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동료학생들 참변소식에 울음바다

1994. 10. 21.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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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8명 사망한 무학여고,초상집 분위기

개교후 최대사고, 선생님들도 망연자실

(서울=연합(聯合)) "우리 선생님들은 늘 슬기롭고 침착하게 생활하고 있는 무학인들을 믿습니다. 지금처럼 어려운 때일수록 동요하지 말고 서로 힘을 합쳐 침착하게 행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21일 발생한 성수대교 붕괴사고로 한꺼번에 8명의 학생을 잃은 서울 성동구 행당동 무학여고 金榮義 교장선생님(65.여)은 사고가 발생한지 3시간30분이 지난 이날 오전 11시 동료 학생들의 참변소식을 전해들은 학생들이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자 교내방송을 통해 학생들을 진정시키려고 애를 썼다.

학생들을 상대로 방송을 마친 교장선생님은 그러나 "결석자로 최종 확인된 8명 가운데 1명이라도 돌아오기를 바랐는데... 어린 꽃봉우리들이 자신들의 꿈도 펴지 못한 채 어른들의 잘못으로 져버리다니.."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金교장은 또 "이번 사고는 무학여고 뿐아니라 국가적인 불행"이라고 말하면서도 "그러나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들이 거푸 일어날 수 있느냐"며 교량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어른들의 안일한 행동으로 인해 어린 학생들이 희생된데 대해 분을 삭이지 못해하는 모습이었다.

이날 학우들의 불행한 소식에 학생들이 혹 동요할 것을 우려해 선생님들은 정상적수업에 임하며 전혀 내색을 하지는 않았으나 학생들은 쉬는 시간 등에 교실에 설치된 TV를 틀어보거나 몰래 소지하고 있던 소형라디오를 통해 사망자 명단에 동료 학생들의 이름이 포함된 사실을 알고 술렁이기 시작했다.

특히 사망자 가운데 黃선정(先正)양(16.서울 강남구 일원동) 등 3명이 포함된 것으로 확인된 1학년 2반의 경우 "설마, 설마"하며 수업이 시작돼도 등교를 하지않은 친구가 나타나기를 기다렸으나 사망자 명단을 통해 이들의 이름이 하나 둘씩 확인되자 학생들은 슬픔을 이기지 못해 책상에 얼굴을 파묻고 흐느끼다 심지어 실신하기까지 했다.

黃양 등과 함께 같은 교실에서 공부해온 급우 金모양(16)은 "선정이가 죽었다니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면서 "지난주에 중간고사를 잘 치렀다면서 마음껏 놀자고 한 것이 눈에 선한데..."라고 흐느끼며 고개를 들지 못했다.

1학년 2반 뿐아니라 급우들이 변을 당한 사실이 확인될때마다 학생들은 비명을 지르면서 부둥켜 안고 우는 등 온 학교는 마치 초상집을 방불케 했다.

또한 환경미화원으로 이날 밤샘근무를 한 뒤 귀가길에 성수대교 붕괴소식을 듣고 혹시나 해서 학교를 찾아왔던 선정(先正)양의 아버지 黃仁玉씨(41)는 딸의 사망소식에 한때 실신했으나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전에는 절대 믿을 수 없다며 딸의 시신이 안치된 강남시립병원으로 달려가기도 했다.

학교에는 이와함께 딸의 안전을 묻는 학부모들의 전화가 빗발쳤으며 일부 학부모들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학교까지 달려나와 딸이 수업받는 모습을 확인하기도 했다.

선생님들은 "수업시간에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칠판을 응시하던 학생들이 눈에 선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면서 "그러나 우리는 친구를 잃어버린 다른 학생들을 달래야 하기 때문에 슬퍼할 수도 없다"며 고통스러워했다.

선생님들은 특히 이번에 변을 당한 학생들이 강남구 수서동,일원동,압구정동, 청담동 등에 거주하고 있으면서도 현재 강남에 위치해 있는 고등학교의 수가 부족해 할 수 없이 성수대교를 건너서 한강너머 강북에 있는 이 학교를 다니다 사고를 당한 것이기 때문에 더욱 안타깝다고 전했다.

결국 선생님들은 이날 정상수업이 불가능할 것으로 판단,오전 수업을 끝으로 모두 귀가토록 했다.

이에앞서 이날 오전 7시50분께 방송을 통해 성수대교가 붕괴됐다는 사고소식을 접한 선생님들은 이 학교 1천7백2명의 학생 가운데 3분의 1에 가까운 5백여명의 학생들이 강남일대에 거주, 모두 성수대교를 건너 등교해야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사고를 당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눈앞이 아득했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 학교의 아침 등교시간이 7시40분인 만큼 급히 담임선생님들을 시켜 학교에 출석하지 않은 학생들의 신원을 파악했으나 처음에는 결석생이 무려 20여명에 달해 선생님들은 망연자실하기도 했었다.

사망이 확인된 학생들의 담임선생님과 교장선생님을 비롯한 10여명의 선생님들은 제자들의 시신이 안치된 병원으로 달려가 정확한 학생들의 신원을 확인하고 불의의 사고로 딸을 잃고 오열하는 학부모들을 위로했다.

선생님들은 " 지난 91년 이학교 출신인 성균관대생 金貴井양이 시위중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기는 했으나 학교가 개교한지 무려 54년 동안 이번처럼 어려웠던 적은 없었다"며 " 기성세대들의 잘못으로 어린 학생들이 희생당하는 참변은 다시는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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