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직접 개발자의 하루를 체험해보니..의외로 필요한 능력은 '소통'

반진욱 2021. 4. 29.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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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 증권맨이 있다면 판교에는 코딩맨이 있다.”

“몸값은 부르는 게 값, 억대 연봉은 기본.”

개발자 인기를 표현하는 문구다.

구인구직 사이트에는 개발자를 찾는다는 글이 폭주한다. 뉴스에서는 개발자 평균 몸값이 억대를 넘어섰다는 소식이 넘쳐난다.

새로운 기회를 찾아 취준생 김 씨도, 대기업 직장인 박 과장도 전공을 가리지 않고 학원으로 코딩을 배우러 간다. 한쪽에서는 기존 ‘블루칼라’ ‘화이트칼라’ 노동자와 전혀 다른 개념의 노동자라며 이들을 ‘뉴칼라’라고 부른다. 개발자 외에 다른 직업은 곧 소멸할 것이라는 섬뜩한 예언을 내놓기도 한다.

과연 이들 말대로 개발자는 일반인과 전혀 다른 사람들일까.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기 위해 개발자 양성 교육기관 ‘코드스테이츠’를 방문해 개발자의 세계를 하루 동안 체험해봤다.

코딩을 잘 몰랐던 기자는 결국 사수에게 코딩의 기초를 배우기로 했다. 사진은 코딩 교육을 받는 반진욱 기자. <최영재 기자>
▶처음 접한 코딩 언어 입력에

▷문과 출신 기자는 진땀 뻘뻘

강남역 인근에 자리 잡은 코드스테이츠 사무실. 오전 10시에 도착해 들어가자 업무를 도와줄 개발자 사수가 기자를 맞았다. 만나자마자 날카로운 질문이 들어왔다.

“코딩은 어느 정도 수준이세요? 어떤 언어를 주로 쓰시나요?”

질문을 듣자마자 눈앞이 하얗다. 간단한 체험이라 생각하고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아무것도 모릅니다. 기초부터 배워야 합니다”라고 사실대로 말했다. 업무 시작 전에 급하게 코딩 기초를 배우기로 했다. 배우는 언어는 자바스크립트.

첫 과정은 기본적인 코딩 언어를 입력하는 방법, 즉 ‘선언’이다. 선언을 해야 이후 컴퓨터가 명령을 인식할 수 있다. 컴퓨터에 지금부터 관련 명령어를 입력하겠다고 ‘알리는’ 과정이다. 기본 명령어인 ‘let’을 치면 선언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multiple(곱하기)’이라는 단어를 선언하면 그 밑으로 입력하는 명령어는 전부 ‘multiple’을 설명한다는 뜻이다. ‘뭐야 너무 쉽잖아’라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온다. ‘let = multiple’을 입력했다. 호기로운 생각과 달리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분명 하라는 대로 했는데 자꾸 문제가 발생했다. 10분 동안 쩔쩔매자 사수가 웃으며 화면을 자세히 보라는 조언을 남겼다. 옆을 보니 문자는 작은따옴표를 붙이라는 설명 글이 나와 있었다. 따옴표를 입력하고 나서야 비로소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다음은 알고리즘과 함수를 만드는 과정이다.

앞선 선언 과정에서 입력한 multiple이 어떤 의미인지 입력해주는 단계다. 옆의 설명 화면에는 ‘multiple과 숫자2개를 입력하면, 2개 숫자를 곱한 값이 나오도록 만드세요’라는 문구가 등장했다. 차분하게 코딩 언어를 순서대로 입력했다. let = ‘multiple’을 입력한 뒤 multiple = num1 * num2를 차례로 썼다. 20분의 사투 끝에 수식을 무사히 완성했다.

가장 기초적인 2단계를 끝내는 데 걸린 시간은 30분. 이대로는 하루 종일 걸려도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배우기만 하다가는 사수가 본 업무를 제대로 하지 못할 것 같았다. 결국 배우는 과정은 여기서 끝내기로 하고 옆에서 사수가 코딩할 때 업무를 도와주는 것으로 합의했다.

교육이 끝나고 본격적인 업무에 들어가자 사수 움직임이 빨라졌다. 쉴 새 없이 컴퓨터를 두들겼다. 이날 사수가 개발하는 프로그램은 ‘카카오톡으로 로그인하기’였다. 코드스테이츠 사이트에 회원 가입을 할 때 카카오톡 아이디만 있으면 접속이 가능한 시스템을 만드는 작업이다. 사수 컴퓨터 화면에는 기자가 30분 동안 쩔쩔매며 배운 수식 수십 개가 펼쳐져 있었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컴퓨터를 쳐다봤다. 이 수식들이 다 이해가 되냐는 질문에 사수는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아요. 그러나 이것도 결국에는 언어고 수식이에요. 몇 번 보고 익숙해지면 오히려 영어·일본어 같은 외국어보다 더 쉬워요”라고 답했다.

개발자에게 회의는 필수다. 외골수처럼 방 안에 틀어박혀 프로그램만 개발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최영재 기자>
▶코딩 외 다른 일도 많아

▷소통·기획 능력도 필수

빡빡한 코딩 업무가 끝난 후 회의에 참석했다. 개발자도 회의를 하냐고 물어보니 ‘당연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웹 개발자는 소비자가 직접 쓰는 서비스를 개발하기 때문에 기획·고객센터·마케팅 팀과 밀접하게 움직여야 한다고.

“개발자도 회사에서 ‘개발’ 업무를 담당하는 근로자입니다. 특별한 점은 없어요. 개발자만 잘한다고 서비스나 프로그램이 문제없이 돌아가는 것도 아닙니다. 기획자가 방향을 잘 잡아줘야 하고 소비자들의 목소리를 정리해 전달해주는 서비스센터도 필수죠.”

이날 회의는 소비자들이 지적한 불만 사항의 개선안을 다뤘다. 고객센터에서 접수된 내용을 말해주면 기획자와 개발자가 개선점을 논의하는 방식이다. 기획자가 개선 방향을 말하면 그 방식대로 프로그램을 고칠 수 있는지 개발자들이 확인했다. 회의 방식을 지켜보니 개발자들이 코딩 외에 소통 능력도 필수라고 말하는 게 이해가 갔다. 기획자·고객 센터와 이야기를 끊임없이 나누며 왜 기획자가 말하는 대로 만들기 힘든지, 개발 문제가 무엇인지 잘 설명해야 했다.

▶억대 연봉 개발자 극히 일부

▷환상 갖고 접근하지 말라

오전 10시에 출근해 오후 3시까지 총 5시간 동안 체험한 개발자 일상에 대한 총평. 개발자도 결국에는 ‘노동자’다. 프로그램 개발을 할 수 있다고 해서 아무 걱정 없이 먹고사는 직업이 아니다. 일반 직장인과 똑같다. 일이 몰리면 불평을 하고 늘 연봉 인상을 꿈꾼다. 직장인들이 삼성과 LG 같은 대기업을 가고 싶어 하듯 개발자들 역시 판교의 ‘네카라쿠배(네이버·카카오·라인·쿠팡·배달의민족)’ 이직을 꿈꾼다.

업무에 필요한 다른 능력도 갖춰야 한다. 소통 능력이 필수다. 타인과 소통을 단절한 채 ‘코딩’에만 몰두하는 프로그래머를 생각하면 곤란하다. 개발자는 기획자를 비롯한 타 직원과 끊임없이 의견을 주고받아야 한다. 업무의 8할이 회의라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이날 체험도 코딩은 부수적인 업무였다.

개발자가 되고 싶다고 해서 코딩 능력에만 집중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회사는 소통 능력이 없는 개발자를 바라지 않는다.

[반진욱 기자 halfnuk@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06호 (2021.04.28~2021.05.0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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