생활을 하면서 몸과 마음이 모두 피폐해진 상태였다”고 전했습니다. 이어 “일부에서 종사자 자활지원 반대하는 것은 우리사회가 그동안 이런 사회적 약자들을 외면한 대가”라며 “이제는 우리사회가 보듬을 때”라고 덧붙였습니다.

인천 마지막 남은 성매매집결지 숭의동 옐로하우스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노파가 앉아 있는 의자. 인권희망강강술래 제공

옐로하우스 종사자의 자활 의지도 강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인권희망강강술래 부설 희희낙락상담소 정미진 소장은 “뉴스를 보고, 자활지원에 희망을 갖고 문의하는 분들이 많다”며 “이들의 자립을 도와야 다시 성매매로 유입되는 것을 차단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 상징적 공간 없애려면 인천 옐로하우스뿐 아니라 대구, 전주 등 성매매 집결지가 있는 다른 지역에서도 성매매 종사자 자활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대구시의 경우 성매매집결지인 속칭 ‘자갈마당’ 일대 정비사업을 추진하면서 지난해부터 자갈마당 성매매 여성 자활을 위해 1인당 최대 2000만원의 예산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자갈마당 성매매업소 37곳에서 110여명의 종사자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대구시는 이 가운데 55%에 해당하는 61명과 상담을 진행했고, 이중 33명이 현재 자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자활에 나선 여성들은 주거비 700만원, 직업훈련비 300만원, 생계비 매달 100만원(10달 지원) 등을 받을 수 있습니다. 33명 가운데 7명은 직업 훈련을 통해 취직에 성공했습니다.

20일 대구백화점 앞에서 여성인권 활동가들이 성매매특별법 시행 14주년 기념 성매매 근절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대구여성인권센터 ‘힘내’ 상담소 제공

성매매집결지 폐쇄와 집결지 종사자 자활지원만으로는 성매매를 근절할 수는 없습니다. 전국 56곳에 아직 성매매집결지가 남아있고, 버젓이 영업행위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반성매매 단체들은 정부가 성매매를 불법으로 규정하면서도 정작 단속보다는 감염병 등을 관리하는 형태의 이중적 정책을 펴 성매매를 묵인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전체 성매매 가운데 성매매집결지를 통한 불법행위는 10% 수준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성매매집결지라는 상징적인 공간을 없애고, 그곳의 종사자가 성공적으로 자립하면 성매매에 대한 인식 개선 효과가 크다고 전망했습니다. 성매매집결지는 이른바 업소에서 입는 ‘홀복’을 입혀 유리 벽 안에 전시해 여성을 상품화하고, 돈을 지불하고 성을 거래하는 상징적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대구여성인권센터 ‘힘내’ 상담소 제공

■ ‘노르딕 모델’ 도입으로 성매매 수요 끊어야 전문가들은 성매수자와 업주를 강력히 처벌해 성매매 수요를 차단하는 유럽의 ‘노르딕 모델’ 도입이 필요하다고 조언합니다. 자갈마당 여성 상담 및 자활 지원사업을 펴는 대구여성인권센터 ‘힘내’ 상담소 정박은자 부소장은 “성매매특별법의 핵심은 성매수자를 없애 성매매를 차단하는 것”이라며 “수요가 없어져서 성매매업소 스스로 문을 닫는 형태로 가려면, 결국 성매수자와 업주, 건물주를 강력히 처벌하는 구조로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고 꼬집었습니다.

인천 미추홀구는 우선 내년 1억원가량의 예산을 세워 자활 사업을 진행할 방침이지만, 예산 편성 과정에서 또 진통이 예상됩니다. 앞서 성매매집결지 종사자 자활지원에 나선 대구시는 미추홀구에 흔들림 없이 사업을 추진해야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조언했습니다. 대구시 관계자는 “종사자 역시 ‘정부가 우리를 보호해주지 않는다’는 강한 불신을 갖고 있어서 신뢰관계가 형성되지 않으면 자활 프로그램 자체가 어렵다”며 “반대 여론이 있지만, 그래도 종사자들이 사회로 복귀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도록 기회를 줘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글·사진 이정하 기자 jungha98@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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