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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농민에 불과하며 항일 투사아니다

입력 1992.03.10. 18:58 수정 1992.03.10.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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在蘇韓人 베일에 싸인 2차대전후 행적 공개 (알마아타 로이터=연합(聯合)) 모스크바로부터 지난 46년 金日成에게 이데올로기를 주입시키라는 지시를 받고 金에게 마르크스주의를 가르켰던 在蘇韓人 朴 일 페테르 알렉산드로비치씨(80)는 9일 알마아타의 자택에서 金의 베일에 싸인 2차대전이후의 행적을 최초 공개했다.

朴씨는 이날 "당신이 첩자라 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는 늙었기 때문에 당신에게 KGB의 비밀을 털어놓겠다"고 농담조로 서두를 꺼낸뒤 지난 46년 카자흐 공화국 수도 알마아타에서 마르크스주의를 강의하고 있을 당시 평양으로 가서 이념적훈련을 맡으라는 특별임무가 자신에게 떨어졌다고 말했다.

朴씨는 이어 자신이 맡을 학생은 그후 북한 공산당 정권의 "위대한 수령"자리에 오르게될 金日成으로 1년이상 金과 친하게 지냈으며 아마도 자신이 金을 사적으로 가장 잘아는 외국인일 것이라고 말했다.

朴씨는 김일성이 당시 직접 자신의 생애를 솔직히 그에게 이야기했기 때문에 북한에서의 김일성에 대한 개인숭배가 완전한 허구에 기초한 것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면서 이같은 개인숭배로 미화된 그의 생애는 실제의 그의 생애와는 딴판인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폭로했다.

朴씨는 "金은 전혀 교육을 받지못했었고 그의 한국말은 형편없이 서툴러 그가 중국인인지 한국인인지 조차 분간하기 어려웠다"면서 金이 어렸을때부터 중국인들 사이에서 자랐었다고 설명했다.

朴씨는 그러나 "金은 정식 교육은 받지 못했지만 스탈린처럼 매우 자질이 뛰어난 학생이었다.그리고 권좌에 오르기전까지는 매우 상냥했으며 좋은 성품을 갖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朴씨는 서류와 신문기사들을 펼쳐보이며 자신은 그후 평양대학의 부총장으로 임명됐으며 당시 명목상의 북한 의회 의장이던 金두봉을 두번째 학생으로 가르쳤다고 밝혔다.

朴씨는 그러나 金두봉이 소련측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金日成에 의해 제거된 후 어느날 레베데프 소장으로부터 金의 공식전기를 쓰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말했다.

朴씨는 그후 7개월간을 밤잠도 제대로 자지않고 노트 4권 분량의 전기를 완성했다고 밝히면서 "나는 모든 것이 거짓말인 웅장한 전기를 쓸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金의 행적과 관련, 朴씨는 "金은 평범한 인물이었으며 일제(日帝)와 맞서 싸우지도 않았다.金은 단순히 일제로부터 도망쳐 빨치산에 가담했으나 싸울 기회도 없었다"고 말했다.

朴씨에 따르면 金은 42년 겨울 일제의 공격기간동안 중국과의 국경지역에서 소비에트 수비대에 의해 다른 30여명과 함께 브야트카 마을에서 억류됐었다.

朴은 이어 "金은 軍계급도 없었으며 농부였다.그가 단순한 농부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자 모든 것이 거짓말임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朴씨에 의하면 金은 그후 소비에트군에 의해 극동의 하바로프스크와 블라디보스토크로 옮겨졌으며 스탈린의 대계획하에서 볼모가 됐다.

朴은 이어 金日成이 아닌 한국인들의 보고에 의하면 45년 9월 소련군 대위의 복장을 입은 金은 북한으로 진군, 해방군으로서 대중들앞에 나섰으나 처음에는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다수의 서방역사가들은 金의 전기에 대해 의문을 품어왔는데 朴씨의 이같은 설명은 서방에서 알져진 바와도 부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