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국적자 金龍華씨, 그는 과연 누구일까?

1996. 12. 11.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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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聯合)) 金龍華씨(43.함경남도 단천시 오몽리 13반)는 지난 88년 7월 25일 양강도 혜산시에서 압록강을 건너 중국 길림성 매하구로 탈출했다. 함경남도 단천시 철도승무대원으로 근무하던 중 일어난 열차 연착사고의 책임추궁을 피해 혜산市까지 왔다가 압록강을 건넜다.

지난 92년 韓.中수교 이후 金씨는 세 차례 북경 주재 한국대사관을 찾아 귀순을 받아줄 것을 요청했으나 `탈북자인 것은 사실인 것 같으나 북경 대사관에서는 귀순요청을 받지 않는다'는 설명을 듣고 물러섰다.

이어 그는 베트남 주재 한국 대사관을 목표로, 95년 2월 말 중국 운남성 화구시에서 베트남 로까이 지역으로 잠입했다. 당시 중국에서는 베트남 하이퐁 항구에서 한국행 배를 이용한 밀항귀순도 가능하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러나 하노이 주재 한국 대사관 K경제담당 참사관 등은 "불법 월경 혐의로 체포령이 내려져 있다"면서 미화(美貨)6백20여 달러 가량의 여비를 쥐어 주면서 피신하라고 했을 뿐 귀순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金씨는 하이퐁港 부두에서 밀항을 시도하는 등 베트남에서 한국행 기회를 엿보다 95년 3월 말 베트남 공안당국에 검거되기도 했다.

베트남을 탈출, 중국에 다시 밀입국한 金씨는 95년 6월 1일 산동성(山東省) 해양현에서 쪽배를 타고 남한 서해안으로 밀항을 결행했다. 이 밀항 시도는 보름 동안 표류하다 되돌아 온 것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6월 22일 8마력짜리 트랙터 엔진을 부착한 0.5t 선박을 구입, 다시 한번 서해로 탈출을 시도했다.

95년 6월 25일 낮 11시께 남한 선박 <형제호>를 발견, "탈북자를 구해달라"고 필사적으로 외쳤다. 배에 오른 金씨는 그때서야 비로소 자신이 충남(忠南) 태안 앞바다에 도착했고 북한을 탈출한 지 6년만에 "자유와 인권이 보장된 대한민국의 품"에 안긴 것이다.

희망과 꿈에 부풀어 있던 金씨에게 돌아 온 것은 귀순자 대우가 아니라 불법 밀항한 외국인이었다. 법무부, 보건복지부 등 관계당국은 실정법에 따라 金씨의 신분이 북한인인지 여부를 우선 확인해야 하고 이 결과에 따라 귀순자 처우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에 따른 것이다. 특히 당국은 金씨가 지니고 있던 `중국인 거민증'을 문제삼았다.

金씨는 "중국 체류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위조해 지니고 있었던 가짜 중국인 공민증일 뿐"이라며 "가짜라는 것을 한 눈에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조잡하다"고 말하고 있다. 또 현재 남한에 와 있는 P모씨 등 동향출신의 귀순자를 통해서도 자신의 신분은 이미 확인이 된 상태라고 주장했다.

서울 휘경동 외국인 보호소, 목동 출입국관리소, 서울 구치소 등 불법체류 외국인 수용시설을 전전하다 지난 8월 28일부터 "먼 친척 분이 관계하고 있는" 안양 새마을 연수원으로 옮겨 연수원 숙소 청소, 이불개기 등 잡일을 거들며 기숙하고 있 다.

金씨는 불법체류 외국인 `강제퇴거 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해 놓은 상태이지만 "이제는 희망을 걸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당국이 요구하는 `중국측의 탈북자 확인'이 도저히 불가능한 것을 잘 알고 있고 무엇 때문에 그같은 요구를 하는지도 "이제는 알 것 같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북한취재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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