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정책 치우쳐 '이남자' 떠났다? 기득권 민주당 심판한 것"

노지원 2021. 4. 12.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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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민 민주당 청년 최고위원 고별 인터뷰
박성민 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11일 서울 성북구 안암동의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노지원 기자

더불어민주당은 4·7 재보선에서 강고한 지지층이었던 20대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박성민 전 최고위원은 재보선 때까지 당을 이끌던 지도부 중 유일한 ‘20대 청년’이었다. 민주당 지도부였던 그는 떠나간 청년 민심의 원인을 어떻게 진단하고 있을까. 상대적으로 박영선 민주당 후보를 많이 지지했던 20대 여성이었지만 제3후보에 대한 지지율이 15%에 이르는 점을 거론하며 그는 “피해자 중심주의 원칙에 충실했나 반성해야 한다”고 했다. 20대 남성 72%가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를 지지 이유를 ‘젠더 이슈’ 하나로 단순화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일자리·부동산 문제에서 유능하지 못했고 기득권이 된 민주당을 심판’했다는 것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를 둘러싼 논란이 결국 재보선 참패로 이어졌다는 주장에는 “논리적 비약이 있다”고 하면서도 “조 전 장관이 아무 잘못이 없다고 넘어가는 것은 부적절해보인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잘해보라며 총선 때 밀어줬는데…오만함에 심판 당해”

—7일 당일 저녁 출구조사 발표 때 김태년 전 원대대표 등과 함께 개표상황실에서 출구조사를 지켜봤다.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던데, 실제 내부 분위기는 어땠나.

“당 내부적으로 아주 긍정적인 결과를 전망하진 않았지만, 차이가 두 자릿 수, (출구조사를 기준으로) 20%포인트 넘는 결과가 나오리라 생각을 못했다. 나 역시도 한 자릿수 차이를 예상했다. 믿기지 않았고 섬뜩한 느낌도 들었다. ‘국민의 판단이라는 게 이렇게 매섭고 정확하고 무서운 거구나.’

시민들이 국민의힘 후보를 둘러싼 각종 의혹을 모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들(국민의힘)한테도 문제가 있지만, 그렇다고 민주당을 뽑을 이유가 없다고 (시민들이 판단한 게) 핵심이었다. 민주당이 제대로 못 하면서 잘 한다고 하는 오만함에 대해서 표로 심판해야겠다는 유권자의 의지가 발현되지 않았나 싶다. 야당 후보에 대한 호감과 믿음으로 지지를 했다기보다는 야당도 별로지만 민주당이 혼 나봐야 한다는 마음이 있었던 거 같다.

민주당이 그동안 여러차례 선거에서 계속 이겼고, 지난 총선에서 압승을 거뒀다. 시민들이 민주당에 180석을 줄 때도 민주당을 강하게 지지했다기보다는 ‘기회를 줄 테니, 밀어줄 테니 너희 한 번 해 봐라’라고 엄정한 심판대에 세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당시 야당이 태극기 부대와 손 잡고 불법 집회를 하는 등 비호감 이미지 극대화됐던 영향, 코로나19 확산 상황이 진짜 (총선 승리에) 영향을 크게 미쳤다. 또한 민주당이 재난지원금이라는 새로운 대책를 제시했는데, 이러한 팬데믹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사람이 필요하고 그게 여당 역할이라는 측면에서 밀어줬다고 생각한다. 마냥 여당이 예뻐서가 아니었다는 거다.”

—예상과 결과가 왜 달랐다고 보나.

“민주당의 여러가지 정책이나 태도에 대해 시민들이 이번에 회초리를 든 거 같다. 가장 큰 것은 부동산 정책이었다. 엘에이치(LH·한국토지주택공사) 사태 이전에 집값이 많이 올라 부동산 정책을 추진할 때 극약처방을 하다보니 그것이 실제 서민에게는 부담이 됐다. 세금 감면, 대출 제한 등도 실소유를 하려는 사람들에게는 갑갑했을 거 같다. 신혼부부·청년들 만나면 ‘전셋집을 옮겨야 하는데 갈 수가 없다’며 힘들어하는 분들이 많았다. 득을 본 분들보다 실질적으로 실이 많은 분들이 계셨던 것 같다. 부동산 정책의 큰 방향은 맞지만 과도기에서 넘어가는 과정에서 섬세하게 접근을 해야 한다. 예를 들면, ‘6억원 이하’ 주택에만 세금 감면을 하느냐, ‘6억원 이상~9억원 이하’까지 감면하느냐 하는 논쟁이 있었는데 그 부분을 놓친 게 아쉽다. 서울 집값이 6억원을 상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권 인사들의 부동산 문제도 컸다. 본능적으로 신뢰를 훼손한 일이다. ‘민주당은 그래도 깨끗하겠지, 다르겠지’라는 생각을 했을텐데, 일련의 일들을 통해 (시민들이) 민주당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실망하지 않았을까. 그 다음은 ‘내로남불’적 태도에서 문제를 찾아야 한다. 그밖에 지방자치단체장 성비위 사건 때 부족했던 대응 등이 쌓여서 부동산으로 터진 게 아닌가 싶다.”

—민주당 지도부 사퇴 결정이 좀 늦었다는 지적이 있다. 7일 밤에라도 빠르게 결정을 내렸어야 했다는 비판도 있다. 당시 지도부 입장은 무엇이었나.

“책임 지는 것 자체에 대한 이견은 없었다. 자리에 연연하지 말자는 데도 모두 동의했지만, 책임을 지는 방식을 두고 의견이 나뉘었다. 일단 나는 사퇴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사퇴 하지 말자’는 주장도 일리 있다고 생각했다. 전당대회를 당겨서 진행하기에 시간이 얼마 안 남은 점, (현 지도부가) 질서있게 마무리 작업을 하는 방식으로 책임 지는 것에 대한 (당 지도부 일각의) 고민이 있었다.

결국 지도부 사퇴 결정은 잘했다고 생각한다. 다만 8일 오전 10시30분 의원총회를 열기 전에 사퇴 발표를 하는 게 적절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먼저 지도부 사퇴를 발표하고 의총에서 보고하는 방식이 나았다고 본다. 의총 당시 의원들도 지도부 사퇴에 대해서 긍정적인 입장이었다.”

—민주당이 ‘후보 검증’이라는 명목으로 한 오세훈 후보에 대한 공세를 네거티브라고 보는 시선이 많다. 이러한 전략이 옳았나. 20대들은 어떻게 생각하던가. “오 후보에 대한 공세는 검증이기도 하고 네거티브이기도 하다. 없는 걸 끄집어 낸 게 아니니 검증이지만, 아무래도 선거 판세가 불리한 쪽에서 이길 것 같은 쪽을 공격하는 네거티브로 보일 가능성도 있다. 평범한 시민한테는 이러한 공세가 ‘그래서 뭐? 오세훈은 나쁜 놈이니까 민주당을 뽑으라는 거야?’라고밖에 안 들린다. 부산갔을 때 어떤 분이 ‘좀 고마해라. 오세훈 나쁜 거 다 안다’고 말하시더라. 민주당 박영선·김영춘 후보가 정말 괜찮고 증명할 수 있는 경력과 업적이 많은데, 그런 부분을 좀 더 살렸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박성민 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11일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 캠퍼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페미 이슈로 20대남성이 떠나갔다? 편협한 주장 부각될까 우려”

—이번 선거에서 20대 여성 15%가 민주당도 국민의힘도 아닌 제3후보를 선택했다. 18%포인트로 박 후보가 진 점을 감안하면 이들의 제3후보 지지율은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20대 여성으로서 어떻게 보나.

“젠더 이슈는 더 이상 마이너한 이슈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정치권의 중요 역할은 성평등 사회를 만드는 것이지만, 여태까지 여성 정책이 선거 기간 동안 전면에 등장하거나 후보의 당락을 결정하는 주요 요인은 아니었다. 20대 여성 15%의 표는 상당히 의미가 있다. 여당이 간과해선 안 된다. 지자체장의 성비위에 대한 미흡한 대처, 피해자의 고통을 목격하면서 20대 여성 15%는 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에 등을 돌렸다. 이 대목에서 민주당이 반성해야 한다. 그동안 많은 지지를 보여줬는데 이들이 돌아섰다는 것은 그만큼 민주당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과연 우리가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원칙에 충실했나 반성할 부분이다. 앞으로 이 15%에 집중해야 한다.”

- 이번 선거에서 20대 남성 중 72%가 오세훈 후보를 지지했다. 주변 동료·친구들 얘기를 들어본 적 있나.

“‘인국공(인천국제공항) 사태’와 엘에이치 이야기를 가장 많이 하더라. 민주당이 무능하고 부패한 기득권이 됐다고 인식한 것이다. 남성들이 역차별에 불만을 제기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일정 부분 유의미한 분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72% 모두가 그런 역차별이나 젠더 문제를 이유로 오세훈 후보를 찍었다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20대 여성 가운데 15%가 민주당도 국민의힘도 아닌 제3지대 후보를 찍었고 민주당 지지율이 많이 낮아진 것만 보더라도 당이 여성 관련 정책에서 미흡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이번 보궐선거의 책임이 민주당에 있다는 것도 큰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래서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민주당이 여성 정책만 많이 해서 남성 유권자들이 떠나갔다고 하는 것은 건 이번 투표 결과만 보더라도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주장이다.

20대 유권자가 젠더 이슈 하나로 정당을 지지하거나 투표하는 것이 아니다. 이번에 20대 남성 72%가 국민의힘을 지지한 배경에 가장 큰 요소는 기득권화된 민주당에 대한 심판이라고 본다. 또 하나는 일자리 문제와 부동산 문제에서 정치가 20대 남성의 삶에 힘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고 투표로 증명한 것이다. 민주당이 유능하지 못했다. 이게 본질이다.

‘민주당이 여성정책이나 페미니즘 이슈에만 올인해서 20대 남성들이 떠나갔다’는 일각의 편협한 주장이 과도하게 부각돼 힘을 얻는 순간, 젠더 이슈와 정책에 대한 공론장은 좁아지고 성평등 사회로의 진보는커녕 후퇴가 이뤄지는 부작용이 생길까 매우 우려스럽다. 남녀 갈라치기는 민주당이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같은 주장을 하는 이들로부터 시작되고 있는 것 아니겠나. 성평등한 사회는 우리가 나아가야 할 사회임이 분명하다. 민주당은 20대 남성에게도, 20대 여성에게도 지지를 받지 못한 것이 이번 선거의 결과이다. 20대 청년들과 소통하는 창구가 부족하고 청년들의 삶을 위한 실질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매우 공감한다. 절박한 마음으로 개선해가야 할 것이다.”

—부동산 문제에 대한 청년들의 일반적인 시각을 당 내부회의에서 소개한 것으로 알고 있다.

“집을 사고자 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을, ‘욕망’을 억지로 억누르려 하거나 그게 틀렸다고 가르치려 하는 태도는 옳지 않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나한테 누가 평생 임대주택에 살라고 하면 싫을 것 같다. 왜냐하면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내 집을 왜 갖고 싶냐고 물으면 물론 누군가는 재테크의 수단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계속 이사를 다니거나 삶의 환경을 바꾸지 않고 내 집에서 지속적으로 머물면서 생애를 꾸려나가는 데서 삶의 안정감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세상에 불안정한 게 너무 많다. 직장도, 결혼과 출산, 육아도…살면서 안정적인 기분을 느끼게 하는 요소가 몇 없을 텐데 집이 안정감을 줄 수 있다고 본다. 내 집을 갖고 싶다는 마음을 죄악시하면 안 되고 그런 프레임은 굉장히 위험하다.

질 좋은 임대주택은 국가의 책무이고, 집을 사기 어려운 사람들한테 ‘사다리 역할’을 하는 희망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한테 임대주택에 살면 된다고 하는 건 현실과 동 떨어진 것이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 (현행법으로) 실거주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실거주·실소유를 하려는 이들한테 대출규제를 과감히 풀어주고 청약도 용이하게 해야 한다. 정치권에서 청약이 청년 세대 희망인 것처럼 이야기 하지만 막상 보면 쉽지 않은 경우가 부지기수다. 청약 기준이 너무 현실과 동 떨어져 있다.”

“조국 사태, 아무 잘못 없다며 넘어가는 건 부적절”

—정청래 의원 등이 2030 국회의원들의 조국사태에 대한 사과에 대해 ‘조국 사태 때문에 민심이 돌아섰으면 총선 때 그 많은 표를 얻었겠냐’고 반박한다. 이에 동의하는지 궁금하다.

“양쪽 주장 모두 고민해 볼 지점이 있다. 일단, 이번 선거 결과가 조국 사태 때문이라는 주장에는 논리적 비약이 있다. 하지만 조국 사태가 정말 아무 잘못도 없는 일이었는지 따져 볼 때 거기에 동의하기 어렵다. 물론 검찰의 무리한 먼지털기식 수사, 언론의 과도한 보도로 조국 전 장관과 그 가족이 피해를 입었다. 최근 판결이 나오고 있지만, 이러한 법적인 문제를 떠나서 조 전 장관의 가족이 누린 것들이 과연 평범한 시민들도 누릴 수 있는 기회인가? 그렇지 않다. 분명 특권층한테만 주어지는 기회가 있었고, 이를 바라보는 평범한 사람은 박탈감을 느낀다. 또한 공직자가 될 사람, 특히 공정과 사법 질서를 다루는 법무장관을 둘러싸고 그러한 논란이 인 것을 납득하지 못하는 시민들이 많다. 조 장관이 분명 억울한 부분이 있지만 이에 대해 아무 잘못이 없다고 넘어가는 것은 부적절해보인다.

이번에 2030 초선이 조국 사태에 대해 사과한 것은 그동안 법원 판결도 나오고 했지만 이것이 너무 민감한 주제이고 과거 검찰의 무리한 수사로 인한 아픈 기억까지 있는 터라 민주당이 그냥 덮고 간 부분이 있다. 2030 초선 의원들은 우리가 민심의 매서운 회초리를 맞고 우리 당이 뭘 잘못했나 따져볼 때 조국 사태와 관련해 ‘좀 더 국민과 눈높이 맞추며 갈 수 있었던 게 아닌가’에 대한 문제의식을 표현한 것 같다. 덮어놓고 가면 분명 계속 소환이 되는 문제다. 국민 앞에 사죄하고 새롭게 시작하자는 의미라고 생각된다. 시민들의 당에 대한 평가는 한순간에 이뤄지지 않는다. ‘부동산’이라는 큰 비중있는 문제가 있었지만 나머지 문제들에 대한 민주당의 태도가 어땠는지 겸허하게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민주당 쇄신에서 우선돼야 할 것은 무엇인가.

“일단 당내 민주주의를 확립해야 한다. 선언적 수준의 결과물이 아니라 당내 민주주의가 작동할 수 있는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예컨대 의원총회 의무화 등 방식이 방법일 수 있다. 두번째로 멀어진 청년의 마음을 돌려야 한다. 그런 부분에서 당연히 청년 정치인의 역할이 중요하다. 어떻게 청년의 마음을 얻고 청년들의 의사를 직접적으로 반영할지 고민해야 한다. 당에서 청년층에 대한 심층 연구가 필요하다. 청년 정책을 전담할 수 있는 기구도 필요하다.”

11일 서울 성북구 안암동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한 박성민 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사진 촬영에 응하고 있다. 노지원 기자

—최고위원 임기 동안 아쉬웠던 점과 앞으로의 계획을 말해달라.

“좀 더 새롭고, 적극적인 방식의 청년 정책을 주장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과 고민이 있다. 일단 역할이 주어지는 대로 일할 계획이다. 앞으로 1년이 중요하다. 청년과 민주당 사이 존재하는 시각의 차이를 어떻게 개선할지 많이 듣고 많이 이야기 하고 그런 과정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청년을 ‘위한’ 정치 말고 청년에 ‘의한’ 정치가 될 타이밍이라고 생각한다. 현 시기 만큼 정치권이 청년 유권자한테 귀 기울이는 시기가 어디 있겠나.”

노지원 기자 z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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