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와 일본 교역의 중심지 '크라스키노'
[오마이뉴스 김태경 기자]
▲ 크라스키노 마을 뒷산에서 바라 본 발해 성의 모습. 흰색 타원형 안이 성터의 모습으로 멀리 동해 바다가 보인다. 성의 왼편에는 추카노프카 강이 흐른다. |
ⓒ2005 오마이뉴스 김태경 |
크라스키노는 연해주의 수도인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남쪽으로 약 200㎞, 중국의 훈춘에서는 동쪽으로 40㎞, 두만강에서 북쪽으로 60㎞ 정도 떨어져있다. 풍광이 수려한 포시에트 만 안쪽 깊숙이 자리잡고 있으며 행정체계상 촌으로 한국의 리(里)급 마을이다.
촌의 중심지에서 남서쪽으로 직선거리로 3㎞ 정도 떨어진 곳에 발해의 옛 성터가 있다. 이 성을 마을 이름을 따 크라스키노 성이라고 부른다. 성의 남쪽에서 바다까지는 직선거리로 400m에 불과해 넘실거리는 파도가 물결치는 동해를 볼 수 있다.
발해는 5경·15부·62주의 행정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크라스키노는 동경용원부(오늘날 중국 지린성 훈춘의 팔련성) 산하의 4개 주 가운데 염주(鹽州)의 주부(州府)가 있던 곳이라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고구려연구재단 구난희 실장은 "이곳은 발해와 일본을 왕래하는 배가 떠났던 이른바 '일본도(日本道)'의 출발지"라며 "발해는 말·철·주석 등의 무역품을 일본에 수출했는데 이들 물품이 모이는 집산지였다"고 설명했다.
현재 블라디보스토크는 러시아 입장에서 볼 때 한국·일본 등과의 교역의 중심지다. 이에 견줘보면 크라스키노는 발해 시대의 블라디보스토크와 같은 구실을 했다. 당시 발해인들은 겨울에 북서풍을 타고 일본의 후쿠라로 갔다가 이듬에 여름 남동풍을 타고 돌아왔다.
크라스키노 성의 총 길이는 1200m로 연해주 지역에 있는 발해 성터 가운데 가장 크다. 동문·서문·남문 등의 흔적이 완연하게 남아있다. 성의 바깥쪽에는 발해 시대의 무덤 떼가 아직도 있다. 성벽 속에서 당나라 현종 때의 '개원통보'가 나온 것으로 봐 8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크라스키노 성의 각 문에는 옹성(擁城)이 있으며 동문에서 10m 정도 떨어진 곳에는 길이 4m에 폭 2m 정도의 치(雉)가 있다.
러시아 극동고고민속학 연구소의 알렉산드르 이블리예프 박사는 "크라스키노 성의 옹성(성문 밖에 쌓은 작은 성)과 치(稚·성벽의 돌출부)는 고구려 수도였던 국내성의 그것과 똑같다"며 "이는 이 성이 전형적인 고구려 방식으로 쌓은 것임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 포시에트 만의 아름 다운 모습. 이 만의 안쪽에 크라스키노 발해 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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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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