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印尼 독립영웅 梁七星은 누구인가

입력 2002.03.05. 09:15 수정 2002.03.05.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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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카르타=연합뉴스) 황대일특파원= 인도네시아 초.중.고교 개정 역사교과서에수록될 것으로 보이는 고(故) 양칠성(梁七星)씨는 외국인으로서 인도네시아 주권회복 투쟁에 혁혁한 공로를 세운 독립영웅이다.

한반도에서 3.1운동이 발발한 1919년 전라도 완주에서 태어난 양씨가 인도네시아로 옮겨간 것은 1942년. 양씨는 당시 일본 남방군에 징용으로 끌려가 일제가 항복한 1945년까지 자바섬 포로 수용소 감시원으로 일했다.

양씨는 종전으로 조국이 해방됐음에도 불구, 징용된 한국인들이 전범으로 몰리는 상황을 우려해 귀국하지 못하고 인도네시아에 남았다가 네덜란드의 재식민지화정책에 맞서 싸우던 현지 독립군에 가담했다.

그는 게릴라부대인 팡에란 바팍(왕자부대)을 이끌고 45년 반둥과 족자카르타를연결하는 철도와 대로를 공격, 네덜란드군의 군수물자 수송로를 파괴하고 무기를 대거 빼앗은 것을 비롯해 48년까지 각종 전투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그는 48년 11월 부대원들과 함께 가톳 부근 가룽우아라산속으로 들어가 게릴라전을 모의하던중 네덜란드군에 체포돼 이듬 해인 49년 8월 크르콥에서 주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총살됐다.

양씨의 공적은 한동안 알려지지 않았으나 숨진 지 26년만인 75년 11월 인도네시아군(TNI) 고위 장성이 된 옛 독립운동 동료들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세상에 공개됐다.

당시 수하르토 대통령은 독립군 출신 장성들로부터 양씨의 공적을 보고받고 정부 차원에서 진상조사를 벌일 것을 지시했으며, 양씨는 과거 전공이 사실로 확인됨에 따라 외국인 독립영웅으로 추서됐다.

인니 정부는 또 파시르포고르 공동묘지에 묻혀있던 그의 시신을 76년 11월 19일서부 자카르타 소재 칼리바타 국립묘지로 이장했다.

옛 전우들은 또 양씨를 창씨개명된 야나카와 시치세이(梁川七星)로만 알고 있었기 때문에 묘비에 일본 및 인도네시아 이름만 적히고 한국 성명은 누락했다가 95년8월 19일 본명을 되찾았다.

한국대사관과 양씨 유족, 시민운동 관계자들은 `KOMARUDIN YANG CHIL SUNG, KOREA(코마루딘 양칠성, 대한민국)"이라고 새겨진 묘비를 한국에서 갖고와 기존의 묘비와 교체했다.

당시 자바 관할 사령부의 타르요 타마디 육군 소장이 인도네시아 독립 50주년기념행사의 일환으로 묘비 재안장식을 주선해 양씨의 국적과 이름을 완전히 되찾게된 것이다.

hadi@yonhap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