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R&D '고·스톱' 결정, 의사 진단처럼 고도의 직관 필요"

한경우 2019. 3. 19.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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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연 일양약품 대표 "정부도 전문적 분석 통해 투자 집중하면 성과 커질 것"
김동연 일양약품 사장. [사진 = 한경우 기자]
유능한 의사는 환자의 검사 수치를 획일화된 방정식에 대입하는 방식으로만 질환을 진단하지 않는다. 의사가 되는 과정에서 쌓은 방대한 지식과 유능한 의사가 되기까지의 경험에서 우러나는 직관을 바탕으로 환자의 검사 결과를 바라봐야 정확한 진단이 나온다고 한다. 오로지 수치 계산만으로 정확한 진단이 가능하다면 의사들은 오래 전에 성능 좋은 계산기에 자신의 역할을 빼앗겼을 터다.

최근 서울 서초구 일양약품 본사에서 만난 김동연 사장은 "신약 연구·개발(R&D)도, 신약 R&D 기업에 대한 투자도 고도의 직관과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직관이란 신약 R&D 과정에서 나온 데이터를 보고 투자를 이어갈지(고·Go), 중단할지(스톱·Stop)를 정확히 판단할 능력"이라고 설명했다. '고·스톱'에 대한 판단 능력은 R&D 책임자가 이전까지 참여했던 또 다른 신약 R&D 경험이 많을수록 향상된다.

임상 데이터 외에도 의약품 당국의 허가 프로세스, 제조 공정과 비용, 시장 안착 가능성 등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다. 이를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과정은 공식에 대입해 답을 구하는 수학 문제와는 다르기에 경험이 중요하다.

일양약품 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시작해 연구소장을 거쳐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올라 10년 넘게 회사를 이끄는 동안 수많은 경험을 쌓은 김 사장은 위식도역류질환 신약 놀텍(성분명 일라프라졸), 항암 신약 슈펙트(성분명 라도티닙)의 개발·상업화에 성공했다.

놀텍은 국내에서만 연간 300억원 가량이 팔리는 블록버스터(연간 매출 100억원 이상) 제품이다. 작년에는 멕시코에서도 출시돼 빠르게 시장을 넓혀가고 있다. 처음엔 백혈병 치료제로 개발된 슈펙트는 뛰어난 항암 효능으로 적응증(약물을 사용할 수 있는 진단)을 넓혀가고 있다. 김 사장은 "물질 자체가 워낙 좋았고, 회사의 오너인 고(故) 정형식 명예회장과 정도언 회장이 결과물을 만들어내기까지 기다려 준 덕"이라고 공을 돌렸다.

특히 놀텍은 2000년대 중반 다국적제약사 다케다제약과 애보트가 합작한 TAP에 기술수출돼 미국에서 임상 2상을 마치기도 했다. 기술수출 계약이 성사된 지난 2005년 일양약품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주가가 오른 회사로 꼽히기도 했다. 그러나 TAP의 경영진 구성이 바뀌면서 권리가 반환됐다. 권리가 반환된 뒤에도 일양약품은 놀텍 R&D의 '고'를 유지해 회사의 효자 품목으로 만들었다.

물론 김 사장도 신약 R&D를 '스톱'한 경험이 있다. 천연물 기반의 요실금 신약 개발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천연물은 여러 성분이 어우러져 약효를 내지만, 선진국의 의약품당국으로부터 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각 성분의 메커니즘을 모두 규명해야 합니다. 그 과정이 어려워 약효에서 일정 부분을 포기하고 1개 성분만 분리해 후보물질을 만들었지만, 제조비용이 이미 판매되는 화학제제의 몇 배에 달해 포기했지요."

'스톱'을 결정한 뒤에는 실행에 옮길 용기가 필요하다. 직전까지 투입한 비용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2015년 한미약품이 다국적 제약사를 상대로 대규모 기술수출 계약을 성사시킨 '잭팟'을 터뜨려 제약·바이오 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뒤에는 '스톱'을 할 용기를 내지 못하는 기업도 있다고 한다. 초기 임상 단계에서까지는 좋을 결과가 나와 업계와 주식시장으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은 뒤 투자자를 포함한 회사의 주인에게 후보물질의 개발을 중단하겠다는 말을 하기 힘들어서다.

정부도 제약·바이오 산업을 한국의 미래 먹거리로 설정하고 지원에 나서고 있다. 이에 대해 김 사장은 "뒤 늦은 감은 있지만, 다행"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정부도 신약 후보물질에 대한 전문적인 분석에 더 큰 힘을 기울여 가능성이 높은 프로젝트에 투자를 집중한다면 더 큰 성과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중국도 제약바이오 산업 육성에 힘을 쏟고 있다. 중국 의약품 당국의 아이디어 중에는 한국이 벤치마킹할 만한 것도 있다고 김 사장은 제안했다. 그는 "중국 의약품 당국은 허가 신청을 접수하면 홈페이지에 허가 프로세스의 일정을 공개하고, 그 일정대로 진행한다"며 "신약을 개발하는 기업들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술수출 전에 개발 단계를 조금이라도 더 진전시키면 계약 규모가 크게 늘어날 수 있어서다.

▶▶ 김동연 사장은…

[사진 = 한경우 기자]
1950년 강원 삼척시에서 태어나 한양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아주대 대학원에서 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양약품에는 1976년 중앙연구소 연구원으로 입사해 중앙연구소 소장을 역임하면서 위식도역류질환 신약 놀텍과 백혈병 신약 슈펙트 개발을 주도했다. 2008년 대표이사가 된 뒤에는 회사의 사업구조를 일반의약품 중심에서 전문의약품 중심으로 혁신시켜 1500억원대에서 정체돼 있던 회사의 연간 매출 규모를 3000억원대로 키웠다. 또 지난 2013년부터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 이사장을 맡아 국내 신약 R&D 역량을 높이기 위해 힘쓰고 있다.

[디지털뉴스국 한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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