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금에 대출금 얹어 차린 치킨집.."남은 인생, 빚 갚으며 살아야"

김보라 입력 2018. 12. 25. 17:48 수정 2018. 12. 26.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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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신년기획 - 인구절벽·고령화 쇼크
<1부> 본격화하는 베이비부머 은퇴 (3) 자영업 시장 뇌관 된 '5060 퇴직자'
"하루 12시간 꼬박 일했지만 월세·알바월급·배달앱 수수료..
오히려 손해볼 때가 더 많아"
베이비붐 은퇴자 창업 급증세..60세이상 자영업자 비중 30%
대안 없어 '출혈경쟁' 전쟁터로..자동화·무인화도 자영업 내몰아

[ 김보라 기자 ]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는 자영업 시장의 뇌관이다. 60세 이상 자영업자 비중은 올 들어 30%를 넘어섰다. 60대의 창업 증가율은 전 연령대를 통틀어 가장 높다. 한 남성이 폐업 세일 안내문을 붙여 놓은 점포 앞을 지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경기 부천시에 사는 한준모 씨(57)는 3년 전 희망퇴직했다. 30년 일한 직장에서 받은 퇴직금은 1억원 남짓. 결혼할 나이가 된 두 딸을 생각해 아내와 함께 퇴직금에 8000만원을 대출받아 99㎡(약 30평)짜리 치킨집을 차렸다. 그는 요즘 폐업 절차를 밟고 있다.

한씨는 “아내는 닭 튀기고, 나는 배달하면서 밤 11시까지 하루 12시간을 꼬박 일했지만 가게 월세 400만원에 아르바이트생 월급, 배달앱 수수료 등을 내고 나면 오히려 손해볼 때가 더 많았다”고 말했다. 1500만원에 산 주방 설비를 중고로 내놨지만, 돌아온 견적은 118만원. 그는 “남은 빚과 노후 자금 등이 걱정되지만 차라리 아르바이트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푸념했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는 한국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로 불리는 ‘자영업 시장’에서도 뇌관이다. 포화상태인 음식점 숙박업과 도소매업 등에 퇴직자가 몰리며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올 들어 600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전국 자영업자 559만1000명 가운데 50~60대 비중은 약 60%를 차지한다.

60세 이상 자영업 비중 30% 돌파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은퇴한 베이비붐 세대가 생계형 창업에 나서면서 60대 창업 증가율은 올 들어 7월까지 전 연령대를 통틀어 가장 높았다. 전년 동기 대비 14.4% 늘어난 6448건이었다. 연령대별 자영업자 비중도 60세 이상이 가장 높다. 통계청에 따르면 60세 이상 자영업자 비중은 2013년 이후 증가해 올 들어 30%를 넘어섰다. 20~40대 자영업 비중은 감소했으나 60세 이상만 25.9%에서 30.3%로 유일하게 증가했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자영업 창업 증가로 이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창업자는 증가하는 데 반해 자영업 경기는 수년째 하락세다. 국내 자영업자는 지난 5년간 0.14% 증가하는 데 그친 반면 자영업 대출액은 같은 기간 68.9% 급증했다. 자영업 대출 잔액은 2016년 말 480조2000억원에서 올 2분기 590조7000억원으로 증가했다. 자영업자 수는 거의 그대로인 상황에서 대출만 늘었다는 것은 그만큼 경영 사정이 좋지 않았다는 의미다.

망해도 또 치킨집·카페 왜?

60대 생계형 자영업자는 대부분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장사에 뛰어든다. 통계청의 ‘비임금 근로 및 비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에 따르면 올 8월 기준 전국 자영업자(559만1000명) 중 50~60대가 전체의 60.5%를 차지했다. 전국 자영업자 중 사업 운영기간이 1년 미만인 사람은 40만 명. 이 중 절반가량(49.8%)은 창업 준비과정이 3개월도 되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준비 기간이 3~6개월이었다는 응답자는 24.6%에 달했고, 1년 이상 준비했다는 응답자는 12.7%에 불과했다.

치킨집과 호프집, 카페와 편의점 등은 10여 년 전부터 퇴직자의 단골 창업 업종이었다. 출혈경쟁이 뻔히 예상되는데도 퇴직 후 이 시장에 뛰어드는 이유는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퇴직 후 6개월간 재취업 일자리를 알아보다 서울 성북동 주택가에 편의점을 차렸다는 안모씨(55)는 “준비 없이 퇴직했는데 기술을 배우기엔 시간이 오래 걸리고 상권 등을 따져볼 능력도 없어 편의점을 열었다”며 “큰 돈을 벌 생각은 없지만 생계가 막막해 빚을 내서라도 일단 일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주차관리·경비원도 기계에 뺏겨

자동화와 무인화도 이들을 창업 정글로 내모는 요인 중 하나다. 은퇴 후 주차관리 요원으로 일하다 최근 실직한 한철원 씨(62)는 “퇴직하고 4년간 서울 마포구의 주상복합 건물에서 야간 주차관리 요원으로 월 200만원가량을 받았는데 무인정산 기계가 설치되며 일자리를 잃었다”며 “마음은 아직 젊지만 아르바이트 구하기도 어려워 대출 받아 분식집이라도 차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실버세대의 은퇴 후 창업은 전문성이 떨어지고 영세하다. 한번 실패하면 재기하기도 어렵다. 신한은행이 발간한 ‘2019년 보통사람 금융생활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50대 이상 경제활동자 중 13%는 3년 내 은퇴를 예상하고 있다. 은퇴가 임박한데도 2명 중 1명(51%)은 은퇴 대비를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은퇴한 뒤 예상 월소득은 147만원으로 실제 필요한 돈의 61% 수준이다.

이성훈 세종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자영업 문제의 핵심은 공급과잉인데 대책 없이 퇴직하는 사람이 늘면 시장은 더 혼란스러워질 것”이라면서 “지역별 자영업 총량제 등을 시행해 창업을 조절하면서 기존 자영업자의 생존권을 보장하는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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