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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CD는 '금융범죄의 감초'

입력 2005. 08. 12. 11:24 수정 2005. 08. 12.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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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령·편취 위험성 도사린 구조적 약점…전산·서류 조작 사기도 빈번금융사고·사기는 2000년대 들면서 규모가 더욱 커졌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더라도 최고 수백억원대에 이르는 규모는 분명 과거와는 다른 양상이다. 양태도 크게 달라졌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초반만 해도 친·인척의 사업자금 마련을 위해 또는 중병을 앓는 가족을 위해 공금에 손을 대는 생계형 범죄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한탕을 목적으로 주식투자를 하거나, 아예 횡령한 수십억~수백억원의 돈을 갖고 해외로 도주한다.

2000년 이후 발생한 금융사고·사기의 유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양도성예금증서(CD)를 편취하거나 서류·전산 조작으로 돈을 빼내는 것이다. 우선 CD는 대형 금융사고의 단골이라고 할 정도로 CD를 이용한 사고·사기가 빈번하다. 이번 국민은행·조흥은행 CD 횡령 사고에 앞서 지난 6월 23일에는 기업은행 영업지점에서 300억원의 CD 편취 사고가 터졌다. 기업은행 일산 마두지점의 CD 발행과 인도과정에 기업은행 지점 직원이 실질 자금주인 동부증권과 CD 발행의뢰인이 다른데도 CD증서를 발행의뢰인(채권중개인) ㄱ씨에게 교부했고, ㄱ씨는 이 CD를 동부증권에 넘기지 않고 도주했다. 물론 경찰이 ㄱ씨를 검거하고 3장의 100억원짜리 CD는 모두 회수했다. 2003년에는 조흥은행 직원이 500억원의 CD를 위조한 뒤 원본을 사기단에 넘겨주기도 했다.

현금화 쉽고 익명성 보장CD는 기본적으로 예금을 하면 교부하는 증서다. 은행은 단기 금융상품으로 발행하기도 한다. 만기는 통상 30~90일이며 CD 앞면에 표시된 금액(최저 500만원)을 만기일에 찾을 수 있다. 예금주가 명시되지 않은 무기명 상품인데다 양도가 자유롭다. 정기예금과 수표를 합쳐놓은 것으로 보면 된다. 또 CD의 가장 큰 특징은 익명성이다. 처음 발행될 때와 마지막 만기도래시에 찾는 사람만 노출된다. 중간 유통과정에는 누가 거래했는지 공개되지 않는다. 현금으로 바꾸기도 쉽다. 위폐방지 장치가 돼 있지만 위조도 쉬운 편에 속한다. 금융사고·사기의 단골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횡령·편취 사고가 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얘기다. 뿐만 아니라 자금세탁이나 뇌물로도 많이 활용된다.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과 장영자 사건, 나라종금 퇴출 저지 로비사건 등에서 CD는 어김없이 등장한다.

그래서 CD 제도개선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자산운용사 준법감시인인 ㅎ이사는 "CD는 계속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면서 "발행·유통관리에 제도적인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교통사고는 운전사 과실이다. 하지만 그 도로에서 계속 교통사고가 난다면 운전사 과실도 있겠지만 그 도로에 더 큰 문제점이 있다는 설명이다.

전산조작이나 서류조작도 다반사로 발생한다. 지난 4월 14일 터진 조흥은행 횡령사건은 지점이 아닌 본점 자금결제실에서 일어나 충격을 줬다. 이러한 유형은 통상적으로 지점에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범인인 ㄱ대리는 은행 '기타 차입금' 계정에서 중소기업자금 등 은행 대외차입금 일부를 수차례에 걸쳐 상환하는 양 '이체지시서'를 위조해 누나 명의의 계좌에 입금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ㄱ대리가 담당했던 '기타 차입금'은 한국은행과 다른 금융기관에서 들어오는 자금을 관리하는 계정이다. 콜자금은 물론 다른 은행으로부터의 차입금 집행을 위한 정책자금 등이 모두 모인다. ㄱ대리는 서류를 조작해 자신의 누나 명의로 개설한 ㄱ은행 계좌(증권연계계좌)로 이체한 후 주식투자를 했다. 한번에 10억∼70억원씩 지난 1월17일부터 3월 31일까지 16차례에 걸쳐 무려 400억원을 빼냈다.

고객명의 위조 대출금 가로채기도지난해 8월 드러난 코오롱캐피탈의 472억원 횡령사건도 서류를 조작한 것이다. 코오롱캐피탈 재무담당 ㅈ상무는 회사자금으로 주식에 투자했다. 그러나 투자는 실패했고 이를 보전하기 위해 투자금을 늘렸지만 손실금액만 늘어날 뿐이었다. 투자규모는 법정 한도를 훨씬 넘어서게 됐고, 주식투자 손실을 감춰야 했다. 그래서 손실된 수백억원이 ㅎ증권사 계좌에 예치돼 있는 것처럼 재무제표를 허위로 만들었지만 문제는 감사인이 각 금융기관으로부터 실제 잔액이 얼마인지 확인한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ㅈ상무는 금융기관 잔액증명서 발송주소를 위조하는 수법을 생각해냈다. 즉 잔액증명 조회서를 중간에 가로챈 뒤 ㅎ증권사의 잔액증명서를 위조해 예금잔액이 그대로 있다고 회신한 것이다. 삼일회계법인은 5년간 이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이밖에도 수십억원 규모의 금융사고·사기는 숱하다. 외환은행 모지점의 대출업무를 담당하던 ㄱ씨는 고객명의로 대출서류를 위조하거나 대출금을 받은 뒤 허위 영수증을 발급하는 방법으로 22억원을 빼돌리다 지난 4월말 적발됐다. ㄱ씨는 주로 장기 해외 체류중인 고객 명의로 대출서류를 위조하고, 특히 상환기간이 15년에 이르는 장기담보대출상품에 가입해놓고 범행을 은폐해왔다. ㄱ씨의 범행이유는 역시 주식투자였다. 지난 5월에는 동원투신운용 회계담당 ㄱ씨가 회계장부를 조작하는 수법으로 9억원 가량을 횡령한 뒤 주식과 선물·옵션 등 파생상품에 투자하다 적발됐다.

영화 속 금융사고·사기 영화에는 외부인 소행에 의한 것이 대부분이다. 즉 현재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내부인에 의한 금융사고·사기와는 좀 다르다. 그리고 대부분의 영화는 은행이나 금고를 터는 고전적인 방법이다. 예컨대 영화 '오션스 일레븐' '범죄의 재구성' '자카르타' 등은 외부인이-물론 내부인의 도움을 받기는 하지만-은행이나 금고를 턴다.

하지만 간간이 해킹 등 첨단(?) 방법을 동원하는 내용의 영화도 있다. '스워드 피쉬' '엔트랩먼트' 가 대표적이다. '스워드 피쉬'는 미 마약단속국(DEA) 의 불법 비자금 세탁 프로젝트인 코드명 '스워드 피쉬' 시스템에 침투해 95억달러를 가로채는 것이다. 주인공인 휴 잭맨은 천재적인 해커로 분해 각종 방화벽과 암호로 무장한 '스워드 피쉬' 시스템을 해킹한다.

숀 코널리와 캐더린 제타 존스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엔트랩먼트'도 해킹으로 은행을 터는 것이 주요 소재다. 두 사람은 1999년 마지막날 밤 밀레니엄 버그를 방지하기 위해 국제은행의 컴퓨터가 잠시 멈춘 사이, 수십억 달러의 돈을 계좌이체 시킨다. 역시 은행 시스템에 침투해 돈을 빼낸 것이다.

<조완제 기자 jw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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