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애환과 추억이 깃든 "아, 옛날이여!"

진홍 입력 2003.03.25. 06:32 수정 2003.03.25.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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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1@그런 시절 그런 기억이 있었다. 새 고무신을 사준다는 장날은 왜 그리 더디게 오는지, 어머니는 단 한 번도 딱 맞는 신발을 사준 적이 없었다. "추석 때까정 신을라믄 낭랑(넉넉)해야 써!"라며 항상 헐렁한 고무신을 사주면서 오래오래 신도록 신신당부를 하였다. "말표" 고무신은 말 그대로 망아지처럼 어디라도 뛰어다닐 수 있는 유일한 교통수단이었으며 "진짜표" 고무신은 발이 커서 안 맞을 때까지 진짜로 오래오래 질기게 신었다. 고무신 면상에는 인두구멍이 뚫리거나 이름이 새겨지기도 하였는데 요즘으로 치면 차량 번호판인 셈이었던 것 같다. 어머니의 말씀을 이해한 건 철이 조금씩 들기 시작한 한참 뒤였다.

말은 하고 싶고 고무신 파는 데는 없어서 옛날 울 엄니 같은 사진으로 대신한다.

@IMG2@전국에서 이름을 날리던 장은 3백년의 역사를 지닌 영산포 우시장, 옛날 궁중에 진상했다는 자채쌀로 유명한 경기 이천장, 고추장으로 유명한 전북 순창장, "허생전"의 무대였던 안성장, "메밀꽃 필 무렵"의 무대였던 봉평 대화 평창장 등 7백여 곳에 이르렀으나 유통시장의 발달로 면소재지 이하 단위의 장들은 점점 사라지거나 옛 모습을 잃어 가고 있다.

장날이면 엄마를 졸라 내가 따라 다니던 장은 산을 두 번 넘고도 들판 길을 한참이나 걸어야 했던 함평 월야면 문장장이라는 곳이었다. 운 좋으면 돼지국물에 말아주던 장터국수를 먹을 수도 있었다. 고리뗑(골덴) 옷은 추석이나 설이 와야 겨우 한 벌 얻어 입을 수 있을까 말까였다.

성남 모란시장이 열리는 날은 전철입구와 시외버스 터미널이 하루종일 장보러 온 사람들로 붐빈다. 요즘엔 젊은 부부들도 많이 눈에 띄지만 대부분의 이용자는 50~ 60대 사람들이다.

@IMG3@모란시장에 가기 전 나는 처음엔 모란꽃이라도 많이 피던 곳인 줄 알았다. 매화골이나 복사골의 유래처럼 말이다.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하던 시절 박정희는 반공과 가난퇴치를 내걸고 쿠데타를 일으켜 재건단이네 개척단이네 하는 운동을 펼쳤는데 육군대령으로 제대한 김창숙이라는 사람이 이곳에서 개척단 활동을 하였다 한다. 그가 이끈 개척단 이름이 "모란개척단"이었다. "모란"은 고향에 홀로 남은 평양 어머니와 모란봉을 생각하며 붙인 이름이라 한다. 지금은 80이 훌쩍 넘었을 그 할아버지는 모란시장을 통해 어머니와 고향을 재건한 셈이다.

@IMG4@62년부터 농산물을 사고 팔던 할머니들로부터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모란장은 90년대 초에 현재의 복개천으로 옮겼다. 재래시장이 주변의 대형백화점이나 할인마트에 많은 손님을 빼앗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 같다. 서민대중의 정겨운 민속장터로 자리매김하고 재래시장의 위상 제고를 위해 모란장은 상인이 판매한 상품에 대하여 교환 및 환불 체계를 갖추는 실명제를 도입하고 있다 한다. 즉 허가받은 지정된 장소에서 물건을 파는 상인들이 앞가슴에 명찰을 매달고 있는 모습이 예전과 달라진 풍경이다. 갈수록 냉혹해져 가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속에서 소박한 인정과 서민적 체취가 명찰과 맞바꿔지지는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다.

@IMG5@옛날 장터에 가면 웃통 벗은 아저씨가 땀을 뻘뻘 흘리며 붉게 달아오른 낫이나 괭이를 쇠몽둥이로 치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숯불에 풀무를 돌려 농기구를 담금질하던 대장간이 지금은 전국에 몇 안 남아 있다. 모란시장 상인회에서는 청계천 복구공사로 밀려날 운명에 처한 골동품 상가와 대장간을 유치하기로 했다고 한다. 모란시장 입구에 농기구를 파는 점포가 두어 군데 있는데 농사철을 앞두고는 불티가 난다.

@IMG6@수많은 종류의 식칼들이다. 식칼은 음식을 맛있게 만들어 먹기 위해 만들어졌다. 요즘은 "개혁의 칼"이 유행하는 모양이다. 야만 시대엔 식칼 용도 외에 전쟁을 위한 칼이 만들어졌고 더 많은 칼을 가진 자가 다른 사람을 그 칼로 지배하였다. 문명이라고 이름 붙여진 오늘날엔 한꺼번에 많은 사람을 단방에 살해할 수 있는 무기를 많이 가진 나라가 세계를 그 힘으로 지배한다. 가공할 핵무기와 최첨단의 무기를 제일 많이 갖고 있는 요즘의 미국을 보면서 21세기에도 "야만"을 벗어나기는 힘들겠다는 생각을 하필이면… 식칼 앞에서 할 게 뭐람?@IMG7@생명을 다하고 떨어진 솔잎이나 쭉정이를 갈퀴로 긁으면 금방 한 동아리가 된다. 요즘엔 농기구로 쓰이고 있을 뿐 힘들게 산에 올라갈 필요가 없어 그 기능이 축소되고 있다. 이걸 보면서 돈을 갈퀴로 긁어모으고 싶은 사람이 많겠지만 재벌 2세가 아니라면 괜히 속만 버린다.

@IMG8@요샌 진공청소기가 대신하고 있다. 간혹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하나씩 들고 갈 뿐이다. 야만과 부도덕, 증오, 전쟁…. 요런 잡것들을 싸악 쓸어낼 수는 없을까!@IMG9@옛날엔 원숭이를 데려와 주로 약을 팔았는데 의약분쟁이나 한약분쟁 등이 꼴보기 싫어 다른 물건을 판다고 한다. 물론 약팔아 먹다가 자칫 의약품위반인가에 걸리면 원숭이나 살아야 할 철창 같은 데 가서 법무부장관이 주는 밥을 먹을 수도 있다는 게 진짜 이유다.

@IMG10@두엄 지고 장에 간다더니 이런 볼거리가 많아 사람들이 몰리는 것 같다. 나도 중학교 때 자전거 타고 학교 가다가 장터로 유턴하여 장화랑 홍련이가 나와서 눈물 콧물 흘리던 그 "나이롱극장" 구경하다가 재산 1호인 자전거를 잃어버려 인생 끝나는 줄 알았다.

4월부터는 성남 예술단체 등에서 모란시장 활성화를 위해 매달 19일 장에 민속공연 같은 걸 펼친다는데 다른 데서도 볼 수 있는 격식화된 걸 하려면 안 하는 게 나을 성싶다. 모란시장 귀퉁이 공터에 자리잡은 품바 엿장수의 능청맞은 익살과 고전과 현대 동서의 장르를 넘나들며 장터 사람들의 발길을 묶어 놓는 수준 높은(?) 연기 이상이라면 혹시 몰라도.아! 옛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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