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세기" 걸친 이인제의 "불복 탈당"
이인제 의원의 민주당 탈당을 두고 "거봐, 나간다고 했잖아" 하는 평이 많습니다. 그런 예측이 가능했던 것은 "이인제 학습효과" 때문이겠지요. 국민들은 1997년에 이미 그의 "불복 탈당"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먼 나라 프랑스 속담에도 "한 번 일어난 일은 두 번 일어난다"는 말이 있다는군요.그의 두 "불복 탈당" 사이의 시간적 거리는 불과 5년 2개월여이지만 그 사이에 세기(世紀)가 바뀌었습니다. 새 세기를 맞아 한국 정치는 개혁으로 요동치는데 이 의원의 생각과 행보에는 변화가 없군요.그것을 "일관성"이라고 보고 싶은 분들도 있으신지요. 그럼, 이 의원의 거듭된 "불복 탈당"이 어떤 점에서 "일관적"인지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이인제씨의 97년 "경선 불복과 탈당" 관련 기사들을 찾아 봤습니다. "대통령 후보 출마에 즈음하여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긴 제목의 성명서와 그 전후에 가졌던 기자회견 기사들입니다. 그리고 이번에 그가 발표한 "정치공작과 급진주의에 나라의 운명을 맡길 수는 없습니다"라는 역시 긴 제목의 기자회견문과 비교해 보았지요.첫째, 두 "불복과 탈당" 성명서는 오랜 망설임 끝에 나왔다는 점에서 우선 공통적입니다. 97년 7월21일 신한국당 경선이 이회창 대표의 승리로 끝나고 난 뒤에도 이 의원은 참 오래 망설였더군요. 두 달이 지난 9월 13일에 가서야 독자 출마 선언을 하게 됩니다.
정작 "출마 입장"을 발표하겠다고 밝힌 뒤에도 이틀이나 질질 끌었습니다. "어떻게 할거냐?"고 묻는 기자들에게 "한숨도 못 자고 고민이 된다"고 하소연까지 해가며 말이지요.두 번째 "불복 탈당"에는 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5월말부터 12월까지 무려 6개월을 망설였던 것이지요. 2002년의 성명서에서도 그는 "결심을 하기까지 끝없는 번민의 시간을 보냈"다고 했습니다.
망설임의 시간이 세 배나 더 걸린 것도 일종의 "이인제 학습효과" 때문이겠지요. 어떻게든 첫 번 "불복 탈당" 때 받았던 그 모진 비난을 피하고 싶었을 테니까요.왜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요? 어째서 그다지도 "잠도 못 자"는 "번민의 시간"을 즐겼던(?) 것일까요? 그것은 "미련"과 "질투"와 "어두운 희망" 때문이겠습니다. 꼭 본선에 나가보고 싶다는 "미련," 나를 꺾은 사람에 대한 "질투", 그리고 그 승자가 거꾸러져 주기를 바라는 "음습한 희망"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데 이 의원의 "희망"대로 예선 승자에게 변고가 생겼습니다. 그것도 두 번 다 "아들들" 때문에 그랬습니다. 이회창 후보는 "자기 아들들의 병역비리 의혹" 때문에, 노무현 후보는 "김대중 대통령의 세 아들 비리 의혹" 때문이었지요. 이 의원의 바램은 거의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 기다림의 시기는 이 의원에게는 설레임과 안타까움이 교차하던 기간이었겠지요. 무너질 듯 무너질 듯 하면서도 무너지지 않는 그들이 원망스럽기까지 했겠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끝까지 무너지지 않았고, 이 의원은 그걸 받아들이지 못한 채 "불복 탈당"을 결행했습니다.
바둑 속담대로 "장고(長考) 끝에 악수(惡手)"를 둔 셈이지요. 미련 때문에 같은 실수를 두 번씩이나 저지른 "미련한 일관성"이라고 봐야겠습니다.
둘째, 이 의원은 시종일관 여론조사 결과에 목매달았습니다. 97년 "왜 그렇게 망설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여론조사 결과를 적은 쪽지를 꺼내 보여주면서 말했다는군요. "1-2% 포인트 차로 1위를 했다. 이를 무시할 수도 없는 것 아니냐."이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4년여 동안 민주당 대선 예비 후보였고 그것이 "대세"였습니다. 국민 경선 전까지는 말입니다. 한때는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보다 더 높은 지지를 받기도 했습니다. 여론조사를 "과학"이라고 믿었던 그로서는 얼마나 신이 났겠습니까?그러나 그는 여론조사의 본질을 알지 못했습니다. 여론조사는 기댈 수 있는 튼튼한 반석이 아닙니다. 그것은 수시로 변합니다. 그것은 내 소신과 행동을 평가한 결과이지, 그것을 바탕으로 내 생각과 행동을 결정할 기준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 의원은 여론조사 결과를 거의 모든 판단의 근거로 삼았습니다. 그러다가 손에 넣은 것 같았던 목표를 날려버렸습니다.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그 심정은 이해하고도 남습니다. 하지만 잘못은 이 의원에게 있습니다. 여론조사에 일희일비한 것 말입니다. 믿을 걸 믿어야지요.셋째, 이 의원은 자기 "불복 탈당"을 사과할 줄 모릅니다. 그 대신 그 탓을 남에게 돌립니다. 이 의원이 97년 9월 13일 발표한 성명서에는 불복 탈당에 대한 사과가 없습니다. 아예 그 문제에 대한 언급 자체가 없습니다. 그냥 넘어갈 수 있다고 믿었거나 나중에라도 무마할 수 있다고 본 것이겠지요.보다 못한 보도진이 "경선 결과에 불복한 것에 대한 비판여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고 물었습니다. 그때야 비로소 이의원은 "사죄"라는 말을 썼습니다.
"경선 결과에 무조건 승복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 ... 진심으로 사죄한다. 그러나 경선 후 새로운 변수로 모든 것이 다 엉켜 버렸다." 이런 것을 상황논리라고 합니다. 일종의 구차한 변명이지요.2002년의 불복 탈당 때에는 한술 더 떴습니다. 사과나 사죄는커녕 오히려 자신이 "정치공작에 희생"됐다고 성을 냈습니다. 아예 "김대중 정권이 벌인 정치공작"을 "국민 앞에 밝히고 사죄"하라고 오히려 큰소리를 쳤더군요. 경선 불복자의 앙탈도 이 정도면 가히 챔피언 급입니다.
넷째, 이 의원은 두 번의 불복 탈당 과정에서 "후계자 콤플렉스" 소유자임을 드러냈습니다. 소위 ㄷ김을 포함한 권위적 지도자들의 후계자로 자처하고 다닌 것입니다.
97년에는 그게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이었습니다. 박통 흉내를 내기도 하고 김 전대통령의 "정치적 아들"임을 퍼뜨리고 다니면서 후계자를 자처했습니다. 그러다가 그 김심이 제게 돌아오지 않는 것을 보고는 불복 탈당했지요.대선 패배 후에는 승자인 김대중 대통령에게로 투항합니다. 그리고는 또 4년동안 그 후계자를 자처합니다. 김 대통령의 정치적 배경이었던 동교동계의 지원까지 확보했으니 얼마나 의기양양했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이번에도 미끄러지고 맙니다. 이번에는 김심 "때문"이 아니라 김심에도 "불구하고" 그랬습니다.
그러자 그 후계자를 자처하던 이 의원은 김대중 대통령과 민주당을 "여론조작을 일삼는 부패한 패권추구 세력"이요 "급진 이념 세력" 이라고 몰아붙였습니다.
5년간, 특히 민주당 국민 경선 기간 중에 그를 지지한 것은 동교동계라는 것을 누구나 다 압니다. 경선이 끝난 후에도 그들은 "후단협"이라는 이름으로 이 의원과 함께 노무현 후보를 잡아 흔들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김대중 대통령과 동교동계탓을 합니다. 배은망덕도 이 정도면 수준급입니다.
이 의원은 이번에는 우선 김종필 자민련 총재에게 향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물론 김종필 총재는 그가 후계자로 자처하기에는 모자란 점이 많습니다. 가라앉는 배의 함장일 뿐이니까요.그래서 김 총재가 그의 종착역은 아닐 것입니다. 자민련을 접수해서 충청권 맹주 노릇을 해 보려고 하거나, 그게 여의치 않으면 자민련을 송두리째 들고 가 한나라당에 투항하겠지요.그가 과학으로 믿는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번 선거에서는 노무현 후보가 이기게 될 지도 모르기 때문이겠습니다. 그래서 결국 한나라당에서 이회창 후보 후계자 노릇을 해 보려는 속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다른 "차기"를 노리면서....이처럼 이 의원에게는 "후계자 편집증"이 있습니다. 시간을 두고 차근히 독자적인 정치 세력을 다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정립된 권위적 지도자에게 "낙점"을 받는 손쉬운 방법을 택하려는 것이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산 사람이고, 죽은 사람이고, 심지어 죽어 가는 사람에게라도 기대려는 것이 바로 이 의원입니다.
3김과 박정희를 두루 섬기면서 "후계자"로 자처하는 이 의원이 "권위주의 정치"를 청산하겠다는 것을 보면 참 가소롭습니다. 그런 권위주의와 3김시대를 청산하려면 우선 혼자 힘으로 설 수 있다는 걸 보여 주어야 하는 게 순서가 아니겠습니까?"이인제 학습 효과"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난 대선에서는 그게 "이인제 찍으면 김대중 된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말에는 훨씬 더 깊은 교훈이 들어 있습니다. 세기(世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교훈들이지요.첫째, 원칙과 소신이 없는 정치인은 어떤 경선에서든 반드시 패배한다. 둘째, 민주 절차에 불복하는 정치인에게 두 번째 기회란 없다. 셋째, 권위에 줄서는 정치인은, 의원까지는 혹시 모르지만, 절대로 대통령이 될 수 없다.
참, 한 가지 밝혀둘 게 있습니다. 앞에서 "한 번 일어난 일은 두 번 일어난다"라는 프랑스 속담을 소개했습니다만, 그것은 제 기억 착오로 인한 실수입니다. 진짜는 "두 번 일어난 일은 세 번 일어난다"라는 군요. 속담은 대개 맞는 법입니다. 머지않아 이인제 의원의 세 번째 "불복 탈당"도 기대해 봄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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