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농 식탁도 중국산 해일 주의보

2005. 10. 3.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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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시인 윤동주의 고향인 연변 용정시 인근의 화룡 생태농업단지. 이름모를 독립투사들을 기린 노래 '선구자' 속에서 흐르던 '한 줄기 해란강'이 지나가는 이곳 만주 들녘에서 삼대째 농사를 짓고 있는 허인범(57)씨는 "평강쌀이라면 아주 알아줘. 만주국 부의황제도 여기 쌀을 갖다 먹었거든!"이라고 자랑했다.

함경도에서 배곯다 북간도로 넘어온 조부 세대가 황무지를 기름진 논으로 바꾸었다면, 허씨는 '유기농' 꿈을 일구고 있다. 농약과 화학비료를 쓰지 않는 친환경 유기농의 상품성에 눈을 뜬 첫 세대로서, 재중동포 마을 '보성촌'을 부농으로 바꾸는 게 그의 소망이다.

최근 조선족자치구인 연변 일대를 비롯해 중국 동북삼성 지역은 유기농업의 '틀잡기'가 한창이다. 한국·일본의 '건강' 바람을 탄 유기농 시장의 급성장은 이들의 변신에 촉매제 구실을 한다. 현재 연변지역 10만헥타르의 콩재배 지역에서 2만5400헥타르 정도가 유기농·친환경 콩을 재배하고 있다. 유기농·친환경 콩의 80%는 수출된다. 중국 중앙정부는 1천개의 현(면)을 화룡시 같은 생태단지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중국 유기농 시장의 발전은 한국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한국의 유기농 식품시장은 2001년 3천억원에서 올해 5천억원 수준으로 급성장했다. 풀무원 같은 한국기업은 유기농 콩을 만주 일대에서 계약재배해 연간 6천톤을 들여오는 등 중국 유기농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국산 유기농 콩은 풀무원 포장두부 며칠치를 만들면 모두 소진되는 물량인데다, 중국산은 수입관세 495%가 붙어도 국산 가격을 밑돌 정도로 경쟁력이 있기 때문이다. 세계무역기구의 농업개방 파고가 밀려든다면 '국산'이 상식으로 통하는 한국의 유기농 밥상도 '중국산' 해일에 곧 맞닥뜨리게 되는 셈이다.

원자재를 수입하거나 완제품을 외국에서 들여온 수입산 유기농 식품의 국내시장 규모는 약 900억원대로 추산되고 있다. 풀무원 유기농 구매팀 배경근 박사는 "유기농은 사람 손이 많이 가는데다, 재배 면적당 소출도 많지 않아 시장개방 수준이 높아지면 땅이 넓고 인건비가 싼 중국과 겨루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연길시에서 3시간 떨어진 돈화시의 풀무원 대산 농장에선 콩을 품질별로 고르는 작업을 주민들이 직접 손으로 한다. 이들의 하루 품삯은 한 사람당 10~20위안(1300원~2600원)으로, 우리나라의 20분의 1 수준이다. 중국은 현재 유기농 차·채소·콩·쌀 등을 수출하고 있다. 생산규모는 중국 내 공인 인증기관 집계로 2003년 말 기준 9억1천만위안(1170억원)이며, 86.4%를 미국·유럽·일본·한국 등에 내보내고 있다. 유기농보다 조금 완화된 중국 자체 기준에 따른 친환경 '녹색식품'은 연간 723억위안(9조3천억원) 규모를 생산하며 12.4%가 수출됐다. 관건은 중국산 농산물의 안전성이다. 중국산 김치에서 납성분이 검출된 최근 사태처럼 유기농 역시 중국산 먹거리에 대한 불신의 굴레에서 벗어나기는 어렵다. 그러나 국내 주요 생협단체들이 주도하는 친환경유기식품 유통인증협회 정찬율 사무국장은 "중국산 유기 농산물이 밀고 들어온다면 어려운 상황을 맞을 것"이라며 "국내 소비자한테 국산 유기 농산물의 신뢰도를 높여 브랜드 가치로 승부해야 하는 만큼 발전된 아이티 기술로 생산과 유통 전반을 철저히 통제·관리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유기농의 생산과 유통이 엇박자를 내고 있는 상황은 시장과 생산지 곳곳에서 목격됐다. 재래시장에서 고춧가루를 팔고 있던 한족 상인 장마(42·여)는 "녹색식품은 들어봤지만 유기식품은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말해 유기농에 대한 인식이 아직 높지 않음을 드러냈다. 또 저농약 채소 농장을 경영하는 자오천화(50)는 "땅은 넓지만 팔데가 마땅찮아 친환경 농사를 다 짓지 못한다"며 "한국 사람들이 와서 농사를 짓거나 채소를 사가면 어떠냐"고 말하기도 했다. 연변주 농업위원회 남철(46) 처장은 "중앙정부는 유기농 시장의 가치에 이제 눈을 떴을 뿐 대규모 지원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면서도 "콩·채소 등 유기농 상품은 평균 30~80%에서 최대 세 배까지 비싼 값을 받을 수 있는 만큼 일부 농민과 지방정부 공무원들이 자체적으로 유기농 인증을 추진하는 등 적극적"이라고 귀띔했다.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 온라인미디어의 새로운 시작. 인터넷한겨레가 바꿔갑니다. >> ⓒ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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