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불매 비하 간부' 내부고발로 해고된 기자들 "끝까지 싸운다"

신지민 입력 2019. 12. 1. 14:36 수정 2019. 12. 2. 0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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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 대학생은 물론 6살 어린아이도 알고 있었다.

이 투쟁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란 걸.

대통령 욕설과 일본 제품 불매운동 비하 논란이 일었던 <경기방송> 현아무개 총괄본부장에 대한 내부고발에 나섰다가 해고된 노광준 피디와 윤종화 기자 이야기다.

노 피디와 윤 기자는 회사의 해고 통보에 이의를 제기했고 재심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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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방송〉 해고된 노광준 피디·윤종화 기자
총괄본부장 식사 때 발언 발단
'불매 성공한 적 없다'며 막말
"사실상 취재·편성 가이드라인
국민 정서 어긋나 수용 어려웠죠"
사퇴한다던 본부장 승진
두 사람이 되레 징계위에 회부
"회사에 막대한 재산 손해" 해고
"끝까지 싸울 것..관심 가져주세요"
‘대통령 욕설, 일본 불매운동 비하’와 관련해 내부고발했다가 해고당한 <경기방송> 윤종화 기자(왼쪽)와 노광준 피디가 지난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양재동의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6살 아이가 아빠가 해고된 걸 알고 ‘앞으론 어린이날만 장난감 사주면 돼’라고 하더군요.”(윤종화)

“복학을 앞둔 첫째 아이가 학자금 대출을 알아보고 있더라고요.”(노광준)

스무살 대학생은 물론 6살 어린아이도 알고 있었다. 이 투쟁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란 걸. 그러나 정작 세상의 ‘상식’을 믿었던 두 아빠는 몰랐다. 언론인의 양심과 정의감에서 시작한 이 일이 정말 해고로 이어질 줄은.

대통령 욕설과 일본 제품 불매운동 비하 논란이 일었던 <경기방송> 현아무개 총괄본부장에 대한 내부고발에 나섰다가 해고된 노광준 피디와 윤종화 기자 이야기다. 2000년 6월 입사한 노 피디는 편성제작국 편성팀장으로, 2007년 2월 입사한 윤 기자는 보도2팀장으로 일하다가 11월5일 경기방송에서 해고됐다.

최근 서울 양재동의 한 카페에서 마주한 두 언론인은 “이 모든 이야기의 시작은 지난 8월5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말했다.

‘대통령 욕설, 일본 불매운동 비하’와 관련해 내부고발했다가 해고당한 <경기방송> 윤종화 기자(왼쪽)와 노광준 피디가 지난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양재동의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매주 월요일에 대표이사 이하 간부들이 함께 회의를 한 뒤, 점심 식사를 해요. 그날 점심에 현 본부장이 ‘문재인 때려죽이고 싶다. 100년 전 물산장려운동이 성공했나? 감정만 건드렸지 불매운동 성공한 적 없다’며 국민의 일본 제품 불매운동을 비하하는 말을 했어요. 저는 그 이후, 당시 같은 자리에 있었던 노 선배(노광준)에게 내부고발을 하겠다고 말했고, 노 선배도 함께해주기로 했죠.”(윤종화)

모르는 척 눈 한번 질끈 감으면 될 일인데, 왜 이들은 실명으로 걸고 내부고발에 나선 걸까? 윤 기자는 내부고발을 결심하면서 “독립운동가의 마음을 떠올렸다”고 했다. “일본보다 일본을 더 걱정하는 사람을 내 눈앞에서 봤어요. 그때 독립운동가가 떠올랐죠. 그들은 죽음을 각오했잖아요. 하지만 저는 죽진 않고 잘릴 뿐인데, 왜 못 하겠나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윤종화) “한 방송국의 보도와 제작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최고 간부의 발언이잖아요. 현 본부장의 말은 사실상 취재·편성 가이드라인인데 국민 정서와 어긋나 받아들이기 어려웠고 괴로웠어요.”(노광준)

‘대통령 욕설, 일본 불매운동 비하’와 관련해 내부고발했다가 해고당한 <경기방송> 노광준 피디가 지난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양재동의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두 사람의 메모와 증언이 일부 언론에 보도되고 경기방송 노조가 사퇴를 요구하는 등 논란이 커지자 대표이사는 9월19일 대국민사과문을 냈다. 당사자인 현 본부장도 사과와 함께 사퇴 의사를 밝혔다.

모든 일이 ‘상식’과 ‘정의’에 따라 흘러가는 듯했다. 하지만 단단한 착각이었다. 얼마 뒤 사퇴한다던 현 본부장은 전무이사로 승진했다. 현 본부장은 <한겨레>에 문자로 “(내 말은) 상당히 편집된 채 왜곡됐고, 심지어 전혀 없던 허위 내용도 포함됐다”며 “도의회 의장이 나서 사퇴하지 않으면 경기방송 예산을 삭감한다고 해 사퇴하려고 했다. 하지만 결국 모든 예산이 삭감됐고 내가 억울하게 사퇴해야 할 이유가 사라졌다. 게다가 이사와 주주들이 적극 만류했다”고 말했다.

경기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경기공동행동 등 언론시민단체들은 잇달아 성명을 내어 “사퇴 의사를 밝힌 당사자에게 면죄부를 주고 그의 뜻대로 방송국을 운영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경기방송은 결국 지난 10월7일 윤 기자와 노 피디를 징계위원회에 회부했다. “징계위에서는 같은 질문만 받았어요. ‘왜 사석에서 한 말에 문제를 제기하냐’ ‘왜 내부에서 해결하지 않고 언론에 제보했느냐’고요. 대통령이 오찬 자리에서 한 말이 사적 발언이 되나요? 마찬가지로 대표이사와 간부가 매주 회의 뒤에 하는 식사 자리인데 그 자리에서 한 말이 어째서 사적 발언인가요?”(노광준)

‘대통령 욕설, 일본 불매운동 비하’와 관련해 내부고발했다가 해고당한 <경기방송> 윤종화 기자가 지난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양재동의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11월5일 경기방송은 급기야 이들을 해고했다. 징계 의결 결과 통보서를 보면 ‘이들이 언론에 실명으로 공익제보를 했다고 주장하나, 이는 공익신고자보호법상 공익침해행위에 해당하지 않으며 사실관계도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상태에서 본인의 신조에 어긋난다는 미명하에 왜곡된 내용으로 회사 및 상사의 명예를 훼손하고 회사에 막대한 재산상의 손해를 끼쳤다’고 해고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노 피디와 윤 기자는 회사의 해고 통보에 이의를 제기했고 재심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재심을 거쳐 복직하지 못하면 법적으로 다툴 수밖에 없다. “지방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를 거쳐 행정법원의 3심 결과까지 기다리면 총 5심인 셈이죠. 최소 1년 반에서 2년이 걸린대요. 실업급여도 없는 상황이라 막막하긴 하죠.”(노광준) “해고되자마자 언론재단에서 대출금을 갚으라고 연락이 왔어요. 퇴직했으니 바로 갚아야 한다고요. 부당해고를 다투고 있는 상황이니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죠. ‘멘붕’이 오더라고요.”(윤종화)

오랜만에 ‘긴 휴가’를 갖게 된 두 사람은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노 피디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해고 일기’를 연재하며 대중의 관심을 촉구하고 있다. 얼마나 긴 투쟁이 될지 알 수 없지만 둘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오랜 시간 몸담아온 회사에 대한 애정과 지역방송의 역할에 대한 사명감 때문이다. “진짜로 해고될 줄 몰랐어요. 상식을 믿었거든요. ‘군소 지역방송에서 별일이 다 있네’ 하고 넘기지 말아주세요. 건강한 지역 언론으로 바로 서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관심 있게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아들이 ‘왜 잘못 없는 사람이 더 부당한 대우를 받아야 하느냐’고 묻던데 그게 현실이라고 답하고 싶진 않기에 지지 않을 겁니다.”(노광준) “사회적으로 진보적 목소리를 낼 순 있지만 일터에서, 일상에서 부당함을 이야기하는 건 쉽지 않아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내부고발자가 어떤 삶을 살게 되는지 절실히 알게 됐어요. 수원에서 태어나서 자라온 저에게 경기방송은 소중한 지역방송이자 첫 직장이고, 저의 모든 세계였어요. 끝까지 싸울 겁니다.”(윤종화)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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