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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읽다]풍등, 위험한 놀이

김종화 2018. 10. 11.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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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에서 매년 열리는 '소원풍등 날리기 행사'에서 수많은 풍등이 하늘로 날아가는 모습. 저 많은 풍등이 날아가 떨어지는 곳은 어디일까요. [사진=유튜브 화면캡처]

[아시아경제 김종화 기자]지난 7일 풍등(風燈)이 국가기간시설인 저유소를 홀라당 태워버렸습니다. 풍등에 대한 위험성은 그동안 야생동물보호단체 등을 통해 꾸준히 제기돼 왔지만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수년 전부터 휴가나 여행지에서 폭죽놀이에 식상한 사람들이 불붙은 등을 하늘로 날리는 풍등에 재미를 붙입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풍등을 날린 사진이나 동영상이 꾸준히 올라오자 유튜브에는 풍등 만드는 방법도 게시되기 시작합니다. 풍등이 놀이처럼 유행을 타면서 이를 체험하려는 사람들로 풍등축제를 여는 몇몇 지방자치단체는 즐거운 비명을 지르기도 합니다.

풍등은 대나무와 한지로 만든 등을 하늘로 띄워 누구의 등이 오래 버터는지를 겨뤘던 '등싸움'을 벌인 행위에서 유래됐다고 합니다. 임진왜란 당시 군이 연락용 신호로 사용했고, 최근에는 축제에서 소원을 적어 하늘로 날리는 행사에 동원됐습니다.

풍등이 뜨는 원리는 기구가 뜨는 원리와 같습니다. 등에 불을 붙이면 등 내부의 공기가 데워지면 등 안에 있는 공기의 운동이 활발해지면서 공기밀도가 작아져 등이 떠오릅니다. 다시 말하면, 뜨거운 공기는 찬공기보다 가볍기 때문에 등 아래서 유입되는 찬공기보다 위로 가려고 하면서 등이 떠오르는 것입니다.

요즘은 풍등을 아예 비닐로 만들고, 연료도 잠시 타다가 마는 알코올 솜이 아닌 오래타는 고체연료나 촛불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생각보다 멀리 날아갑니다. 큰 나무에 걸리거나 전선에 걸려 위험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지요.

이번 화재처럼 저유소에 떨어진 풍등이 화재의 원인이 될 수 있을까요? 충분합니다. 주유소에서 주유하면서 담배 피우는 분 안계시죠? 왜 그럴까요? 주유 과정에 새어나오는 기체인 유증기로 인해 화재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내 소원을 실어 하늘로 날린 풍등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면 날리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요. [사진=유튜브 화면캡처]

이번 저유소 화재도 저유소 부지의 잔디에 떨어져 잔디를 태우고 남은 불씨가 저유탱크의 유증환기구를 통해 탱크 내부로 옮겨 붙었기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물론 저유소 정도의 시설이라면 유증기를 처리하는 안전장치가 별도로 설치돼 있었겠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안전장치 작동이 부실했던 것으로 드러났지요. 다행이라면 바로 곁에 있던 저유소는 이런 안전장치들 덕분에 화재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새삼 화재에 대한 안전장치와 대응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우쳐준 사건이기도 합니다.

이번 화재에서처럼 문제는 풍등이 하늘로 날아간 이후에 벌어집니다. 바람에 따라 멀리 날아갈 수도 있고, 가까운 곳에 떨어질 수도 있겠지요. 중요한 것은 어디든 떨어질 수 있고, 떨어진 곳은 피해를 당한다는 것입니다. 2013년 충남 논산에서, 2015년에는 강원도 동해에서, 2016년에는 경남 창원에서 정월대보름 행사에서 날린 풍등이 인근 마을에 떨어져 불이나 적잖은 재산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올해도 부산에서 주민들이 날린 풍등으로 초대형 산불이 났습니다. 그러나 풍등을 날린 사람이나 행사 주최측에 대한 대한 처벌은 없었습니다. 현행법에는 불장난, 모닥불, 흡연 등은 화재 예방상 위험행위로 규정돼 있지만 풍등을 날리는 행위는 위험행위에 들어있지 않아서 입니다.

야생동물들이 입는 피해도 만만치 않습니다. 땅이나 바다, 숲으로 떨어진 풍등이 먹이인 줄 알고 달려든 야생동물이 철사에 목과 위가 찔려 죽습니다. 또, 다리나 몸통이 철사에 끼어 움직이지 못하거나 날개가 타 죽는 경우도 많습니다.

지난해 11월 영국 왕립동물학대방지협회(RSCPA)는 풍등의 철사에 끼인 채 죽은 올빼미의 사진을 공개하면서 풍등금지를 강력하게 요청했습니다. 국내 동물보호단체인 애니멀아리랑도 풍등금지를 위한 조례 개정과 행정조치를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풍등으로 인한 산불이 적지 않습니다. [사진=유튜브 화면캡처]

이런 분위기에 따라 영국이나 미국, 태국 등은 풍등날리기를 자제하고 있습니다. 영국은 50개 지자체에서 풍등날리기를 금지했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동남아의 풍등축제인 '러이끄라통'도 산불위험 등으로 점점 없애거나 축소되는 분위기입니다. 인도네시아는 지난해부터 풍등을 중단했는데 이웃 나라들로 풍등 중단이 확산되는 분위기입니다. 태국에서 시작해 동남아시아 각국으로 번진 전통축제인 러이끄라통에서 풍등을 볼 수 없게 될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는 것이지요.

이젠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요? 그동안 내가 날린 풍등이 어디에 떨어지는지, 떨어진 곳에 피해를 입히지는 않는지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면, 지금부터라도 그 위험성을 깨닫고 멈춰야 하지 않을까요? 하늘을 날아오르는 수많은 풍등들로 펼쳐지는 아름다움이야 이루 말할 수 없겠지만 그로 인해 사람들이 다치거나 재산피해를 입고, 야생동물들이 생존을 위협받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실수로 화재를 낸 스리랑카인을 처벌하면서 경찰은 '중실화'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검찰이 영장을 반려했습니다. 실수로 큰불을 냈지만 풍등으로 인한 화재인 만큼 처벌 여부를 두고 논란이 있을 수 있습니다. 불장난에 포함시킬까요? 이 기회에 풍등으로 인한 화재에 대한 처벌도 법적으로 명문화해야 하지 않을까요?

가을축제가 한창입니다. 가을축제가 끝나면 곧 연말이지요. 건조한 가을 끝무렵과 연말연시면 풍등에 소원을 적어 하늘로 날리는 행사들이 줄을 잇습니다. 풍등이 내집으로 날아와 떨어진다면? 내가 아는 누군가가 날아온 풍등으로 피해를 입는다면? 보기 좋은 불장난, 이제 그만하면 어떨까요?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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