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잊을 만하면 되살아나는 "똘이장군"의 추억

입력 2004.04.23. 11:17 수정 2004.04.23.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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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한준명 기자] ▲ <똘이장군-제3땅굴 편> 영화 포스터(감독 김청기, 1978) ⓒ 서울동화 요즘 우리 학교의 도서관 전산화 작업이 한창이다. 학교의 역사가 60년 가까이 되다 보니, 도서관 안에는 옛날에 쓰던 교과서에서부터 이제는 낡아서 바스러질 것 같은 문고판 책들이 가득하다.

얼마 전 그 많은 책들 가운데, <그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반공교육연구회, 1976)라는 책을 발견하고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던 기억이 있다.

총 16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북한의 현실을 담고 있는데, 페이지마다 교활하고 탐욕스럽게 생긴 북한군 간부와 고통스럽게 살아가고 있는 북한 주민들의 삶을 담은 삽화가 있어 실감을 더해준다.

상단에 중학교용이라고 쓰여진 걸 보면, 모든 학교 교실마다 꽂혀 있었을 법한 책이다. 나의 중고등학교 시절, 도덕과 윤리 교과서의 매단원이 끝날 때마다 있었던 북한 관련 내용이 주르르 머리 속을 스쳐간다.

무심코 책장을 넘기다가 국민학교 시절에 보았던 <똘이 장군>이라는 만화영화가 떠올랐다. 이내 머리 속에 "똘이 장군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 똘이 장군 나가신다. 겁낼 것 없다. 덤벼라 덤벼라 붉은 무리 악한 자들아~~"라는 만화 영화의 주제가가 맴도는 걸 보면, 당시 참 신나게 그 영화를 보았던 것 같다.

당시 영화관에서 상영돼 어느 정도 흥행에 성공했고, 이후에 TV에서도 보여주었던 <똘이장군>은 늑대의 모습을 한 북한군이 북한 주민을 착취하고, 뚱뚱한 몸에 붉은 옷을 입은 붉은 수령이 가면을 쓰고 등장한다. 똘이 장군의 활약으로 붉은 수령의 가면이 벗겨지고 그의 정체가 "돼지"였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우리는 환호했다.

어린 마음에도 "늑대 같은 놈들, 돼지 같은 놈들"하며 증오심이 생겼던 것 같다. 참으로 절묘하게 <똘이장군>은 어린이들의 반공 의식을 고취시켜 주는 데 기여했던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참 이상한 시대였다.

"똘이장군"에 대한 추억 ▲ 4월 22일 디지털 조선 오늘(22일) 아침 인터넷 조선일보 1면 <북녘추억2> "축구공에도 사상이 있나?-남한 적선물이 가져온 소동"을 보고 있노라니, 다시 그 낡은 책의 삽화들과 똘이장군의 활약이 떠올랐다.

이 글은 전방부대에서 근무한 탈북자가 쓴 것인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적들의 선전물이라는 "적선물"이 남쪽(우리를 말한다)에서 날아오는데, 거기에는 라이터, 목욕수건, 야구공, 축구공 심지어 여성 속옷까지 들어있었단다. 적선물을 소각시키라는 명령에도, 그 중 축구공 하나를 그냥 쓰려고 하다가 곤경에 처할 뻔했던 이야기가 거기에 담겨 있었다.

<조선닷컴> "축구공에도 사상이 있나?" 축구공 쓸 것을 제안하자 인민군 부장은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동무, 정신 있소? 어버이 수령님의 교시학습도 안했나? 김정일 동지께서는 적들에 대한 환상과 숭배는 자본주의 나라 물건에서부터 들어온다고 하시었소. 물건에도 사상이 있단 말이오. 적들의 사상? 당장 비판서를 써서 연대 보위부로 올라오시오."그런데 이 글에서 더욱 내 눈을 자극한 것은 바로 이 대목이었다.

"전쟁이 일어나면 강화도는 아예 없어질 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엄청난 양의 포탄이 장전돼 있고 특히 152㎜ 자주포는 서울도 사정권에 두고 있다. 전방은 대포가 남쪽을 향해 빼곡히 들어차 있으며, 지하갱도에는 번쩍거리는 포탄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그야말로 화약고인 셈이다. 게다가 민간인들은 거의 없고 수만 명의 군인들만 득실댄다.

전방의 모든 화포는 「직일포」(24시간 장전 상태에서 명령만 기다리는 포)로 불린다. 저마다 특정 목표물을 겨냥하고 있지만 포병부대의 기본 전략은 「빗자루전술」에 종속돼 있다. 목표지역을 빗자루로 쓸 듯이 초토화시켜 버리는 단기 전략에 집중돼 있는 것이다." 우리와 너무도 가까운 거리에 엄청난 화력을 보유한 북한이라는 존재가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 순간이다. 하지만 다시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북한의 실상과 북한 주민들의 고통을 알리는 것은 중요하다. 탈북자들의 증언을 반공 교육에 이용했던 과거와는 달리, 신문이 객관성을 가지고 이들의 증언을 보도하려는 데에도 긍정적인 의미 부여를 할 수 있다. 그런데 신문 매체의 1면, 그것도 상단 타이틀에 왜 하필이면 이런 글이 실려 있는가에 대한 의문은 지울 수가 없다.

학교에서 아이들과 학교 신문을 만드는 정도의 수준밖에 안 되는 나도 신문의 "헤드라인"은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하다고 인정받을 수 있는 비중 있는 뉴스를 다룬다는 것쯤은 상식으로 알고 있을 정도인데 말이다.

분단 상황에서의 안보의식은 참으로 중요하다. 그러나 민족의 화해와 협력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업이다.

그러나 남북한 관계 개선이나 통일이라는 거창한 의미까지는 생각지도 못해도, 또 신문편집 과정에 숨어 있는 행간의 의미를 찾아내는 능력은 없어도 이런 글을 읽으며 "똘이장군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 똘이장군 나가신다 겁날 것 없다~~~"라는 노래가 맴도는 것은 반공교육에 익숙해져 있는 나만의 생각일까./한준명 기자 (urigul@korea.com)- ⓒ 2004 오마이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