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젖 달라는데 책 읽어주는 대통령

2005. 8. 22.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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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헌태 기자]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 2주년 성적표가 나왔다. 못했다는 평가가 58%였다. 잘한 일이 많다는 응답은 25%였다. 취임 초기 90%대의 지지도는 아니더라도, 당선 당시 득표율의 절반이다. 대통령이 외로울 만하다. 여론과 동 떨어졌다고 탄식할 만한 수치이다. 반대로 국민들 입장에서는 대통령이 국민과 단절되었다고 느낀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론조사의 흐름 상 노무현 대통령의 집권 2년 반은 특이하다. 5년 단임제의 특성 상 다른 대통령들의 지지도는 한 해가 지날 수록 지지도가 뚝뚝 떨어지는 계단형 하락흐름이다. 노 대통령은 취임 6개월만에 30%대의 지지도를 기록한 이후 낮은 지지도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간헐적 일시 상승이 나타나는 파고형이다. 전반적 평가는 낮아도 가끔 승부수를 건다고 표현되는 대통령의 스타일과 일치하기도 한다.

'잘 못했다' 58% - '잘 했다' 25%

대통령의 지지도가 일시 상승할 때는 3번이 있었다. 재신임정국, 탄핵정국 그리고 지난해 말 자이툰 부대 방문 이후 해외를 순방하며 국익외교를 펼치기 시작한 이후 독도 문제 등으로 대일 강경발언을 했던 올 3월까지의 시점이다. 대체로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낮지만, 대통령이 정치적 승부수를 던지면 밀어주는 국민들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대통령의 시점별 지지도 평균은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낮을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노 대통령은 '젖달라는 아이한테는 젖을 주어야 한다'는 여론 제1의 법칙을 어기고 있다. 노 대통령의 취임 6개월 평가에서 국민이 원하는 최우선 과제는 '경제회복(59%)'으로 압도적 1위였다. 취임 2년 반 조사에서 나타난 최우선 과제 1위 역시 '경제회복'으로 취임 6개월 때보다 더 올라가 67%를 혼자 차지했다. 부정부패 척결을 비롯한 갈등해소, 정치개혁, 인사정책, 언론정책, 남북관계를 다 합쳐도 그 절반이 안된다. 반면에 많은 조사에서 노 대통령이 가장 잘한 분야는 '정치개혁'이었다.

우리 사회를 이끄는 지도층이나 지식층과 달리 대중은 논리적이지 않으며, 복잡하지도 않다. 대중을 옳고 그름의 잣대로 봐서는 안되는 이유는 그들은 자신의 생명력을 중심으로 사고하기 때문이다. 대중에게 들이댄 의리와 대의와 같은 복잡한 논리는 공허하다. 지금 우리 대중은 '밥을 달라'고 외치고 있다. 참여정부 2년 간 대중은 '경제'를 외치고, 대통령은 '정치'를 외쳤다. 대통령이 정치만을 챙겼다는 말은 아니다. 대중 역시 경제만을 요구한 것도 아니듯이 말이다. 대략 그렇다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대통령이 정치 측면에서 보여주었던 그 결단과 승부수를 경제분야에서 보여준 것을 국민들이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배고픈 아이에게 젖은 안주고 책을 읽어준다면 아이는 계속 운다.

대중은 '경제'를, 대통령은 '정치'를

다만, 우리 경제가 별로 나쁘지 않다는 말은 복통터지는 소리이다. 대통령은 물론이고 참여정부의 관료들이 경제에 대한 거시지표도 나쁘지 않고, 외국에서의 국가경제 신인도가 올라갔다는 항변은 '해서는 안될 말'이다. 많은 국민들에게 절망감을 주기 때문이다. '다 잘 사는데 너만 못산다'는 말이다. 돌려서 생각해 보면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음을 의미할 수 밖에 없다. 부익부 빈익빈 말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또 하나의 잘못은 일관성의 부족인 동시에 초심의 상실이다. 그것은 혼란스러움을 의미한다. 참여정부의 탄생 즉 노무현 대통령의 승리는 크게 봐서는 '확 뒤집기'이다. 우리 사회 곳곳의 부정부패, 타락한 기득권 그리고 권위주의 잔재를 청산해달라는 국민의 바람이었다. 그러나 이같은 요구를 가졌던 개혁성향의 국민 역시 취임 초부터의 관료세력의 중용, 이라크 파병, 국가보안법, 비정규직문제, 부동산 문제 등에서 대통령에 등을 돌린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상당수는 민노당에 대한 지지로 전환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동안 대통령은 안정을 지향하는 보수층의 요구를 만족시켰던 것도 아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지난 2년 반 동안 지지층의 불만과 비지지층의 불안이 계속되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최근의 대연정 제안까지 포함해 양 측 모두에게 만족을 준 적이 거의 없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또 한 쪽이라도 확실히 설득했던 적도 없었다.

최근의 대연정은 그런 점에서 지지층을 이반시키기에 충분한 소재이다. 지금 국민이 원하는 경제와도 먼 얘기일뿐더러 그 동안 대선과 총선 승리의 원동력이 되었던 시대정신과도 맞지 않는다. 지금의 시대정신은 우리 사회의 수구성을 극복하는 새로운 이념과 노선으로 정리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바람은 세대대결의 형태로 지역주의를 자연스럽게 극복하고 있던 중이기도 하다.

대연정 제안은 'YS 손목시계 보여주기 2탄'

분명 현 여권은 민주당을 호남지역 세력으로 규정하면서 새롭게 창당했다. 노 대통령은 원칙이라는 측면에서 야당과의 연정을 추진해서는 안된다. 야당 역시 어이없어 하듯이 말이다. 야당과의 대연정은 대통령이 한참 '세상'을 뒤집으려다 보니, 360도 회전으로 원위치로 돌아온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런 점에서 'YS 손목시계 보여주기' 2탄이기도 하다. 대통령은 후보 시절 '노풍'으로 상징되는 경선 당시의 지지층을 한 번에 다 날린 그 때의 아픈 기억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잘못은 대중의 합의를 이끌어내는데 소흘하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자신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도움을 호소했다. 그러나, 여러 고비 마다 대중을 끌어안고 격려하고 설득하는 데에는 인색했다. 또한 차분히 경제를 잘 챙기길 원하는 국민과 달리 때가 되면 대연정과 같은 정치 승부수를 던졌다. 재신임 때 등과 마찬가지로 국민은 놀라움과 함께 언짢음을 느낄 수밖에 없다.

대통령의 '올인'은 때로는 '모든 것을 남김없이 건다'는 찬사를 받을지 몰라도, 대중의 입장에서는 불안과 함께 모험주의자를 바라보는 불쾌함, 즉 원래 말 뜻 그대로 '전재산을 도박에 거는 가장'에 대한 원망과 불안이 섞일 수밖에 없다. 비록 지금까지 몇 번의 '큰판'에서 대통령은 지지 않았다. 그러나 대중의 입장에서는 항상 불안할 수밖에 없다. 왠지 실력으로 사는 사람 같지가 않은 것이다. 행여나 대통령 주변에서 이런 '올인' 버릇을 말리지 않고 '인생은 한 방으로 사는 것'이라며 부추기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대통령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대중이 못 쫓아가는 측면이 없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지도자는 대중이 갈 수 있는데까지만 가는 것이 옳다. '합의 없는 전진'을 계속해서는 안된다. 항상 대중의 한 두 발자국 앞에 가야 되는 것이다. 자신이 이끄는 무리에서 멀리 떨어져 '저 곳으로 가야한다'고 외치며, 뒤처지고 있다고 호통을 치는 것은 지도자가 해서는 안될 일이다. 지금은 대중보다 한참 앞장서 가기도 모자라, 자신을 지지하는 층과 함께 정치를 해온 정치세력인 당도 떼어놓고 가는 모양새이다.

아무리 옳은 길이라도 대중이 따라가지 못한다면...

아무리 옳다고 한들 따르는 대중이 따라가지 못한다면 목표점까지 못간다. 지금 대통령은 자신의 목표지점에 집착하며 대중의 마음이 서있는 지점은 외면하고 있다. 대중은 지금 지쳐있다. 자살 하는 젊은 가장에게, 희망의 불빛이 되어야 할 대통령의 대연정 승부수가 어떤 의미로 다가설지 다시 한 번 고민해 봐야 한다.

남은 임기 2년 반이 지나도 잘못된 구질서와 권위주의의 해체는 대통령의 큰 업적으로 남을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탄핵 때 이미 보았듯이 많은 국민이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향과 능력에는 고개를 갸웃할망정 대통령의 진정성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는다고 본다. 억울해 하거나 조급해 할 필요 없다. 그러나 지금처럼 간다면 앞으로도 낮은 지지도가 올라가기는 힘들 수밖에 없다. 오히려 한 발 헛딛으면 남아있는 지지층마저 붕괴하는 위험한 처지이다.

대통령이 경제를 챙기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최근 밝힌대로 양극화 문제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정치 부문에 투입할 정력을 경제문제에 투입해야 한다.

대통령이 국민 모두를 다독이며, 국민이 원하는 방향으로 스스로의 정책노선을 묵묵히 걸어갔으면 한다. 지금은 역사를 생각하며 또 다른 목표를 설정할 때가 아니다. 국민과 함께 호흡하고 그들의 퉁퉁 부은 발을 주물러 주어야 할 때이다.

/김헌태 기자

덧붙이는 글기자소개 : 김헌태 기자는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TNS 이사를 지냈으며 현재 한국사회여론연구소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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