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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규탄 "시위"가 "축제"가 된 까닭

입력 2004. 03. 16. 07:15 수정 2004. 03. 16.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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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박형숙 기자] ▲ 14일 저녁 서울 광화문 집회에서 탄핵안의 부당성을 알리는 시민들의 표정이 밝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font="navy">☞ "탄핵무효 부패정치청산 민주개혁 완성"을 위한 서명운동 참여하기지난 주말과 휴일, 광화문에서 열린 "탄핵무효・부패정치 척결 국민대회"는 춤과 노래, 그리고 각종 퍼포먼스와 다종다양의 피켓이 물결을 이룬 한판 난장이었다. 집회 참가자들의 주장은 "탄핵무효" "민주수호"로 정리되지만 이를 표현하는 방식은 저마다 달랐다.

상의를 벗은 채 어깨동무를 한 4명의 청년은 등판에 "사망국회, 부끄럽지 않소"라는 글씨를 새겨넣은 채 행렬 사이를 누비고 다녔다. 이들은 대로변에서 웃통을 벗는 부끄러운 행동을 통해 부끄러운 국회를 질책하고 있었다.

"관악산 지킴이"라는 한 시민은 자신의 차량에 확성기를 달고 나와 "상여소리"를 틀어대며 검은 상복을 입은 채 조종을 울리고 다녔다. 탄핵에 찬성한 193명 국회의원의 혼백을 실어 황천길로 보내는 의미에서 준비된 것이다. 지나가던 시민들은 "아이고, 아이고" 곡소리를 내며 큰절을 했다.

김삿갓의 등장도 있었다. 한 중년남성은 삿갓을 깊숙이 눌러쓴 채 팔짱을 끼고는 "탄핵무효"라고 적힌 빨간 종이를 쥐고는 꼼짝도 않은 채 서 있었다. 도포자락를 휘날리며 그가 손에 쥔 "레드카드"는 국회에 보내는 "방랑시인" 김삿갓의 경고였다.

예비군복 차림의 한 대학생은 "현역군인은 나라 잘 지켜라, 민주주의는 예비군이 지킬테니"라는 문구를 등 뒤에 달았고, 한 시민은 "귀기울여라, 국민의 소리에, 귀 좀 파고 다녀라, 193마리 개떼들아"라는 문구와 함께 귀이지 5통이 붙은 피켓을 들고 있었다.

이 같은 기발한 상상력 외에 거칠지만, 소박한 표현도 많았다. 유치원생 아들과 함께 온 한 남성은 A4 용지에 "아빠 여기(국회)가 어른 유치원이야"라고 쓴 피켓을 들고 아이와 나란히 앉아 있었고, 50대 중년남성은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국민이 지킵시다"라고 마분지에 매직팬으로 휘갈겨 쓴 종이를 양손에 들고 있었다.

아이디어는 이어지고 있다. 월요일 집회장에는 화이트보드 피켓, 달력 피켓 등도 등장했다.

마분지, 달력, 화이트보드 그리고 자기 몸에 휘갈겨 쓴 피켓들의 전시장사람 사이의 높은 밀도로 인해 운신하기 힘든 앞쪽 행렬과 달리 무대와 멀면 멀수록 사람들은 집회를 "즐기고" 있었다. 휴대폰 카메라와 디지털카메라는 기본인 10, 20대들은 "역사의 현장"을 곳곳에서 기념 촬영했고, 태극기는 월드컵 때와 마찬가지로 어린이와 젊은이들의 몸에서 휘날리고 있었다.

▲ 어린이들이 몸에 태극기를 두른채 인솔자로부터 촛불을 건네받고 있다. ⓒ2004 박형숙 3, 4시간이라는 긴 시간, 그리고 1킬로미터 반경으로 길게 늘어선 행렬을 하나로 만든 건, 노래와 춤이었다. 안치환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가 불리워질 때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촛불을 흔들며 몸을 흔들었고, 또 목청껏 노래를 불렀다.

몸을 움직이고 싶어 술렁대는 군중들에 비해 무대 위 정치연설은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좀더 자주 일어설 기회를 달라." 가족과 함께, 이웃과 함께, 동료, 친구, 애인과 함께 참석한 시민들의 "몸"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지난 12일 국회에서의 탄핵안 가결에 대한 비탄과 통곡이 커다란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기쁨과 신명으로 전화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탄핵반대 집회가 축제의 장으로 자리매김된 것에 대해 "월드컵과 촛불시위를 경험하면서 시위내용을 자기답게 소화하는 노하우가 축적된 결과"라고 해석한다.

대통령 탄핵소추라는 정치적 불행이 "사생결단"식의 네거티브한 시위로 이어지지 않는 것에 대해 문화평론가 정윤수씨는 이렇게 해석했다.

"헌법재판소 결정이 있기 전에 이미 대중들은 민주주의적 상식을 통해 정치적, 도덕적 명분을 확보하고 있다. 대중들은 광장에 나와 그러한 공감대를 확인하고 안도감을 느꼈다. 때문에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시위를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진실을 소수가 공유할 때 경직된 대국민 선전・선동이나 분신과 같은 자학적 방식이 나오지만 지금은 이미 국민이 진실을 공유하고 있다."탄핵집회의 참여군중=월드컵+민주주의 학습장문화연대의 문화사회연구소 이동연 소장은 "촛불시위와 월드컵 때 경험한 광화문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는 것"이라며 "이미 광장은 즐거운 놀이공간으로 사람들의 몸에 각인되어 있다"고 말한다. 이어 이 소장은 "오히려 지도부가 이런 대중적 정서를 소화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며 "이 국면의 시너지효과는 문화적 기획에 달려 있다"고 예상했다.

홍성태 교수(상지대, 사회학)의 진단은 조금 다르다. 홍 교수는 "기획은 필요 없다, 그냥 내버려두면 된다"고 말한다. 홍 교수는 문화적으로 탄핵집회는 월드컵의 연장선에 있다며, "자동차에게 내준 광장을 자기 몸으로 차지하고 앉아서 육체적 자유를 누리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는 배후세력이 있다고 말하지만 시대착오적이다. 탄핵집회장의 시민들은 동원된 군중이 아니라 참여적 군중이다. 그들은 탄핵가결 소식과 함께 충격, 허탈, 분노 등으로 뒤범벅된 몸과 마음을 풀기 위해 나왔다. 따라서 알아서 하게 내버려두면 된다." ▲ 한 인터넷친목동호회 회원들이 현 탄핵정국을 개그맨 정준하와 드라마 장금이에 빗대어 표현한 피켓을 흥미롭게 바라보는 시민들. ⓒ2004 박형숙 홍 교수의 이러한 진단의 배경에는 "근대적 시민"으로서의 모습이 있다. 민주시민으로서 주권행사를 하러 나온 시민들은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배어 있다.

각자 아이디어로 제작해온 피켓이나 각종 퍼포먼스도 그런 생활정치의 일면이다. 단순히 제도로서의 민주주의가 아닌 일상적으로 작동하는 국가권력에 대해 미시적인 변화를 이뤄가는 과정으로서 민주주의를 학습하고 있는 것이다.

범국민행동 행사기획위원회 지금종(문화연대 사무처장) 위원장 역시 탄핵규탄 집회의 향후 방향에 대해 민주주의 훈련의 장으로서 행사를 기획해 갈 것이라고 밝혔다. 지 위원장은 "탄핵이나 선거를 통해 대중들은 의회 민주주의,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를 경험했다"며 "그런 점에서 실질적 민주주의를 구현해가는 데 문화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윤수씨는 독일의 극작가 브레이트의 "문화(연극)는 혁명의 예행연습이다"라는 말을 인용하며 "문화가 혁명을 성공시키지는 못해도 사람들은 문화를 통해 혁명을 미리 경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탄핵규탄 집회장이 "축제"가 되는 것은 시민들이 이미 어떤 승리를 경험했기 때문이라는 얘기였다.

촛불 "시위", 촛불 "문화제"로 뚫는다 주최측, 유명인 정치연설 줄이고 전세대 아우르는 문화행사 확대 "탄핵무효 부패정치 청산을 위한 범국민행동(준)"은 경찰이 탄핵규탄 촛불집회를 불법시위로 규정한 것에 대해 헌법에 명시된 "집회 및 결사의 자유"의 정신에 위배된다며 불복종 운동을 선언하는 한편, 촛불시위를 촛불문화제로 치르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있다.

실제 연일 광화문에서 열리고 있는 탄핵반대 대규모 행사는 시위라기 보다는 남녀노소, 가족단위, 연인들 등이 꺼리낌없이 참여해 즐기는 축제의 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에 따라 범국민행동의 지금종 행사기획위원회 위원장은 촛불집회를 보다 축제답게 꾸리기 위해 문화예술계를 총동원해 다양한 문화기획들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한다. 지 위원장은 "이번 주말은 총궐기로, 촛불집회가 정점에 오를 것으로 예상한다"며 "무엇보다도 생활정치로서 민주주의를 구현한다는 취지로 아이디어를 모으고 있다"고 밝혔다.

지 위원장은 또한 지난 주말, 휴일 집회에 대해 "신나는 집회를 원하는 시민들에 비해 행사내용은 과거 운동권 방식을 벗어나지 못한 측면이 있다"며 "유명인의 정치연설을 줄이고 일반인이 참여하는 기회를 늘리거나 세대를 아우르는 문화예술인을 무대에 세울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한편 토요일 행사 초청가수로 월드컵 스타 가수 윤도현과 노래에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가수 서태지 등이 거론되고 있으나 참여여부는 아직 미지수다. 그리고 주최측은 일요일 집회에서 가수 손병휘씨가 "아빠의 청춘"을 불러 호응이 좋았던 것에 착안 "세대를 아우르는" 기획을 고려하고 있다. / /박형숙 기자 (hspark@ohmynews.com)- ⓒ 2004 오마이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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