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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 최대온돌 발견된 러 크라스키노

입력 2005. 08. 25. 14:12 수정 2005. 08. 25.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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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ㆍ러ㆍ한반도 접경..발해의 일본교역 중심

(크라스키노<러시아>=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 러시아 연해주의 주도(州道)이자 러시아 해군의 부동항(不凍港)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버스로 서남쪽을 향해 5시간을 달려 도착한 소읍(小邑) 크라스키노.

러시아의 동쪽 변방 이른바 '극동'(極東) 끄트머리의 한적한 마을인 이 곳은 러시아와 중국ㆍ북한의 국경이 자동차로 1시간 안쪽으로 걸리는 접경지대로 포시에트만(灣)을 끼고 있다.

이 곳에는 발해의 성벽 유적인 크라스키노 성터(둘레 1.2kmㆍ총면적 12만㎡)가 자리하고 있다. 이 성터는 1958년 소련의 G.I.안드레예프가 처음 발견해 1980년 블라디슬라브 볼딘(63) 박사가 처음 발굴을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1994년 대륙연구소를 거쳐 현재 고구려연구재단(이사장 김정배)이 러시아측과 공동으로 10년이 넘도록 발굴작업을 벌이고 있다.

발해의 행정구역인 5경15부62주 중 동경(東京) 용원부(龍原府) 염주(鹽州)의 중심지였던 이 곳에서 고구려연구재단과 국립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산하 극동역사고고민속학연구소의 중세연구실(실장 블라디슬라브 볼딘)이 손을 맞잡고 비지땀을 흘리며 성터 안쪽을 발굴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고구려연구재단의 '발해 3박사' 임상선(45)ㆍ김은국(45)ㆍ윤재운(35) 연구위원과 에브게니야 겔만(46) 박사 등 러시아 극동역사고고민속학연구소 조사단 20여 명은 성터 안쪽의 가장 높은 지대에서 지난 21일 지금껏 발견된 발해시대의 것으로는 최대 규모의 온돌 구조(길이 14.8m 폭 1.0-1.3m)와 발해시대의 생활유물 140여 점 등을 발굴해냈다.

윤재운 연구위원은 이 곳 크라스키노가 발해의 일본 교역항으로 철과 주석의 집산지 역할을 담당했으며 일종의 '하역센터'였다고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크라스키노는 이른바 '발해-당(唐)-일본 교역의 중심지'로, 현재까지 항구 유적은 발굴되지 않고 있지만 이곳이 발해 시대의 일본으로 가는 해로(海路)의 출발지였다는 것은 학계의 정설이다.

고구려연구재단 대외협력실장 구난희(42) 박사는 "당시 신라와 사이가 좋지 않던 일본은 이 지역의 포시에트만(灣)을 당과 발해와 교역하는 데 일종의 안전항로로 이용했다"고 덧붙였다.

당시 일본의 해안 귀족에게 발해의 산물은 인기가 매우 좋았다. 이 항로를 선호했던 일본은 계절풍을 이용해 발해와 교류했다. 겨울에 북서풍을 타고 발해로 향한 일본의 사신들이 여름에 남동풍을 타고 일본으로 돌아갔던 것.

이런 이유 때문인지 일본의 학자들도 이 곳 크라스키노 성터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고구려연구재단 관계자들은 전했다.

구 박사는 "일본의 아오야마(靑山)대학 조사팀이 1998년 이 성터의 동문지(東門址)를 조사한 적이 있다"면서 "그들은 이른바 '환(環)일본의 해상권'차원에서 이곳을 탐내고 있다"고 우려했다.

임상선 박사는 역사적ㆍ지정학적으로 발해의 대 일본교류의 중심지였던 이 곳이 발해가 일본으로 가면서 또한 신라로도 가는 길의 출발지였다고 설명한다.

그는 "이런 역사지리적 특성들로 이곳 크라스키노의 발해 성터에 대해 일본 뿐만 아니라 중국까지도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발해 유적지 역시 강대국들의 '역사의 각축장'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른바 '동북공정'을 통해 고구려사를 자국의 역사로 편입하려고 시도하는 중국은 현재 발해를 자국의 동북 변방민족인 말갈(靺鞨)족의 역사로 규정, 역사 교과서에도 발해를 중국사의 일부로 기술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지금까지 성터 안의 극히 일부분만이 발굴된 상태인 크라스키노 성터에서 한ㆍ러 공동조사단은 애초 8월 말까지로 예정돼 있던 2005년도 발굴 기간을 연장해 9월에도 작업을 지속할 계획이다.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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