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전용 엔진오일' 페미코인 노렸나
[경향신문]
[언더그라운드.넷] 인터넷 밈(meme)은 돌고 돈다. 1월 중순, 한 인터넷 이슈 집계 사이트에 따르면 81개 게시물에 1221개의 댓글을 끈 ‘여성전용 엔진오일’이라는 게시물이 그렇다. 엔진오일인데 여성전용? 뜯어놓고 보면 이상하다. 한 누리꾼의 반응이 단적이다.
“요즘 차에는 성별 옵션이 있나요?” 당연히 없다.
앞서 돌고 돈다고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지난해에도 한 바퀴 커뮤니티게시판을 장식했다. 뭔가를 풍자하기 위해 가짜로 만든 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찾아보니 관련 보도도 있다. 자동차 전문매체의 2011년 기사다.
그러니까, 저 ‘여성전용 엔진오일’ 밈은 벌써 8년째 인터넷을 돌며 파도처럼 이슈가 됐다가 빠지길 반복했다. 2014년께까지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됐다는 ‘흔적’도 남아있다. 온라인에 도는 이미지는 이때 판매용으로 만든 것으로 보인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래서 성공했을까.
추적 해봤다. 일단 단서. 기사에는 해당 엔진오일을 취급한다는 자동차정비소 전화번호가 흐릿하게 찍혀 있다.
전화해 봤다. 실패다. 지금은 더 이상 정비소가 아니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 엔진오일의 정식 상품명은 ‘해피엔코 레이디스 온리’ 여성전용 엔진오일이다.
‘해피엔코’ 상표권을 가진 회사에 연락해 봤다. 회사 측 반응이다.
“저희 쪽에서 만든 건 아닙니다… 우리는 아동복 회사인걸요.”
‘여성전용 엔진오일’은 들어보지도 못했고, 그와 관련한 연락도 처음이라는 것이다.
참, 보도했던 언론사가 있었지. 물어물어 당시 보도했던 기자와 연락이 닿았다.
“기억나지 않는데요. 대행사로부터 연락받아 썼을 것으로 보이는데….”
뚱한 반응이다. 역시 2011년 기사건으로 연락받은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특이한 건 지난해나 그 전 과거 보다 이번 1월 중순 이 ‘여성전용 엔진오일’에 대한 인터넷 반응이 뜨거웠다는 것이다. 왜일까.
‘페미니즘은 돈이 된다’는 말이 있다.
원래는 페미니스트 진영에서 여성들 만의 힘으로 자립이 가능하다는 정도의 뜻을 담은 표어였지만, 이내 안티진영에서 비꼬는 말로 받아썼다.‘페미코인’이라는 말도 비슷한 맥락이다. 한때 ‘묻지마 투자’ 광풍이 불었던 비트코인처럼, 페미니즘에 대한 여성들의 맹목적 지지가 돈벌이에 이용당한다는 것이다(정작 페미니즘 쪽에서는 돈벌이 목적으로 ‘여성’을 이용하는 경우 핑크워싱(pinkwashing)이라는 말을 따로 쓴다).
그러니까 ‘여성전용 엔진오일’은 이 ‘페미코인’을 노리고 출시했던걸까.
“니치 시장을 겨냥한 거라고 할 수 있지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이 관계자는 “엔진오일은 마트 가서 사듯이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의 경우, 직접 사서 쓰는 비율은 채 20%가 안 됩니다. 그것도 카센터에서 무슨 무슨 상표의 엔진오일을 넣어주세요, 이렇게 요구하는 것이지 자기가 직접 엔진오일을 교환하는 사람으로 한정하면 3%나 될까요.”
나름 틈새시장을 공략해 보겠다는 아이디어겠지만, 실전에서는 무용지물이라는 것이다. 여성전용 엔진오일이 망한 이유를 알 것 같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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