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三豊참사..생사(生死)의 갈림길 5분-(3)

1995. 7. 15.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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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1층,붕괴 직후에야 탈출길 나서

평소와 다름없이 오후 5시가 지나면서 저녁 반찬거리를 사러나온 주부들과 엄마를 따라온 어린이들 등으로 백화점 지하1층이 북적거리고 있었다.

패스트푸드 음식점인 `웬디스'에서는 30여명의 손님들이 마주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슈퍼마켓에서는 붐비는 손님들로 직원 30명이 정신이 없었다.

오후 5시50분. A동 건물 중앙부에 있는 에스컬레이터를 통해 아줌마와 애기 등 10여명의 손님이 막 지하1층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수입 통조림 50% 세일합니다" 두산종합식품 파견 직원인 權恩靜씨(22)는 세일기간을 맞아 에스컬레이터 입구까지 나와 내려오는 손님들에게 소리쳤다.

5시55분. 나이는 한살 어리지만 친구처럼 지냈던 이종사촌 동생 李恩英씨(21.수입식품부 아르바이트생)가 슈퍼마켓 쪽에서 포장을 마치고 달려오고 있었다.

權씨가 "무슨 포장을 그렇게 열심히 하니"라고 핀잔을 주었더니 李씨는 "나는 장사하는 것보다 포장하는게 더 재밌어"라며 수줍게 대답했다.

두 사람은 흥이 나서 내려오는 손님들을 향해 더욱 힘껏 소리쳤다. "자... 통조림 반값에 드립니다. 안사면 손햅니다"

그 때였다. 어디선가 `휘휙'하는 소리와 함께 바람이 아주 강하게 불어왔다. 곧 이어 `우지끈' 소리를 내며 무엇인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태풍이 불어오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은 동시에 뒤로 돌아 뛰기 시작했다. 2, 3걸음 정도 뛰었을까. 두 자매의 몸뚱아리는 마치 낙엽처럼 공중으로 떴다.

백화점 내부 시설물들이 무너지고 깨졌으며 權씨가 팔고있던 통조림들도 공중으로 날아 바닥 여기저기서 나뒹굴었다.

강한 폭풍은 權恩靜씨를 주류코너 앞으로 내팽개쳤으며 하느님은 주류 코너 장식장으로 權씨 위에 보호막을 만들어주었다.

하느님은 그러나 공평하지 않았다. 權씨 바로 옆에 동생 李恩英씨를 옮겨놓고서는 다리와 팔 위에 육중한 콘크리트 더미를 얹어 놓은 것이다.

權씨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주위에서 남녀 10여명이 "아프다" "살려달라"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지하1층은 이미 아비규환으로 변해 있었다.

깨진 양주병에서 나오는 역한 알코올 냄새와 한꺼번에 쏟아진 커피냄새 때문에 속이 울렁거렸다. 權씨는 마구 토하기 시작했다.

한편 서울 대원외국어고 교사인 洪性泰씨(40)는 학교수업을 마치고 부모님께 드릴 빵을 사기 위해 막 백화점에 도착했다. 그 때가 오후 5시40분.

그는 노모의 모습을 떠올리며 백화점 지하 1층 식품매장으로 내려갔다. 제과점에서 평소 노모가 좋아하는 빵을 고른 뒤 계산을 마치고 막 돌아서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강한 바람소리가 들리더니 `우지끈'하는 소리와 함께 하늘이 무너지듯 쏟아져 내리는 콘크리트 더미에 깔렸다.

洪씨가 의식을 되찾았을 때 바로 옆에서는 權恩靜, 李恩英 자매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오고 있었다. "우리는 명이 길어서 꼭 살아서 나갈 수 있을거야"

이에 앞서 이날 오후 5시56분 지하1층 아이스크림 판매코너에서는 李幸柱씨(25)가 땀을 뻘뻘 흘리며 손님이 주문한 밀크쉐이크를 만들고 있었다.

`우르르'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주위에 있던 동료 직원들이 `이게 무슨 소리야'하며 우왕좌왕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찔했던 李씨는 순간 무의식적으로 계산대 밑으로 달려가 엎드렸다. 무언가 육중한 돌멩이에 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더니 그 후로는 모든 것이 깜깜해졌다.

"정신차려" 2-3시간 쯤 지난 것 같았다. 옆에서 사장인 추경영씨(45)가 李씨의 뺨을 때리며 "정신을 차리라"고 계속 외쳐댔다.

오른쪽 다리가 육중한 철골 구조물 속에 끼여 참기힘든 통증이 왔다. 엄습해 오는 공포감. 타오르는 갈증. 李씨는 다시 정신을 잃었다.

그러나 강한 폭풍이 한차례 지나간 다음에도 지하1층 곳곳에서는 정신을 잃지 않았거나 시멘트 덩이에 깔리지 않은 사람들의 탈출 행렬이 계속 이어졌다.

특히 슈퍼마켓 부근에 있었던 사람들 대부분은 콘크리트 붕괴 정도가 상대적으 로 약해 거의가 사고현장을 빠져나갔다.

여직원들과 주부들은 비명소리를 지르며 희미한 불빛을 따라 콘크리트 더미를 헤쳐나갔다. 어떤 주부는 바닥에 있는 과일에 미끄러져 넘어지기도 했다.

다행히도 계산대 바로 옆에 있는 비상구를 통해 저녁 반찬거리를 사러나온 주부들과 여직원들은 무사히 지옥 탈출길에 성공했다.

결국 슈퍼마켓에서 근무하는 직원 30명 가운데 지하3층 직원식당에 간식을 하러간 2명을 뺀 나머지 28명 전원이 비상구를 통해 사고현장을 무사하게 벗어났다.

그러나 웬디스에 있던 30여명의 손님들과 지하1층 곳곳에서 판매와 쇼핑을 즐기던 사람들(1백-2백여명 가량으로 추정됨)의 소식은 아직 들려오지 않고 있다.

◆암흑세계로 변한 지하2층 주차장

사고 당시 주차장과 기사대기실 등이 있는 지하2층에는 이 백화점 청원경찰 吳진호씨(46)가 순찰을 돌고 있었다.

갑자기 `우르르'하는 소리와 함께 매케한 먼지가 안개처럼 덮이더니 여기저기서 천정이 무너져 내렸다. 주차장 전체가 암흑세계로 변하고 말았다.

吳씨는 라이터불을 켜고 비상계단을 찾아 나섰다. 오로지 살아야겠다는 마음 뿐이었다. 吳씨는 무너진 콘크리트 더미 사이를 헤짚고 허둥지둥 달렸다.

무슨 냄새가 났는지, 주위에 사람들이 얼마나 있었는지, 어떻게 탈출했는지 전혀 몰랐다. 오로지 빨리 암흑세계를 벗어나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지하2층 비상구 출구 쪽에서는 이날 에어컨이 나오지 않아서인지 무척 짜증스런 표정의 宋永淑씨(26.여)가 터벅터벅 걸어 나오고 있었다.

宋씨 손에는 시어머니 생일날 주기 위해 3층 선물코너에서 산 선물 꾸러미가 들려 있었으며 바로 뒤에는 딸 성아양(4)과 아들 성용군(7)이 따라오고 있었다.

宋씨는 비상구를 빠져나와 잠깐 멈추고는 차가 있는 곳을 확인하기 위해 방향감각을 되찾고 있었다.

"이게 웬일인가" 주차장 쪽에서 갑자기 강한 바람이 불어닥쳤다. 곧이어 머리 위에서 콘크리트 더미가 쏟아져 내렸다.

宋씨는 옆에 있던 딸 성아양을 잽싸게 껴안은 채 콘크리트 더미를 뚫고 공중전화 박스와 콘크리트 기둥 사이에 생긴 공간쪽으로 몸을 피했다.

그리고는 곧 실신했다. 宋씨는 딸이 울부짖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으며 곧이어 출동한 119구조대원들에 의해 건물 잔해더미 속에서 구출됐다.

그러나 아들의 생사는 확인하지 못했다.

쇼핑을 마치고 백화점을 떠나기 위해 차에 올랐거나 주차장을 걸어다녔던 사람들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지하3층, 갇힌 사람들과 빠져나온 사람들

삼풍백화점 관리용역회사인 신천개발 소속 직원인 徐春熙씨(60.여)는 자신이 맡고 있는 A동 지상1층 매장에서 청소를 하고 있었다.

같은 직원인 李日炯씨(57)도 지상1층 반대편에서 청소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손님들이 적은 편이라서 그런지 청소하기가 편했다.

이들은 각각 퇴근을 하기 위해 지하 3층 탈의실로 내려갔다. 2명을 빼고는 24명 모두가 탈의실에 들어와 있었다.

여자용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시계를 쳐다보니 5시57분을 가리키고 있었다.혼자서 "이제 퇴근해야 겠구나"라며 중얼거렸다.

그 순간 윗층에서 `우루룽' 하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차가 지나가길래 이렇게 소리가 크지" 徐씨는 의아하게 생각했다.

곧바로 `씽'하는 바람소리와 함께 `쫙'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불이 번쩍하고는 전기가 나가 버렸다.

문쪽에서 흙먼지가 날아들어오고 위에서는 콘크리트 더미가 떨어졌으며 여기저기서 비명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탈의실 밖에 있던 차들이 `펑'하는 소리를 내며 찌그러지는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남자 탈의실에서는 매케한 연기마저 쏟아져 들어왔다.

여자 탈의실 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여자 탈의실 안에 있던 14명의 여자 청소원들은 계속 비명을 지르며 우왕좌왕했다.

누군가가 옆쪽에 있는 남자 탈의실을 향해 소리쳤다. "아저씨들 나갔어요" 애타게 구원을 요청했다. 남자 탈의실에서는 독한 연기 냄새로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남자와 여자 탈의실 사이에 있는 환풍구를 통해 남자 청소원 10명이 건너왔다. 믿음직스러웠다. 운좋게도 남자 한 명이 후레쉬를 가지고 있었다.

탈의실 전체를 비춰보니 입구 쪽은 콘크리트 더미가 떨어져 완전히 막혀 있었으며 사방의 벽은 거미줄처럼 금이 가 있었다.

어떤 남자 청소원이 "잘못하면 모두 질식해서 죽는다"며 방금 건너왔던 환풍구를 막고 있었다.

한편 이날 오후 5시50분 A동 건물 지하3층에는 시장기를 느낀 백화점 직원 70여명이 직원식당으로 내려와 간식을 하고 있었다.

李康先군(20.용인대 물리치료과 2년)은 단짝친구인 崔明錫군(20)과 崔군의 여자친구 柳정화양(21) 등과 함께 라면과 닭튀김을 먹어 치웠다.

이들은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을 시켜 먹었다. "지하1층 수입신발코너에 있는 누나들에게 아이스크림 좀 갖다주고 올께" 평소 정이 많았던 崔군이 말했다.

崔군이 두 손에 아이스크림을 들고 A동 건물 북동쪽 비상계단을 통해 총총히 올 라가고 있었다. 李군은 닭고기를 먹으면서 손에 묻은 기름기로 찝찝했다.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李군은 柳양 등에게 허리를 굽히고는 화장실 쪽으로 걸어갔다.

화장실 입구에 들어서려는 순간 `후다닥' 소리와 함께 여직원 7, 8명이 황급히 뛰쳐 나오고 있었다.

이에 뒤질세라 갑자기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며 회오리 바람이 뒤쫓아오더니 여직원 4, 5명을 순식간에 공중으로 날려보냈다.

李군은 무엇인가에 기댄 채 여직원들이 바닥에 떨어지는 비참한 장면을 목격했다. 곧 이어 천장이 흔들거리더니 `쿠쿵' 소리가 연달아 났다.

李군은 깜깜한 어둠을 뚫고 수십명의 사람들 틈에 섞여 비상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지하1층에 도착하자 바로 바깥으로 통하는 현관 문이 보였다.

李군은 50, 60명의 사람들과 함께 탈출에 성공했으나 온몸이 콘크리트 더미에 맞아 머리와 가슴, 팔, 옆구리 등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당시 직원식당에서는 이 백화점 경비대장 尹鍾根씨(39)도 배식을 받아 식탁에 앉아 있었다.

지하1층 경비실에 있었던 尹씨는 시계가 5시45분을 가리키는 것을 보고 지하3층 직원식당으로 출발했다.

첫 숟갈을 입에 넣는 순간 `번쩍'하며 전등이 꺼지더니 칡흙같은 암흑 속에서요란한 바람소리가 휘몰아쳐 왔다.

순간 무슨 물체가 옆구리를 충격, 갈비뼈 2개를 부러뜨리더니 尹씨를 10여m 떨어진 곳으로 날려보냈다.

천장이 `우루루' 무너져 내리자 그는 식탁 밑으로 기어들어갔다. 아픔도 고통도 없었다.

몇분 정도 지나자 천장이 더이상 무너지지 않았다. 그는 주차장 쪽으로 엉금엉금 기어갔다. 그러나 그쪽은 이미 완전히 붕괴돼 막혀 있었다.

그는 허리에 차고 있던 무선호출기를 꺼내 불빛을 밝혔다. 여기저기 비춰보았다. 그가 1번 비상구를 통해 바깥으로 기어나오는 데는 40분이 걸렸다.

◆8분 지나면서 붕괴 멈춘 지하4층

윗분으로부터 야간 보수작업 명령을 받은 삼풍백화점 시설부 직원 盧仁哲씨(38)는 재빨리 식사를 마치고 오후 5시40분께 지하4층 기계실로 내려왔다.

盧씨는 기계실에서 동료 직원 5명과 함께 농담을 주고 받고 있었다. 5시57분쯤이 되자 갑자기 배관이 터지는 물소리와 함께 흙먼지 폭풍이 이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천장 쪽에서 콘크리트 더미가 쏟아져 내렸다. 그는 `에라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전기실 비상구쪽으로 마구 달려갔다.

그러나 출구는 이미 무너져 내린 콘크리트 더미로 차단되고 말았다. 그는 다시 맞은편 기계실 출입구 쪽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계속 폭풍이 불어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었다. 그는 일단 사무실 책상 밑에 엎드렸다. 심하게 부서져 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8분 정도 지나자 멈췄다.

그는 다른 직원들과 함께 기계실을 나와 지하3층과 연결된 정문쪽 주차통로를 통해 콘크리트 더미를 헤치며 아수라장 같은 지하를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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