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치료제로 청정국" 외치다 백신 선구매 시기 지나갔다 [이슈&탐사]

이슈&탐사2팀,권기석,양민철,방극렬,권민지 입력 2021. 5. 12.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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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백신 도입 골든타임 놓쳤나] ③·끝 '치료제 우선' 전략의 실패
셀트리온이 개발한 코로나19 항체치료제 ‘렉키로나주’. 렉키로나주는 지난 2월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조건부 허가를 받고 현재 임상 3상을 진행하고 있다. 국민일보DB


지난 1월 8일 국회 본회의장. “백신 (도입)에 왜 이렇게 소극적이었냐”고 야당 의원이 질의하자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이렇게 말했다. “방역을 위한 정부의 전략은 K방역을 철저하게 실천한다, 그래서 확진자 숫자를 최소화한다, 그다음에는 치료제를 활용한다, 그다음에 수입 백신을 쓴다 (입니다).”

발언에서 눈에 띄는 점은 ‘치료제 활용’이 ‘수입 백신 사용’에 앞서 있다는 것이다. 그가 말한 치료제는 국산 치료제다. 해외 백신보다 국산 치료제에 더 비중을 두고 코로나19 사태에 대처한다는 게 최근까지 정부 전략이었음을 말해준다.

왜 백신을 제때 확보하지 못했는지 따질 때 여러 전문가는 치료제에 우선순위를 둔 정부의 전략을 돌이켜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치료제 먼저’ 전략이 백신 확보의 중요성을 간과하게 했다는 것이다.


국민일보 취재팀이 지난해 정부 보도자료와 브리핑, 여당 주요 인사들의 메시지 등을 분석한 결과 치료제를 강조한 대목이 많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4월 9일 참석한 행사의 이름은 ‘코로나19 치료제·백신 개발 산·학·연·병 합동 회의’였다. ‘백신’보다 ‘치료제’가 먼저 적혀 있다. 문 대통령은 이 행사에서 “치료제와 백신은 코로나19의 완전한 극복을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라고 말했다. 역시 치료제가 백신보다 먼저 언급됐다.

지난해 4월은 백신과 치료제 가운데 어느 것이 ‘게임체인저’가 될지 관측하기 어려운 시기였다. 그렇지만 코로나19 치료제에 무게를 싣는 정부 기조는 해외에서 백신 개발에 성공한 지난해 말과 최근까지 이어졌다.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해 10월 18일 국산 치료제를 개발 중인 셀트리온 공장을 방문해 “치료제를 조기에 대량 생산하면 우리는 코로나19를 조기 종식하고 세계 최초의 코로나19 청정국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28일에도 “우리가 코로나19 조기 진단에 성공한 데 이어 조기 치료에도 성공한다면 그것은 K방역의 또 하나의 쾌거”라고 말했다.

왜 치료제를 우선시했나

정부에서 방역 실무를 담당한 관계자들은 치료제에 우선순위를 두고 전략을 짠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코로나19 범정부 치료제·백신 개발 범정부지원위원회 관계자는 11일 “위원회는 기본적으로 (치료제·백신 개발과 백신 도입) 투 트랙 전략이었다. 치료제도 놓칠 수 없어 열심히 보고했던 것이지 치료제로 국산 백신이 나올 때까지 버틴다는 건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건강·의료 관련 시민단체들은 정부·여당의 코로나19 전략에 정치가 개입한 결과라고 주장한다. 정부·여당이 ‘K방역 성공’이라는 정치적 효과를 노리고 국산 치료제에 대한 기대감을 과장해 왔다는 것이다.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은 지난 1월 성명을 내고 “한계가 분명한 항체치료제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은 방역, 백신과 함께 코로나19 극복의 세 축으로 언급하는 등 크게 힘을 실었고, 이낙연 민주당 대표도 허가되기도 전에 성공을 기정사실화했다”면서 “이는 과학의 영역에 정치가 근거 없이 개입하는 효과를 낳았다”고 밝혔다.

이동근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사무국장은 여당과 총리가 국산 항체치료제를 개발하는 셀트리온 서정진 명예회장의 주장을 여과없이 받아들이고 이용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총선, 재보궐선거 등 정치적 이벤트 국면에서 ‘우리가 K방역을 이렇게 잘 해내고 있다’고 홍보하는 차원에서 서 회장의 말을 빌려 그런 발언이 이어진 거 같다”고 말했다.

서 회장은 셀트리온이 개발하는 치료제로 코로나 사태를 이겨낼 수 있다는 발언을 여러 차례 했다. 지난해 11월 언론 인터뷰에서 “치료제가 나오면 국민이 코로나에 대한 불안감을 내려놓을 수 있을 것이다. 내년(2021년) 봄에는 한국이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국민이 마스크 없이도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코로나 청정국’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 회장은 치료제보다 백신 사용 시기가 늦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지난해 11월 화이자 백신 개발 발표 직후 라디오방송에서 “내년 하반기쯤 사용할 수 있는 백신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셀트리온 관계자는 “‘백신도 중요하고 치료제도 중요하고 자가방역도 중요하다. 이런 모든 게 이뤄져야 코로나 청정국이 될 수 있다’는 뜻이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치료제의 정치적 이용에 대해서는 이를 조건부로 허가한 중앙약사심의위원회도 경계의 목소리를 낸 것으로 확인됐다. 셀트리온의 코로나19 항체치료제 렉키로나주960㎎는 지난 1월 17일 검증자문단 회의와 1월 27일 약심위, 2월 5일 최종점검위원회를 거쳐 조건부 허가를 받았다. 1월 27일 약심위 회의록에 따르면 약심위원장을 맡은 오일환 가톨릭대 의대 교수는 조건부 허가를 결정하면서 “정치적으로나 의료적으로나 남용되어서는 안 되며 현재의 급박한 상황에서 고육지책으로 나온 판단”이라고 말했다. 오 교수는 취재팀과의 통화에서 “당시 렉키로나주는 ‘1호 치료제’라는 이유로 너무 많은 기대를 받고 있었다. 일부 정치인은 심지어 병원에 입원하지 않고 생활치료센터 같은 곳에서 쓸 수 있지 않느냐고 했다”며 “(치료제의 의미를) 지나치게 흐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도에서 말한 것”이라고 말했다.

심사위원 일부, 조건부 허가도 반대

식약처는 지난 2월 5일 셀트리온 렉키로나주에 조건부 품목허가를 내주면서 “앞으로 국내에서 사용될 백신과 함께 코로나19를 극복하고 일상으로 복귀하기 위한 의미 있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

그런데 약심위에 참석한 심사위원들은 이 약물의 조건부 허가를 전폭적으로 지지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약심위 회의록을 보면 한 위원은 “치료제의 효과가 탁월하다고 생각되지는 않으나 의료진이 사용할 수 있는 치료 선택권 측면에서 조건을 달아 쓸 수 있게 해주는 것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상 자료 등이 미비하니 정식 품목허가가 아닌 특례 제조 승인을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일부 위원은 “경증에서 증상 개선의 임상적 의미는 별로 없다고 판단된다”며 “조건부 허가는 무게가 너무 크다고 생각된다”고 했다. 심의 막바지에는 “조건부 허가는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위원이 있다는 사실을 기록해 달라”는 요청도 있었다.

지난 3일 서울 용산구 예방접종센터에서 의료진이 백신 전용 냉장고에 보관된 화이자 백신을 꺼내는 모습. 냉장고 대부분 칸이 비어 있다. 연합뉴스


결국 렉키로나주는 ‘고령이거나 기저질환이 있는 고위험군 경증 환자’와 ‘중등증 환자’에게만 투여하기로 하고 조건부 허가를 받았다. 렉키로나주는 지난 2일까지 2545명에게 투약됐다. 하루 평균 환자 34명에게 사용되고 있다.

의료 현장에서는 ‘효과가 있다’는 의견과 ‘아직 알 수 없다’는 의견이 엇갈린다. 김동완 부산의료원 중환자실장(호흡기내과 전문의)은 경증 환자에게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처음에 증상도 없고 폐렴도 없었던 분들은 렉키로나주를 맞고 나면 산소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악화되는 경우를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 내과 교수도 “기전 자체가 초기에 (치료제를) 넣는 게 중요하다. 생활치료 시설에서 맞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단일 치료제로 종식 불가능”

반면 한창훈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부작용이 심한 건 아니지만 이 치료제를 쓴다고 안 좋던 사람이 확 좋아지고 그런 건 아니다”라며 “아직까지 상태가 나빠질 사람이 이 치료제로 안 나빠진 건지 알 수는 없다”고 말했다.

변이 바이러스에 대한 효과도 의견이 분분하다.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 제2부본부장(국립보건연구원장)은 지난 2월 렉키로나주의 효능과 관련해 “코로나19 변이주 6종과 영국 변이주에 대해서는 우수한 억제 능력을 확인했지만 남아공 변이주에는 억제능력이 현저히 감소한 양상을 보였다”고 말했다. 다국적제약사 일라이릴리의 항체치료제 밤라니비맙은 최근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에 효능이 떨어진 것으로 나타나 미국 정부에 의해 공급이 중단된 상태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렉키로나주도 변이 바이러스에 효과가 낮은 점이 밝혀지면 식약처가 허가 취소를 고려해 볼 수 있다”고 했다. 셀트리온 관계자는 “렉키로나주는 영국과 미국 캘리포니아, 브라질 변이 등에 중화 능력을 보였고 최근 남아공 변이 동물 실험에서도 중화 능력이 확인됐다”며 “변이에 계속 대응하려고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렉키로나주의 국내 공급가는 1인당 투약에 40만~60만원으로 알려졌는데 지금은 방대본이 한시적으로 직접 구매해 의료기관에 공급한다. 상대적으로 비싼 백신으로 꼽히는 화이자 백신의 1회 접종 비용은 2만원대로 추정된다.

분명한 건 국산 치료제로 한국이 코로나 청정국이 될 것이라는 여당 주요 인사들과 셀트리온 서 회장의 예상이 들어맞지 않았다는 점이다. 단 하나의 치료제로 코로나를 종식하는 건 처음부터 불가능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일환 교수는 “치료제는 감염 단계 등에 따라 여러 기전별로 다양하게 함께 쓰이며 치료 효과를 높인다. 어떤 하나의 치료제가 게임체인저가 되기란 어렵다”고 말했다. 의사 출신인 신현영 민주당 의원은 “렉키로나주는 주사제이고 가격이 비싸다는 점에서 보편적 사용으로 확대하기에는 허들(장애)이 있다. 신종플루를 제압하는 데 혁혁한 공헌을 한 타미플루와는 성격이 다르다”고 말했다.

김우주 교수는 “정부가 지난해부터 항체치료제 쪽에 더 무게를 둔 것이 의아했다”면서 “치료제 개발을 나무랄 수는 없는데 균형 있게 백신 확보를 함께 했어야 했다. 백신을 선구매하고 대유행에 대비했어야 할 때에 넋 놓고 딴짓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슈&탐사2팀 권기석 양민철 방극렬 권민지 기자 key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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