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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혼,고구려는 지금 ⑷] 양주,고구려 지방수도?

입력 2005. 01. 25. 05:22 수정 2005. 01. 25. 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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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맥으로 둘러싸인 분지 경기 양주 지역은 고구려군이 남하하기 위해 반드시 통과하는 곳이었다.

군사 유적의 집중적인 분포나 기록으로 볼 때 양주가 고구려 남하때 지방 수도 성격을 지녔던 남평양성이라는 학설도 제기돼있다.

고구려 남하 경로는 크게 3가지로 추정된다.

첫째,개성→장단→호로고루(혹은 칠중성)→양주→서울은 가장 많은 유물이 출토되고 있는 경로다.

임진강변의 호로고루와 칠중성은 여름 장마철만 아니면 물이 얕아 쉽게 강을 건널 수 있다.

험준한 산맥같은 지형 장애물도 없기 때문에 대규모 보병을 이끈 고구려 군대가 가장 많이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두번째는 개성→임진강 하구→파주→서울 경로로 개성에서 서울로 이르는 최단거릿길이다.

하지만 임진강 하구는 물이 깊기 때문에 배가 필요해 실제 이용 가능성은 높지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세번째 철원→포천→서울 경로도 유력시되지만 고구려군 보다는 고구려의 부용 세력인 말갈인의 남하 경로라고 학계는 추정하고 있다.

따라서 고구려군은 첫번째와 두번째 경로를 주로 이용해 남하했을 것이고 그중에서도 양주를 거치는 첫번째 경로가 주된 남하 루트였던 것으로 학계는 보고 있다.

광개토대왕비는 고구려가 396년 무렵 백제로부터 한강지역에서 58개 성을 빼앗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양주지역에서 지금까지 확인된 15개 성곽은 이 58성 가운데 포함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아울러 양주를 남평양으로 추정하는 학설이 있다.

고구려는 475년 겨울 백제 왕도 한성을 함락시킨 후 계속 남진해 충남 아산만까지 확보했다.

한강 유역을 확보한 고구려는 이 지역에 대한 효과적 통치를 위해 백제의 북한산군이 있던 곳에 남평양성을 설치했다고 삼국사기에 전하고 있다.

삼국사기는 또 “백제가 4세기 중반 양주 지역에 매성현과 북한산군을 설치했다”고 쓰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남평양성의 위치를 현재의 경기 양주와 의정부,서울을 포함한 지역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토지박물관 심광주 학예실장은 “서울 아차산 일대에서도 유적이 많이 발굴되지만 양주에서도 여러 군사유적이 발견되고 있어 현재의 양주가 남평양성일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도 학계에서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강주화기자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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