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 하루전 "너무 부담"..극단선택 간호공무원 카톡

박은주 2021. 5. 27.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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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 선택을 한 간호직 공무원 이모씨가 사망 하루 전인 22일 동료(왼쪽), 상사와 나눈 카카오톡 메시지. 연합뉴스(전국공무원노조 부산본부 제공)


코로나19 관련 과도한 업무를 호소하며 극단적인 선택을 한 부산의 한 간호직 공무원이 숨지기 전날 동료와 메신저 대화에서 업무에 대한 압박감을 호소한 내용이 공개됐다.

부산 동구보건소 간호직 공무원 이모(33)씨의 유족은 26일 이씨가 극단적 선택을 하기 하루 전인 지난 22일 동료들에게 자신의 심정을 밝힌 카카오톡 대화록을 공개했다.

이씨는 확진자가 나와 코호트 격리에 들어간 부산의 한 병원을 지난 18일부터 관리했다. 그는 22일 오전 8시19분 동료 2명에게 “이른 시간 연락을 드려 죄송하다”며 “어제 오전 (코호트 격리된) A병원에 다녀와서 너무 마음에 부담이 된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정말 멘붕이 와서 B님과 논의했고 저는 주도적으로 현장에서 대응하기에 자신이 없다고 말씀드렸더니 몇 가지 방안이 있었는데 결론적으로 C선생님과 D주무님이 같이 맡아 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먼저 의논하는 게 맞는데 제가 진짜 좀 마음이 고되서 그런 생각을 못했다”며 힘든 심경을 재차 토로했다.

이씨는 이후 상사와도 대화를 나누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한 간부는 “코호트 격리를 처음 맡았고, 원래 담당해야 하는 순서가 아니었는데 하다 보니 힘들고 그만하고 싶은 마음이 들 수는 있다”면서 “그러나 중간에 못하겠다고 하면 제 입장에서는 책임감이 없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고 했다. 또 “평소 성실하고 적극적으로 업무에 임하는 것을 알고 고맙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진 않지만 잘 모르는 직원이라면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라며 “어쨌든 잘 부탁한다”고 했다.

이씨는 이에 “죄송하다”며 “코호트 된 후에 일어나는 일들에 머리는 멈추고 자신이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힘들어서 판단력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더는 실망시켜드리지 않도록 해나가겠다”고 했다.

유족은 보건소 직원들이 차례로 순서를 정해 코호트 병원을 담당해 왔으나 이씨가 업무 능력이 뛰어나다는 이유로 순서가 아닌데도 해당 병원 관리를 떠맡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유족에 따르면 생전 이씨는 포털사이트에 불안장애, 공황장애, 두통, 치매 등 신체적 증상은 물론 정신과, 우울증 등의 단어를 수차례 찾아봤다. 공무원 면직, 질병 휴직 등을 문의하는 글을 여러 번 살펴보기도 했다.

최형욱 동구청장은 “사망 경위를 파악 중”이라며 “평소 의욕이 넘치고 일을 잘하는 직원이라 동료로부터 신뢰를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또 “해당 직원이 코호트 격리에 들어간 병원과 연관된 업무를 해 담당하게 된 것으로 안다”면서 “본래 담당 업무가 있지만 간호직 공무원이라 역학조사 등 업무에 참여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고충에 대해 미리 소통하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며 “보건소 내 분위기도 좋았던 터라 직원들도 당황스러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지난 23일 오전 8시12분쯤 자택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전날 오후 8시쯤 주말 근무를 마치고 귀가한 이씨는 기분 전환을 위해 남편과 외출에 나섰으나 다음 날 숨진 채 발견됐다. 이씨는 7년차 간호직 공무원으로 동구보건소에서 근무한 지 5년째인 것으로 전해졌다.

유족은 본래 3일장을 치르려 했으나 이씨의 사망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5일장으로 연장한 상태다. 경찰은 유족, 목격자를 상대로 정확한 사망 경위 등을 수사하고 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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