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3천년 전부터 '정보의 외장화'로 뇌 용량 줄였다

조홍섭 2021. 10. 25. 15:5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애니멀피플]
정보 공유, 노동 분업 등 사회체계 변화 따라 에너지 다소비 큰 두뇌 불필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세디바 골격 화석과 발견자 리 버거. 두뇌의 크기가 비교가 안 되지만 현생 인류의 두뇌가 가장 컸던 것은 아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 애피레터 무료 구독하기 https://bit.ly/36buVC3
▶▶ 애니멀피플 카카오뷰 구독하기(모바일용) https://bit.ly/3Ae7Mfn

구석기인이 새로운 사냥감을 쫓다가 낯선 길에 접어들거나 악천후를 만났다면 살아남기 위해서는 오로지 자신의 경험과 판단으로 결정을 내려야 했다. 연장자의 조언도 중요했겠지만 포털과 지피에스(위성항법장치)로 무장한 휴대폰 한 대만 달랑 든 요즘의 초보 등산객보다 정보의 양은 적었을 것이다.

인류의 두뇌 용량이 3000년 전부터 급속히 줄어들기 시작했으며 그 이유는 집단지성에 의존하게 됐기 때문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인류가 지식을 외부에 저장함으로써 에너지 다소비 기관인 뇌를 축소하는 효율화를 달성했다는 내용이다.

제러미 데실바 미국 다트머스대 교수 등 인류학·진화생물학·신경과학 등 여러 분야에 걸친 연구자들은 과학저널 ‘생태학 및 진화 최전선’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이런 가설을 제시하면서 “사회성 곤충인 개미 연구로부터 집단지성의 팽창과 함께 인류의 두뇌가 수축하게 됐음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인류의 뇌 용량 진화. 210만년 전 급격한 팽창기가 시작됐고 3000년 전 증가 추세보다 50배나 빠른 축소세로 접어들었다. 오른쪽 확대 그래프는 최근 10만년 동안을 가리킨다. 제러미 데실바 외 (2021) ‘생태학 및 진화 최전선’ 제공.

연구자들은 먼저 인류 조상부터 현대인까지 985개의 두개골을 대상으로 지난 1000만년 동안에 걸친 인류의 두개골 용량의 변화 과정을 분석했다. 그러자 두뇌의 확장과 축소가 일어난 3번의 전환점이 드러났다.

인류의 조상이 침팬지 조상과 계통이 갈라진 이후 600만년 동안 인류의 두뇌는 4배나 커졌다. 처음에는 느리던 두뇌 팽창속도는 210만년 전 가파른 증가세를 나타냈고 150만년 전 약간 꺾이긴 했지만 여전히 빠르게 증가했다. 그러나 3000년 전 두뇌의 증가세는 급격한 감소세로 바뀌었다.

연구에 참여한 제임스 트라니엘로 미국 보스턴대 교수는 “인류는 두뇌가 극적으로 커져 몸집에 견줘서도 머리가 너무 크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며 “그러나 그 두뇌가 3000년 전부터 축소하기 시작했다는 건 예상치 못했던 일”이라고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현생 침팬지보다 20%나 큰 두뇌를 가졌을 정도로 인류는 이미 두뇌가 컸지만 호모속의 직립원인이 등장하고 불과 석기 이용에 따른 영양섭취 향상, 무리의 대형화 등에 힘입어 급속도로 큰 두뇌를 진화시켰다.

플라이스토세인 4만년 전까지 살았던 네안데르탈인 상상도. 인류의 직계 조상 가운데 가장 두뇌가 큰 종족의 하나였다. 네덜란드 박물관,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그러나 빙하기가 닥치던 플라이스토세(홍적세) 말 인류의 두뇌는 갑자기 줄어들기 시작했다. 주 저자인 데실바 교수는 “현대인의 두뇌가 플라이스토세 조상보다 작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라며 “왜 현대인의 뇌가 축소했는가는 인류학의 큰 미스터리”라고 말했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뇌가 줄어든 게 아니라 체격이 작아진 것이라거나 야생동물이 가축화하면서 뇌가 줄어든 것처럼 인류도 ‘자기 가축화’해 그렇다는 등 다양한 가설이 나왔다. 또 그 시기도 3만5000년∼1만년 전 등 여러 가지였다.

연구자들은 이번 연구에서 체격 감소보다 뇌 크기는 5배 이상 감소율이 높으며 개가 이미 2만년 전에 가축화하는 등 자기 가축화는 훨씬 이전에 이뤄졌다며 기존 가설을 배격했다. 또 정밀한 뇌용량 분석을 통해 감소 시점을 3000년 전으로 앞당겼다.

연구자들은 급격한 뇌 축소의 원인을 개미의 사회성 진화에서 찾았다. 트라니엘로 교수는 “인골 화석으로 왜 두뇌가 커지거나 작아졌는지 알기는 힘들다”며 “사회생활을 통해 뇌 크기가 다양하게 진화해 온 개미는 훌륭한 연구 모델”이라고 말했다.

가위개미는 나뭇잎을 썰어 모아 곰팡이를 길러 먹는 농사짓는다. 집단이 클수록 일개미의 뇌가 작은 것으로 밝혀졌다. 에이드리언 핑스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연구자들은 베짜기개미, 가위개미, 불개미 등에 관한 연구로부터 집단 차원의 인지능력과 노동분화에 따라 일개미의 뇌 크기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지식이 공유되고 한 개체가 특정한 일을 전문적으로 맡는 사회집단일수록 뇌는 점점 작아진다(효율화한다)는 것이다.

트라니엘로 교수는 “사람과 개미 사회는 아주 다르고 전혀 다른 경로를 거쳐 사회적 진화를 이뤘다”며 “그렇지만 사람과 개미는 사회적 삶의 중요한 양상에서 비슷한데 집단적인 의사결정과 노동 분업, 그리고 농업을 통한 식량 생산 등이 그렇다”고 설명했다.

베짜기개미는 50만 마리 이상이 거대한 집단을 이루기도 한다. 마크 마라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우리의 뇌는 몸무게의 2%밖에 안 되지만 우리 몸이 소비하는 에너지의 20%를 쓴다. 따라서 뇌의 에너지 소비 부담이 더 컸던 인류 조상에게 뇌 용량을 줄이는 건 유력한 선택 압력이었다. 연구자들은 인간사회에서 지식을 외부화해 개인이 저장하는 정보의 양을 줄임으로써 뇌 크기를 줄이는 것이 가능해졌을 것으로 보았다.

트라니엘로 교수는 “우리의 가설은 집단지성에 점점 더 의존하면서 뇌 크기를 줄일 수 있었다는 것”이라며 “무리 속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보다 무리 전체가 더 똑똑한 법”이라고 말했다.

인용 논문: Frontiers in Ecology and Evolution, DOI: 10.3389/fevo.2021.742639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Copyright © 한겨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