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중학교 교사 '성평등 교육하다 직위해제' 논란 가열..여성계서도 엇갈린 시선

허진무 기자 2019. 8. 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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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피해자 관점 필요” “성폭력 기준 모호”
ㆍ비판 측 “젠더 권력 이해 결여”에 지지 측 “기계적 처리”
ㆍ‘스쿨미투’ 후 고민 담겨 …해당 영화감독 “잘못된 싸움”

50대 남성 중학교 도덕교사가 ‘성평등 교육’을 하다 수치심을 느꼈다는 일부 학생 신고에 따라 ‘성비위’로 직위해제된 사건을 두고 여성계가 논쟁을 벌이고 있다. ‘스쿨미투’ 운동 이후 학교 내 성평등 실현에 대한 고민이 논쟁에 담겨 있다.

광주의 한 중학교 배이상헌 교사는 지난해 9~10월 1학년, 지난 3월 2학년 학생들에게 성 윤리 수업을 하며 프랑스 단편 영화 <억압받는 다수>를 보여줬다.

이 영화는 남성과 여성의 사회적 역할이 뒤바뀐 가상 사회를 다룬다. 일상적 성폭력에 노출된 여성 현실을 뒤바뀐 성역할로 깨닫게 하는 ‘미러링’ 효과를 노린 영화다. 주인공 남성은 부인을 만나러 가는 길에 여성들에게 성희롱과 성추행을 당한다. 경찰은 사건 조사에 미온적 태도를 보인다. 부인은 남성이 성폭력을 당한 이유는 부적절한 옷차림 때문이라고 비난한다.

지난 6월 이 학교 일부 학생이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며 국민신문고에 신고했다. 광주시교육청 성인식개선팀은 6월26일 1학년, 지난달 8일 2·3학년 학생 등 모두 344명을 면담 조사했다. 교육청은 해당 영상과 배이 교사의 일부 발언이 부적절했다며 지난달 24일 직위해제하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이 사건은 여성계 논쟁으로 이어졌다. <억압받는 다수>를 연출한 엘레오노르 푸리아 감독도 의견을 냈다.

직위해제를 지지하는 측은 교실에서 권력을 가진 ‘50대 남성 교사’의 수업으로 학생이 수치심을 느꼈다면 성폭력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 16일 광주여성민우회는 성명을 내고 “피해자의 말이 무조건 옳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피해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공감해야 한다”며 “가해자와 피해자 간 권력관계에 기반해 왜 그 상황을 폭력으로 느낄 수밖에 없었는지 질문하는 ‘피해자 관점’이 필요하다”고 했다. 13일엔 인천여성의전화·인천페미액션도 공동성명을 내 “성평등 교육을 말하며 스쿨미투 피해 학생들의 목소리를 지우지 말라”며 “피해자 중심주의가 여전히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이들은 “교사의 의도가 옳았다고 하더라도, 성평등 교육을 위한 공인된 자료라고 하더라도, 학교 내 젠더 권력에 대한 이해와 성인지 감수성이 결여된 교사의 교육을 성평등 교육이라 인정할 수 없다”고도 했다.

직위해제를 비판하는 측은 무엇이 성폭력인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과 판단 없이 교육청이 기계적으로 사건을 처리했다고 말한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지난 1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성적 수치심을 일으킨 행위가 곧 성폭력이 된다면 성폭력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예방하기 어려워진다”고 적었다. 김 부소장은 “미러링 영상을 보고 수치심을 느꼈다는 민원은 여러 교육 현장에서 있을 것이다. 여성 강사가 영상을 틀었을 때도 같은 민원이 있을 수 있다. (무엇이 성폭력인지) 세밀하게 파악하고 기준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푸리아 감독도 언론에 공개한 학생들에게 전하는 편지를 통해 “제가 촬영한 이미지들은 불평등한 우리 사회의 거울일 뿐”이라며 “잘못된 싸움을 하지 말아 달라. 성차별에 대해 알려주려던 사람과 싸워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고 했다.

다만, 이 사건 찬반 양측 모두는 학교 내 성평등의 후퇴를 우려한다. 한쪽은 ‘스쿨미투’ 운동으로 마련된 매뉴얼이 지켜지지 않고 피해자 목소리가 사라질까 걱정한다. 다른 한쪽은 적은 수의 교사가 이어가는 성평등 교육 노력이 위축될까 걱정한다.

광주시교육청은 ‘스쿨미투’ 사건이 잇따라 불거지자 지난해 10월 ‘성인식 개선 종합대책’을 발표하며 성인식개선팀을 신설하고 성비위 교사는 교단에서 배제하겠다고 했다. 배이 교사에 대한 직위해제 조치도 교육부가 지난 3월 배포한 ‘학교 내 성희롱·성폭력 대응 매뉴얼’에 따라 가해 교사를 피해 학생과 분리한 것이다. 해당 중학교는 자체 성고충심의위원회에서 배이 교사의 직위해제 다음날인 지난달 25일 성비위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배이 교사는 교육청에 교권보호위원회 개최를 요구하고 있다.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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