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낚시터' 세계 1위 강태공..알고보니 치매 노인[빅트렌드]
[편집자주] 혁신은 잔잔한 물결처럼 다가오다가 어느 순간 거대한 너울로 변해 세상을 뒤덮습니다. 경제·사회 패러다임의 변화를 대표하는 핵심 키워드를 발굴하고 관련 기술과 서비스를 분석해 미래 산업을 조망합니다.
10명중 8명 “VR 보고 집 계약 하겠다”…확 달라진 ‘가상세계'
①코로나19 비대면 문화로 더 주목받는 VR ·AR기술
# '주택 매입 시 현장을 방문하지 않고 3차원(D), VR(가상현실) 정보만을 이용해 집을 계약할 의사가 있는가?' 이 질문에 1152명 중 876명(76%)이 "그렇다"고 답했다. 부동산 정보 업체 '직방'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나온 결과다. '앞으로 3D·VR 부동산 정보를 이용할 의향이 있다'는 응답도 89.8%(1034명)에 달했다.
# CNN 등 외신은 최근 코로나19(COVID-19)로 명상 프로그램에 참여가 어려운 상황에서 VR 기술이 이 빈틈을 파고들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등에 따르면 미국인 10명 중 1명은 'VR 명상 앱(애플리케이션)'을 써봤다.
최근 코로나19로 비대면 산업 수요가 증가하면서 VR·AR(증강현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VR·AR 기술은 인공지능(AI)과 함께 수년 전부터 대중적으로 화두였으나, 기술 완성도 문제로 외면 받아왔다. 하지만 신종 전염병 창궐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장기화하고, DT(디지털트랜스포메이션) 가속화와 함께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대비가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면서 비대면 산업의 핵심기술인 VR·AR에 대한 투자가 활발해졌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에 따르면 VR·AR 관련 하드웨어 매출은 2025년 2800억 달러(약 313조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학에선 가상의 교실에 국적이 서로 다른 학생들이 모여 수업을 듣고 토론한다. 병원 레지던트들은 인간 신체의 가상모델을 활용해 위험도 높은 수술을 집도하는 간접 경험을 한다.
전문가들은 "VR이 기존 개인 중심의 서비스를 벗어나 다수의 원격 사용자들이 공간과 정보, 감각을 공유하고 실시간 소통·협업하는 ‘공존 현실’ 기반의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분위기에 VR 기반 생중계 기술을 가진 ‘넥스트VR’를 비롯해 웨어러블(착용형) 시네마틱 VR 기술, AR·VR 환경 이미지 추적 기술 등을 보유한 스타트업들의 몸값이 치솟는 추세다.
가상공간 구축에 필요한 기술적 여건도 향상됐다. 한국표준과학기술연구원은 최근 VR 체험 후 일어나는 일명 ‘사이버 멀미’를 해결할 방안을 내놨다. 사용자가 느끼는 멀미 정도를 객관적으로 측정하는 기술이다. 임현균 표준연 책임연구원은 “멀미의 정도를 정량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면 멀미를 유발하지 않는 적정 수준의 VR 기기와 콘텐츠를 만들어 낼 수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은 가상공간 속에서도 현실 속 움직임 그대로 행동하면서 다양한 실감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XR(확장현실) 체험 플랫폼’을 개발했다. 실제 컵을 들어 가상에서 물을 마신 후 컵을 깨뜨리거나 게임 속 동물을 쓰다듬는 것이 가능하다. 권오홍 생기원 휴먼융합연구부문 박사는 “향후 실감콘텐츠만 확보되면 각종 훈련, 재활치료 목적의 시뮬레이터로 이용 가능하며, 장기적으로 새로운 형태의 게임 기기나 영상 촬영용 XR 스튜디오 등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를테면 부동산 중개 영역은 물론 건축·도시계획·인테리어 분야에서 활용이 늘고 있다. 특히 인구감소, 고령화, 지방소멸, 대중교통 지역 격차 등 고려할 변수가 많은 도시계획의 경우 VR·AR기반의 ‘디지털 트윈’이 접목되는 추세다. 이는 디지털 복제 모델로, 대상의 속성·상태 등을 가상공간에 반영해 어떻게 거동할지를 진단·분석하고, 예측·최적화한 모델을 말한다.
국토교통부는 세종·부산 ‘스마트시티’를 디지털 트윈으로 설계했다. 서울시는 지자체 중 가장 먼저 ‘버츄얼 서울’이라는 3D 지도 플랫폼을 서비스 하고 있다. 신규 경찰·소방관 교육 등 공공영역의 서비스 질을 높이는 데도 한몫을 더한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화재현장과 비슷한 VR에서 실제 소방도구를 활용해 훈련을 할 수 있는 실감형 시뮬레이터를 개발했다. 양웅연 ETRI 박사는 “코로나 확산에 따라 집체교육이 어려워진 소방관을 위해 네트워크를 통한 대규모 가상 훈련을 지원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혁신전략연구소 관계자는 “하드웨어, 플랫폼 기술의 국산화가 부진하고, 킬러콘텐츠·애플리케이션 확보를 위한 높은 개발 비용 등은 산업계 투자의 저해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업체별로 3D 깊이감, 360도 해석법이 달라 같은 콘텐츠일지라도 업체마다 다른 UI·UX(사용자 환경·경험)를 제공해 표준화가 시급하다는 지적도 따른다. 이밖에 현실과 유사한 디자인을 가상공간에 구현하는 과정에서 초래할 저작권·초상권 분쟁 발생 가능성도 제기된다.
"오랜만에 부모님 만났다" 사람들 몰린 VR낚시터
②미라지소프트 안주형 대표, 최민경 COO "넥스트 모바일은 VR"
"우리가 쉽게 다룰 수 있는 폼팩터로 발전해 간다면 넥스트 모바일은 VR이 될 겁니다."
페이스북의 독립형 VR(가상현실) 헤드셋 '오큘러스 퀘스트2'가 국내에 물량이 풀리는 족족 완판되고 있는 가운데 덩달아 주목받는 한국 스타트업이 있다. 낚시게임 '리얼VR피싱'으로 매출액 400만 달러를 넘긴 '미라지소프트'가 주인공. 안주형 미라지소프트 대표는 "미국에선 한 가족당 퀘스트2를 3~4대씩 사서 스마트폰처럼 각자 쓴다"면서 VR게임의 성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설명했다. 도대체 퀘스트2라는 VR 기기가 무엇이길래 이토록 열광하는 걸까.
국내 몇 안되는 VR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인 안 대표는 2016년 9월 회사를 창업하기 전, 개인 프로젝트로 불국사를 관광용 VR로 구현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펼쳐왔다. 그는 "불국사 VR은 제작비가 많이 드는 반면 한 번 보고 끝나는 콘텐츠라는 한계가 있었다"면서 "관광과 재미를 결합한 VR 콘텐츠를 고민하던 중 게임에 접목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게 '리얼VR피싱'이다.
리얼VR피싱은 우리나라에서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전국 팔도 호수를 선정해 배경으로 담았다. 리얼VR피싱 이용자의 99%가 외국인으로 한국 관광을 유도하는 부가적 효과도 있다는 설명이다. 안 대표는 "한국 뿐 아니라 전세계 다양한 관광지를 옮기는 작업을 추진 "이라며 "올해 북미 쪽 낚시터를 시작으로 유럽과 일본, 동남아까지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최민경 미라지소프트 부대표(COO·최고운영책임자)는 "리얼VR피싱을 이용하는 분이라면 언뜻 낚시를 즐기는 강태공이겠거니 하시는데, 사실은 대부분 낚시 초보이거나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분"이라고 했다. 그는 또 "콘텐츠를 너무 전문적으로 가져가면 일반 사용자들에겐 자칫 허들이 돼 진입장벽이 된다"며 "VR 기획·업데이트 작업 때 누구나 본능적으로 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을 맞추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리얼VR피싱의 리더보드, 즉 물고기를 가장 많이 잡은 이용자 1위는 영국에 거주하며 치매를 앓고 있는 고령의 할아버지가 차지해 눈길을 끈다. 그는 관련 페이스북 커뮤니티에 "배우자를 잃은 상처와 슬픔으로 하루하루 힘들게 지내다 아들이 사준 VR 기기에서 다른 이용자들과 만나 대화도 나누고 난생 처음 낚시라는 스포츠에 빠져 살면서 삶의 의미를 되찾았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특히 최근 들어선 코로나19로 락다운된 도시가 늘면서 "부모님을 가상공간에서 오랜만에 만났다" 등 비슷한 사연들이 줄잇는다.
안 대표는 "가상환경은 현대인의 부족과 결핍을 채워주는 장치·도구이거나 공간"이라며 "기술이 발전할수록 실제 생활에 더 빨리 녹아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낚시게임을 오로지 게임으로만 접근한 건 아니"라며 "사실적 환경에서 여러 사람들이 함께 색다른 경험을 즐기고 공유한다는 힐링(Healing·치유) 포인트가 작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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