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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혼,고구려는 지금 ⑴] 호로고루,당포성,은대리성

입력 2005. 01. 02. 06:08 수정 2005. 01. 02. 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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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가 만주 일대를 평정한 뒤 남하하며 남긴 남한 지역 고구려 유적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무관심 속에 방치된 채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

특히 한탄강과 임진강 주변의 고구려 성 10여곳은 대부분 사유지에 자리잡고 있어 밭이나 농장으로 변하거나 군사시설이 차지하고 있어 보존과는 거리가 멀었다.

서울 북부 아차산과 용마산을 중심으로 형성된 고구려 보루 30여개소는 등산로가 형성돼 간이 화장실을 비롯한 각종 편의시설이 들어서 있어 그 형태마저 잃어가고 있었다.

중국이 고구려를 자국사로 편입시키기 위해 3조원을 들여 고구려 유적을 정비하는 동북공정(東北工程)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도 정부는 아무런 대책없이 국내 유적 정비조차 소홀히 하고 있는 것이다.

본보는 고려대 매장문화연구소와 서울대 박물관의 후원으로 직접 고구려 유적 현장을 찾아가 유족의 보존실태와 문제점 등을 파헤치는 시리즈를 10회에 걸쳐 싣는다.

◇고구려 성벽의 역사적 의미=호로고루의 ‘호로’는 고구려 말로 성(城)을 뜻하는 홀(忽)이 변형된 이름이다.

호로고루 당포성 은대리성은 모두 강에 맞닿은 절벽의 입지를 활용해 흙으로 된 경사면에 돌을 쌓아 올리는 굽다리 방식으로 축조됐다.

당포성과 은대리성은 한자 지명을 인용한 이름이지만 역시 전형적인 고구려 성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호로고루 앞은 수심이 얕아 임진강에서 배 없이 건널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여울목으로 군사 요충지다.

기마부대와 보병부대로 구성된 고구려군은 백제 수도 한성으로 진격하기 위해 최단 코스인 문산 방면 대신 40리나 우회한 호로고루 앞을 지났다.

심 실장은 “세 성벽은 고구려가 한성 백제을 함락한 뒤 유사시 증원군을 급파하기 위해 교통 요지에 만든 교두보”라고 말했다.

높이 10m,길이 80m의 호로고루 성벽은 20〜30m 높이의 천연절벽과 맞물려 위에서 내려다보면 삼각형 성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성 안에선 왕궁 등 주요 유적에서나 나오는 고구려 기와가 8가지 이상 출토됐고,군량미로 보이는 대규모 탄화미도 발견됐다.

남한지역 고구려 성 40여개 중 가장 중요한 거점이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당포성은 높이 6m,길이 50m의 성벽 상단부에 일정한 간격으로 구멍이 나 있다.

이는 만주와 북한 지역 고구려 성곽에서 흔히 보이는 ‘기둥 구멍’과 똑같은 모습으로 남한지역 고구려 성벽 중 이 구멍이 가장 먼저 확인된 유적이다.

성 내부 7000평을 둘러싼 둘레 952m 성벽 중 120m 가량이 남아 있는 은대리성에선 고구려 토기편 상당량이 출토됐다.

◇고구려 성벽 훼손 실태=37번 국도에서 장남면 원당리를 통해 호로고루로 들어가는 길은 비포장 도로였다.

덜컹거리는 차를 타고 500m쯤 가자 눈에 들어온 성은 전체가 검은 천으로 뒤덮여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보존작업이 이뤄지지 않아 성벽과 주변 흙이 계속 유실되자 연천군이 임시방편으로 천을 두른 것이었다.

가까이 다가가 천을 들추자 흙더미와 성벽 돌이 아무렇게나 뒤엉켜 있었다.

심 실장은 “오랫동안 방치해 흙과 돌이 뒤섞이고 빗물에 씻겨 유실되고 있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호로고루 정상엔 2001년 토지박물관 발굴팀 현장조사 당시 집터 2곳이 있었지만 지금은 어디가 집터이고 어디가 맨땅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성벽 중간 부분은 땅꾼들이 뱀을 잡기 위해 2〜3m 가량 성벽 돌을 치워내 형체가 사라진 상태였다.

성 안은 사유지여서 땅 주인이 버섯을 기르느라 흙을 고르느라 동편 성 터 흙을 깊이 1m 가량 파헤쳤다.

심 실장은 “정상적으로 발굴했다면 상당히 많은 유물이 나왔을 자리”라며 “대부분 유실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심 실장은 성 내부를 둘러보다 바닥에 굴러다니던 기와조각 2개를 주워 들었다.

하나는 회색이고 하나는 붉은 색이었다.

그는 “회색은 조선시대나 통일신라시대 기와이고,붉은 색은 굽는 방법이 독특했던 고구려 기와”라며 “고구려 유물이 이처럼 파손돼 발길에 아무렇게나 채이는 게 우리 현실”이라고 했다.

그제서야 주위 바닥을 유심히 둘러보자 곳곳에 붉은 기와조각이 널려 있었다.

한탄강과 장진천 교류지점에 있는 은대리성은 입구부터 성벽 돌이 발길에 채이도록 나뒹굴고 있었다.

땅 주인이 몇해 전 밭을 만들려고 성벽을 20m나 허물 때 깨진 파편들이었다.

입구 땅바닥에 ‘중요 유적이므로 훼손해선 안된다’는 연천군수 명의의 경고 안내판이 꽂쳐 있었지만 안내판도 심하게 훼손된 채 옆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성 안은 밭과 빈터 뿐으로 고구려 유적임을 말해주는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세 성벽 중 가장 규모가 작은 당포성은 일부만 성벽이 남아 있을 뿐 성벽이 서 있었을 자리를 따라 빙둘러 군용 참호가 구축돼 있었다.

유적이라기보다 군사시설에 가까웠다.

현장조사 당시 발견됐던 건물터는 과자봉지 등 쓰레기만 바람에 흩날릴 뿐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성 한복판에 우뚝 서 있는 어느 부대 소속인지 알 수 없는 탱크가 세워져 있어 연병장을 연상시켰다.

한켠에 외롭게 남아 있는 고구려 성벽이 오히려 어색한 모형물 같았다.

한강을 따라 80개가 넘는 삼국시대 성이 있고 이 중 40여개가 고구려 성으로 추정되나 정상적인 발굴이 이뤄진 곳은 손으로 꼽을 정도다.

호로고루 은대리성 당포성 역시 2000〜2001년 지표조사와 현장조사를 했지만 아직까지 발굴 및 보존작업이 실시되지 않고 있다.

증보문헌비고 등 기록에는 호로고루 맞은 편에도 소규모 고구려 성이 축조됐다고 나와 있지만 미군에 공여된 땅이어서 아직 지표조사조차 이뤄진 적이 없다.

이 일대 상당수 고구려 유적은 군사지역 안에 있어 일반인 접근이 어려운데다 곳곳에 지뢰가 매설돼 조사 자체도 어려운 실정이다.

심 실장은 “부대 안 유적의 민간인 조사는 사실상 불가능한 실정”이라며 “삼국시대 격전지인 이 일대를 역사문화 상품으로 만들면 고구려사 이해를 훨씬 높일 수 있는데 지자체나 관광업체는 땅굴 등 분단사 탐방코스에만 투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동행취재: 심광주 토지박물관 학예실장>1991년부터 한국토지공사 문화재담당자로서 전국 각지 문화재 지표조사 및 발굴조사를 맡아온 심 실장은 1994년 대표적 고구려 유적 아차산 보루 조사에 참가하고 1998년 경기도 양주,2000년 경기도 연천 유적조사를 실시하는 과정에서 호로고루를 비롯 경기 일대 고구려 유적 현장조사에 참가했다.

◇한양대 사학과 및 동대학원 졸,상명대 사학과 박사과정 수료<도움말 주신 분>고려대 최종택 교수,육군사관학교 이 재 교수,충북대 차용걸 교수,서울대박물관 양시은 연구원,고구려연구재단 임기환 실장.특별취재팀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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