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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盧씨등 8명 공소장 전문-4

입력 1996. 01. 23. 16:46 수정 1996. 01. 23.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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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피고인 이희성은 청와대에서 육본으로 돌아와 5.17. 20:05경 참모총장실에서 피고인 황영시와 김재명 작전참모부장, 나동원 계엄사 참모장, 조홍 헌병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전국비상계엄령이 선포되고 대학에 휴교령이 내려질 예정이니 시위주동자와 그 배후세력을 색출하여야 한다고 훈시한 후, 위 나동원에게 보안사에서 정치활동의 금지 등을 골자로 하여 입안해 온 계엄포고 초안을 전달하여 이를 계엄포고 제10호로 기안하게 하고 그 무렵 피고인 전두환으로부터 국무회의에 참석하라는 연락을 받고 국무회의장인 중앙청으로 출발하고,

피고인 이희성, 같은 주영복은 21:42 중앙청에서 신현확 국무총리가 주재하는 제42회 임시국무회의에 참석하여 피고인 주영복은 제주지역은 물론 전국적으로도 계엄법상 비상계엄 선포가 가능한 `전쟁 또는 전쟁에 준할 사변과 적의 포위공격'이라는 상황이 발생한 사실이 없음에도 단순히 북괴의 동태와 전국으로 확대된 소요사태 등을 감안할 때 전국 일원이 비상사태하에 있다고 판단되어 계엄확대 선포안을 제출한다고 제안 설명을 한 후 반대 토론없이 8분만에 의결시키고 이어 최규하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23:40경 정부 대변인인 이규현 문화공보부장관으로 하여 금 5.17. 24:00를 기하여 비상계엄 선포지역을 전국 일원으로 변경한다고 발표하게 함.

o 피고인 이희성, 황영시는 계엄의 확대와 그에 다른 계엄군의 전면 투입을 기정사실화하여 16:50경 1,2,3군 및 관구, 사단 작전참모에게 정위치에서 육본 작전참모부장의 지시를 받을 준비를 하라고 지시하고 22:30 전군에 소요 진압부대 투입 작전명령을 하달하여 5.18. 02:30경까지 광주 소재 전남대학교, 조선대학교를 포함한 전국 92개 주요대학과 국회및 신민당사와 공화당사, 언론기관, 공공기관을 포함한 136개 주요 보안목표에 M16 소총 등을 휴대한 계엄군 2만5천여명을 배치 완료하여 각 해당시설을 점거하고

o 피고인 이희성, 같은 황영시는 5.18. 01:00경 모든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내용 등이 포함된 계엄포고 제10호를 발령하고 이에 따라 국회의원들의 국회의사당과 정당 당사 출입까지도 통제하도록 지휘하고 피고인 전두환은 그 무렵 정보처에서 작성한 보안사령관 명의의 `5.17 계엄지역 확대조치및 포고령 제10호에 의한 보도통제 지침'을 계엄사 보도검열단에 시달하여 이에 따라 보도통제를 시행하도록 하고

o 피고인 전두환, 같은 노태우는 공모하여 피고인 노태우가 5.18. 16:00경 수경사 기밀실에서 열린 계엄협의회에서 김기택 참모장, 박동원 작전참모, 이상연 서울지역합동수사단장 등 참석자들에게 전국 비상계엄 확대조치의 배경및 계엄업무 시행지침을 하달하면서 金泳三, 金大中, 金鍾泌 등 세 정치지도자는 국가관이 부족하여 사회 혼란을 야기하고 있으므로 그러한 정치인을 척결하여 새로운 정치질서를 정립하여야 한다고 훈시하고,

5.18. 오후 김영삼 신민당총재가 정무회의를 주재하여 연행자 석방, 계엄군 철수 등을 요구하고 5.20. 09:00에는 다시 서울 동작구 상도1동 7의6 소재 자택에서 기자회견을 하려 하자 07:20경 상도동 자택에 성환옥 헌병단장이 지휘하는 수경사 헌병단 10, 53중대 병력 118명으로 하여금 엠(M)17 소총 등을 휴대하고 주둔지인 수경사에서 출동하게 하여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였으나, 김영삼 총재가 이미 집안에 들어와 있던 기자들을 상대로 5.17 조치를 비난하는 기자회견을 강행하자 외부인의 김영삼 총재 자택 출입과 김영삼 총재의 외부 출입을 금지하는 가택연금조치를 취하는 등 계엄지역에서 지휘관으로서 권한을 남용하여 부득이한 사유없이 부대를 불법 진퇴시킴과 동시에 정당한 사유없이 부대를 인솔하여 수소를 이탈하고

o 피고인 이희성, 같은 황영시는 5.18. 01:45경 33사단 101연대 1대대 3중대 소속 장교 3명, 사병 95명으로 하여금 엠(M)16 소총등을 휴대하고 경장갑차 8대와 전차 4대를 지원받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1 소재 국회의사당을 점거하고 8.30.까지 국회의원등 일체의 출입자를 통제하게 하면서 5.20. 09:00경 김영삼 신민당총재의 위 기자회견에 참석하였던 황낙주, 손주항, 오세응 등 국회의원 38명과 의원비서관, 보도진등 3백여명이 10:15경 국회 정문에 도착, 국회의사당으로 들어오려 하자 출입 통제지침을 다시 내려 보내 배치 계엄군으로 하여금 위 소총으로 황낙주 의원등을 밀어내게 하여 국회의원들의 국회 출입을 저지하는 등으로

피고인 전두환, 같은 이학봉, 같은 황영시, 같은 이희성 등은 여야 국회의원등 정치인들을 체포하고 국회의원들의 국회 출입을 저지하여 제104회 임시국회의 개회를 불가능하게 하는 방법으로 6.18. 임시국회를 자동 폐회시키고, 피고인 전두환이 대통령에 취임한 후인 9.20. 제105회 정기국회를 개회시켜 9.22. 남덕우 국무총리와 이한기 감사원장에 대한 임명동의안만을 처리하고 휴회에 들어가게 한 뒤 10.27. 공포된 제5공화국 헌법 부칙 제5조 제1항에 따라 제10대 국회의원의 임기를 종료시켜 국회를 해산시킴으로써 헌법기관인 국회의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고

o 5.18. 01:10경 특전사 7공수여단 소속 장교 94명, 사병 680명이 엠(M)16 소총 등을 휴대하고 전남대학교와 조선대학교를 점거한 상황에서 08:00경부터 전남대학교 학생 30여명이 휴교령이 내려질 경우 학교 정문앞에 모여 시위를 하기로 한 사전행동지침에 따라 광주 북구 용봉동 300 소재 전남대학교 정문에 모이기 시작하여 10:00경에는 2백여명에 이른 학생들이 공수부대원들의 학내 잔류 학생에 대한 구타행위를 비난하면서 비상계엄 해제하라, 공수부대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치고 돌을 던지는 등 시위를 하자, 위 공수부대원들이 학생들의 강제 해산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이들을 쫓아가 진압봉으로 어깨 외에 머리 등을 무차별 가격하고 체포한 학생들을 난폭하게 연행하여 충돌이 발생하고 학생들이 10:30경 다른 학생 6백여명과 함께 광주시내 중심지로 이동 집결하여 계엄 해제, 전두환 퇴진, 김대중 석방 등을 요구하면서 경찰병력과 격렬한 공방을 벌이는 등 시위가 확산되자

피고인 전두환, 같은 이희성, 같은 황영시는 정호용과 함께 광주 서구 치평동 98 소재 전투병과교육사령부(이하 `전교사'라 한다) 등으로부터 위와 같은 시위 상황을 보고받고 광주에서의 시위가 피고인들의 정국 장악에 상당한 장애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이의 확산을 우려하여 광주 시위 상황에 대한 언론보도를 통제하면서 강력한 진압이 예상되는 공수부대의 시내투입과 증파로 이를 조속히 제압할 의도하에

피고인 이희성은 윤흥정 전투병과교육사령관(이하 전교사령관'이라 한다)에게 계엄군을 투입하여 조속히 시위를 진압하라고 독려하고 위 윤홍정은 다시 정웅 31사단장에게 7공수여단 33,35대대를 광주시내로 투입, 시위를 진압하도록 지시하여 전남대학교와 조선대학교에 주둔하고 있던 위 부대원들이 금남로 일대로 출동, 16:00경부터 시위대를 해산시키면서 인근 점포나 골목, 건물 안까지 시위대를 추적하여 체포하고 그 과정에서 시위대와 시민들을 구분없이 진압봉으로 가격하고 심지어 머리를 가격하거나 체포된 시위대의 상의 등을 벗기고 기합을 주기도 하는 등의 과잉진압을 실시하여 광주시민 405명을 연행함과 동시에 80여명에게 부상을 입히고

o 피고인 황영시는 5.18. 오전 같은 이희성에게 합수부측에게 광주지역에 병력을 증원하여 시위를 조속히 진압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고 보고하면서 1개 공수여단의 증파를 건의하고 피고인 이희성은 같은 황영시와 김재명 작전참모부장으로부터 병력 증원을 건의받고 김재명에게 1개 공수여단의 증파를 지시하고 정호용은 김재명과 협의하여 증파 부대로 11공수여단을 지정, 광주에 출동시키기로 결정한 후 15:30경 11공수여단이 주둔하고 있는 동국대학교로 가 최웅 11공수여단장에게 광주에 가서 임무수행을 잘하라고 지시하고 이에 따라 11공수여단 병력 장교 162명, 사병 1,038명은 5.19. 00:50경 엠(M)16 소총 등을 휴대하고 광주에 증파되어 차량에 탑승하고 배속받은 장갑차의 선도로 위력시위를 하고, 한편 전날 부상을 입은 시민 김경철(남,23세)이 국군광주통합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후두부열상 등으로 사망한데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유언비어가 난무하면서 광주시민들의 분노를 자극하여 5.19. 10:00경부터 시민들이 대규모로 가세하면서 공수부대의 과잉진압에 항의하며 돌과 화염병을 던지는 등 격렬한 시위를 전개하자 이들을 소총 개머리판과 진압봉으로 무차별 가격하고 심지어는 일부 부대원들이 대검을 사용하는 등 강경한 진압작전을 감행하여 그 과정에서 많은 광주 시민들이 부상을 입고, 그중 김안부(남,34세)가 전두부열상 등으로 사망하고

o 그 무렵 피고인 전두환은 광주지구 보안부대로부터 상황보고를 받으면서 그 보고및 조치가 미흡하다고 판단하여 5.19.경 최예섭 보안사 기획조정처장과 홍성률 1군단 보안부대장, 최경조 대령, 중앙정보부 박정희 과장을 광주에 파견하여 상황을 보고받거나 연행자 조사 등을 지원하도록 하는 한편 피고인 이희성에게 시위의 조속한 진압을 요구하고 정호용은 전교사 2층 감찰참모실에 임시 사무실을 만들고 전교사 기밀실에 특전사 전용 상황실을 마련하여 전용 무전기로 상황보고를 받으면서 수시로 공수여단장들과 진압대책을 논의하고 피고인 전두환은 현지로부터의 건의에 따라 같은 이희성에게 시위 진압에 소극적인 윤흥정 전교사령관을 교체하도록 요구하고 피고인 황영시는 같은 전두환과 논의하여 같은 이희성에게 그 후임으로 소준열 육군종합행정학교장을 추천하고 5.20. 18:00경 그에게 내정사실을 통보해 주면서 사태가 수습되면 중장으로 진급시켜 주겠다고 약속하여 5.21. 16:30경 미리 전교사로 내려가게 한 뒤 5.22. 10:00 전교사령관으로 취임하게 하고 위 윤흥정을 체신부장관으로 추천하여 입각하게 하는 한편, 피고인 이희성, 같은 황영시, 정호용은 5.20. 다시 엠(M)16 소총 등을 휴대한 3공수여단 병력 장교 255명, 사병 1,137명을 광주에 증파, 시위 진압에 투입하여 오후 들어 공수부대의 과잉 진압에 격분한 택시기사들이 중심이 되어 차량 시위가 전개되면서 트럭, 버스 등의 돌진 공격이 계속되자 3,7,11 공수여단 병력들이 최루탄과 진압봉을 사용하여 진압을 계속하고, 24:00경 광주역 앞에서 3공수여단 12,15대대 장교들이 시위대의 차량 공격에 대응 발포하여 많은 광주 시민들이 부상을 입고 김재화(남,25세) 등은 총상을 입고 사망.(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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