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길의사 "아들아, 조선의 투사가 돼라"

2005. 12. 18.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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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커우 공원 의거'를 통해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혼을 빼놓았던 매헌 윤봉길 의사(1908~1932)의 친필 유언 사본이 공개됐다.

'매헌 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는 윤의사가 거사 장소인 상하이 홍커우 공원을 답사한 직후 쓴 유언의 친필 사본을 윤의사 순국 73주기 하루 전인 18일 공개했다. 그간 유언의 일부 내용은 알려졌지만, 친필 유서 전문이 공개된 것은 처음이다.

윤의사는 거사 이틀 전인 1932년 4월27일 공원을 답사한 직후 홍커우 숙소인 동방공우(東方公寓)에 돌아와 백범 김구 선생의 요청에 의해 유언을 작성했다. 이 자리에서 윤의사는 거사가, 조선청년단에 대한 당부의 시, 김구 선생에 대한 존경의 시, 두 아들에게 남기는 유언 등 4편의 시를 2시간여 만에 썼다.

특히 두 아들 모순과 담에게 남긴 시에는 거사를 앞둔 비장한 심경과 자식과의 이별을 아쉬워하는 마음이 담겨있다. '너희도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하여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한잔 술을 부어 놓으라. 그리고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라.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으니….'

유서가 적힌 윤의사의 수첩 원본은 김구 선생이 해방 후 갖고 귀국한 뒤 해외에 유출됐다가 다시 현재 서울중앙박물관에 보관돼 있지만 미공개 상태다.

윤의사는 달필이었지만, 이날 공개된 유언에는 흘려쓰고 고친 자국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윤의사의 조카인 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윤주 이사는 "유서를 보면 당시 상황이 얼마나 긴박했는지 알 수 있다"며 "올해가 광복 60주년인데 친일청산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윤의사는 거사 직후 현장에서 일본 군경에 체포돼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일본 오사카 형무소에서 복역 중 1932년 12월19일 총살됐다. 기념사업회는 19일 오전 서울 효창공원 윤의사 묘역에서 순국 73주기 추도식을 연다.

〈백승찬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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