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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당시 사망자중 14세 이하 8명

입력 1995. 12. 07. 21:07 수정 1995. 12. 07.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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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光州)=연합(聯合))蔡熙宗기자 = 80년 5.18 광주(光州)민중항쟁 당시 민간인 사망자 가운데 14세 이하의 어린이가 8명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지난 88년 7월 국회 5.18 민주화운동 진상조사 특별위원회에 제출된 국방부 답변자료에서 확인된 것으로 계엄군이 당시 어린이들에게 까지 무자비하게 총부리를 겨눴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고 있다.

7일 광주시청 5.18자료실에 비치된 이 자료에 따르면 당시 조사된 민간인 사망자는 1백63명으로 연령별로는 14세 이하가 8명이고 15∼19세 36명, 20대 73명, 30대26명, 40대 9명, 50대 6명, 60대 4명, 나이 파악 불가 1명 등이었다.

직업별로는 학생이 27명, 사업 21명, 회사원 14명, 방위병 2명, 공무원 2명, 운전사 11명, 직공 34명, 무직 34명 등으로 파악돼 있다.

이중 가장 나이가 적은 사망자는 아직도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4세가량의 남자 어린이로 80년 5월27일 목에 관통상을 입어 숨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을 뿐 사망 장소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이 어린이의 시체는 그해 6월7일 광주(光州)시 南구 효덕(孝德)동 뒷산에서 발견됐다.

또 全在洙군(당시 9세.효덕국교 4년)은 80년 5월24일 오후 1시 10분께 자신이 살던 마을인 광주(光州)시 南구 松岩동 진재마을 앞 동산에서 놀다가 계엄군의 총소리에 놀라 몸을 피하려다 벗어진 고무신을 주으려고 돌아서는 순간 서너발의 총탄이 옆구리를 관통해 숨졌다.

房光汎군(당시 12세. 전남중 1년)은 같은 날 낮 12시40분께 송암동 원제마을 위 저수지에서 친구들과 함께 멱을 감던 중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절명했다 .

이같은 사례에서 당시 계엄군은 동산에서 놀고 있는 어린이들이나 멱을 감는 어린이들에게도 무차별적으로 사격을 가하는 만행을 저질렀음이 확인됐다.

이밖에 金明淑양(당시 14세.서광여중 3년)은 5월 26일 오후 7시40분께 가정형편이 어려워 사지 못한 참고서를 빌리기 위해 집을 나섰다가 광주(光州)시 北구 용봉(龍鳳)동 전남대 앞 개천가에서 계엄군에 의해 사살됐다.

이와 관련 5.18유족회측은 "당시 계엄군은 그들의 주장과는 달리 폭도에 대해 자위권을 행사한 것이 아니라 전혀 방어 능력이 없는 어린이들에게도 무차별적으로 총을 쏘았다"며 "학살자들에 대해 단호한 처벌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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