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찾아 나간 54조원 행방을 찾습니다"
"취업하기는 점점 더 힘들어지고 늘어나는 건 공무원뿐이고…. 54조원이면 프리미어리그 첼시 구단 18개를 살 수 있는 돈인데 어떻게 쓰인 건지 궁금합니다."
"20조원 쓴 4대 강은 실체라도 있는데 54조원은 어떤 경로로 쓰인 건지 알려주세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이 같은 '일자리 예산 54조원' 관련 질문이 많이 올라와 있다. 일자리 예산은 국회 예산 심사 과정에서도 '뜨거운 감자'가 됐다. 정부는 내년 예산안에서 올해보다 4조2000억원(22%) 늘어난 23조5000억원을 일자리 예산으로 배정했는데, 야당은 "효과가 없으므로 대폭 삭감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여당은 "일자리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므로 삭감할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일자리 예산에 대한 국민과 정치권의 관심이 부쩍 높아진 것은 '일자리 대통령'을 표방한 문재인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에서 경제 위기급 고용 참사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발표한 '하반기 경제전망'에서 올해 취업자 수 증가 폭이 7만명대에 그쳐 2009년 8만7000명 감소 후 최저치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더욱이 올해 하반기와 내년 1분기까지는 취업자 수 증가 폭이 거의 제로(0)가 될 것이라는 게 KDI의 우울한 전망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썼다는 54조원은 대체 어디로 갔을까. 내년에는 일자리 예산으로 사상 최대인 23조5000억원을 쓴다는데, 이 많은 혈세를 쓰면 과연 일자리 사정이 나아지게 될까.
◇54조원 대 41조원…누구 말이 맞나
54조원의 용처를 따지기에 앞서 54조원이라는 숫자의 진위를 먼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야당인 자유한국당은 문재인 정부 2년 동안 쓴 일자리 예산을 54조원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는 한 토론회에서 "일자리 예산은 54조원이 아니라 41조원"이라고 반박한 바 있다.
우선 야당이 주장한 54조원의 출처는 이렇다. '일자리 예산'으로 분류된 지난해와 올해 본예산이 각 17조원, 19조원으로 36조원이다. 여기에 지난해와 올해 '일자리 추경' 명목으로 추가 편성한 예산이 각각 11조원과 3조9000억원으로 약 15조원이다. 여기에 급격한 최저임금으로 인한 고용 감소를 줄이기 위해 일자리 안정자금 3조원을 따로 편성했다. 이런 항목들을 모두 합치면 54조원이 된다.
반면 여당은 지난해 추경 11조원 중 보육·보건·요양 등 사회서비스 일자리 창출에 쓰인 2조6000억원만 일자리 예산이라고 주장한다. 또 올해 추경 3조9000억원 중 구조조정지역 지원 1조원을 뺀 청년 일자리 대책 예산 2조9000억원만 일자리 예산이라고 봤다. 또 일자리 안정자금은 정부가 분류하는 일자리 예산에 속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계산에서 뺐다. 이렇게 해서 야당의 주장보다 약 11조원이 적은 41조원이라는 숫자가 나왔다.
그런데 지난해 정부의 추경안을 보면 일자리 창출 4조2000억원, 일자리 여건 개선 1조2000억원, 일자리 기반 서민생활 안정 2조3000억원, 지역 일자리 창출을 위한 지방재정 보강 3조5000억원 등 모든 항목의 명분이 일자리였다. 문 대통령도 국회에 추경 통과를 호소하며 "단 1원의 예산도 일자리와 연결되게 만들겠다"고 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일자리 창출 예산만 일자리 예산"이라고 여당이 주장하는 것은 옹색하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또 공무원 증원으로 인한 비용 등 정부가 분류하는 '일자리 예산'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 돈까지 포함하면 실제로는 일자리에 퍼부은 돈은 54조원보다 훨씬 더 많을 가능성이 높다.
◇문재인 정부에서 예산 1억원당 취업자 1.1명 늘어
이렇게 많은 돈은 어디다 쓰는 걸까. 올해 본예산 중 일자리 예산 19조원의 사용 내역을 보면 윤곽을 파악할 수 있다. 정부의 일자리 사업은 크게 ①직접 일자리 ②직업능력개발훈련 ③고용서비스 ④고용장려금 ⑤창업지원 ⑥실업소득 유지 및 지원 등 여섯 가지로 나뉜다. 이 중 실업급여가 포함된 ⑥번 항목에 35.4%인 6조8000억원이 쓰인다.
이어 고용을 창출 또는 유지하는 기업에 지원하는 고용장려금이 3조7879억원(19.7%)으로 두 번째로 많다. 이 가운데 3분의 1가량이 모성보호 육아지원, 즉 육아휴직 급여로 나간다. 세 번째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항목은 직접 일자리 예산으로 올해 3조1961억원이 배정됐다. 이 외에 창업 지원에 2조4475억원, 직업훈련에 2조645억원, 고용서비스에 9354억원을 쓴다.
문제는 일자리 예산이 매년 큰 폭으로 늘어나는 반면 일자리 창출 효과는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 때는 연평균 9조원가량을 일자리 예산으로 쓰고 연평균 27만명씩 취업자가 늘었다. 단순 계산하면 예산 1억원당 취업자가 3명 증가한 셈인데, 당시에는 예산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비판을 받았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에서는 1억원당 2.7명, 문재인 정부에서는 1.1명으로 효율성이 더욱 낮아졌다.
이 같은 현상의 이유는 민주당 김병욱 의원이 정부에서 제출받은 '재정지원 일자리사업 평가 분석' 보고서에 잘 나타난다. 많은 일자리 사업이 당초 의도했던 효과는 전혀 내지 못한 채 각 부처들이 예산을 나눠 먹는 명분으로 전락한 것이다.
가령 직접 일자리 사업의 경우 '장기실직자 등 취업취약계층을 민간 일자리에 취업시키기 위해 한시적 일자리와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지만, 실제로는 취업취약계층이 아닌 사람의 참여 비율이 63.7%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골고루 기회를 나눠줘야 하지만 3년간 2회 이상 반복 참여한 비율이 39.2%나 됐다.
직업능력개발훈련도 '실업자나 중소기업 재직 근로자의 취업 가능성을 높인다'는 명분으로 매년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고 있지만, 직업훈련 수료자 중 관련 분야에 취업한 사람은 6명 중 1명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업훈련을 받고 취업을 했더라도 1년간 취업을 유지한 사람은 20%밖에 안 된다.
정부가 취업취약계층에게 구인·구직정보를 제공하고 취업을 알선하는 고용서비스 사업의 성적도 처참한 수준이다. 고용부가 300억원을 쓴 '청년취업진로 및 일 경험 지원' 사업과 230억원을 쓴 '중장년층 취업지원' 사업의 알선 취업률이 각각 1.3%, 3.8%에 그치는 등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 사업이 태반이었다.
당초 정부는 일자리 사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올해 처음으로 전체 일자리 사업에 대해 성과 평가를 실시해 결과를 국민에게 공개하고 내년 예산편성에 반영하기로 했었다. 그러나 평가 결과가 저조하게 나오자 자세한 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어물쩍 넘어갔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내년도 일자리 예산으로 올해보다 22% 증가한 23조5000억원을 배정하고, 한시적으로 운영하기로 여야가 합의했던 일자리 안정자금 2조8000억원을 또다시 배정해 국회 처리 과정에서 진통을 겪고 있다. 김병욱 의원은 "정부의 일자리 사업에 심각한 수준의 문제가 여럿 드러났다"며 "비효율적 예산 집행과 부처 중심주의를 개선하고, 일자리 사업의 실상을 국민에게 상세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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