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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이렇게 시시할 줄 미처 몰랐어"

입력 2006. 01. 19. 16:04 수정 2006. 01. 19.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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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오소희 기자]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는 거대한 용광로와 같다. 우리는 그 용광로 속에서 '이윤 창출'이라는 거대과업을 위해 몸을 불사른다. 타오름의 속도는 나날이 거세지고, 뜨거움을 견디지 못하는 자와 거센 속도의 현기증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는 즉시 퇴출된다.

용광로 안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기이하게 진화한다. 이들은 생산할 때뿐 아니라, 소비하면서도 이득을 보기 위해 전심전력한다. 할인매장에서는 1+1 상품을 찾아 눈을 번득이고, 포인트와 마일리지를 쌓기 위해 부단히 머리를 굴린다. 이들은 나날이 약아진다.이곳에서 보편적인 휴머니티를 상실하고 비인간화되는 과정을 밟는 것은 쉬운 일이 되었다. 작은 계산에 의해 순식간에 눈앞에 있는 사람의 경중이 달라지고, 나아가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의 경중이 달라지며, 그 달라진 세계의 협소한 주관성 속에 살게 되는 까닭이다.

남편은 순한 눈빛을 잃었다. 과도한 회사업무로 피폐해질 때로 피폐해진 그는 멀쩡히 잘 있다가도 뜬금없이 성을 내곤 했다. 사소한 일에도 버럭 언성을 높인 후, 아연해진 얼굴로 멍하니 거울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그가 내게 이전과 같은 말을 할 때조차도, 그의 눈빛은 이전의 그의 것이 아니었다. 나는 남편이 그리워졌다.

출근을 앞둔 일요일 저녁이 되면 남편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고개를 떨구며, "인생 정말 별거 없다. 이렇게 시시할 줄은 미처 몰랐어" 중얼거리면서 시계를 바라보았다. 그의 마음속은 화수분처럼 솟아나는 분노로 가득 차오르는 반면에, 그의 인생은 점점 텅 비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뭔가 억울하다' 생각할 뿐, 구체적으로 이 상황을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는 듯했다. '어떻게 하면 남편이 이전의 따스함을 되찾을 수 있을까?' 내가 고민하는 만큼의 절반 가량도, 남편은 스스로를 위해 고민하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그는 너무나 바빴고 무언가를 깊이 들여다보는 것이 힘겨울 만큼 지쳐 있었다.

자기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주변인들과 더불어 소통할 수 있는 <마음>을 잃은 뒤, 우리가 그 대가로 얻을 수 있는 것 가운데 진실로 중요한 것은 과연 무엇이 있을까? 남편은 직장을 그만두기로 하고 나와 아이를 포함한 장기여행을 계획했다. 긴 휴지기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그는 잃어버린 따뜻함을 찾을 자신이 없다고 했다.

나는 그의 결정을 환영했다. 환영하다 못해 그에게 감사했다. 자신을 매몰시키던 일을 멈추고, 한번쯤 고개를 들어 먼 곳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용기 있는 사람이다. 시스템 속에 질식하기보다는 그 모순을 지적하고 개선시킬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게는 희망이 있고, 단순한 일상을 넘어선 미래가 있다. 나는 남편의 선택에 안도하는 한편, 본격적인 여행 준비에 착수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뭐든 철두철미하게 준비하기를 좋아하는 남편은 여행 준비를 게을리 했다. 내가 "당신을 위한 여행이니 만큼 당신도 같이 준비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을 때, 남편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 일을 내게 넘겼다. "지금은 내가 너무 바쁘니, 여행준비는 당신에게 일임하고 싶다"면서. 여행의 시기에 대해서도 남편은 "아직 알 수 없다"로 일관했다.

한 프로젝트가 끝나면 다음 프로젝트가 기다렸다는 듯이 그를 낚아채갔고, 그 프로젝트가 끝나면 다시 승진이 기다리고 있어서 아무래도 그 결과를 보고 그만두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 그의 견해였다. 계절이 두어 번 더 바뀌고 남편은 승진을 했다. 나는 그의 승진을 진심으로 축하했으나, 한편으로는 그의 남은 행보를 알 것도 같았다.

어느 날 남편은 아무래도 직장을 그만 둘 수 없겠다고 했다. 그의 선택은 단순히 생계를 위한 것만이 아니었다. 큰 것을 향한 욕망과 야심, 거대 시스템과의 결별에 대한 두려움…. 그는 그 어느 것 하나도 버리길 원치 않았고, 버리지 않고선 새로운 시작이 불가능한 법이었다.

그는 내게 미안하다고 했고, 그 말은 곧 '나는 앞으로도 지금처럼 내 마음을 돌볼 여유가 없을 것이고, 이제까지 그래왔듯 종종 너를 할퀼 것이니, 너는 내가 마음을 버린 대가로 네게 선사되는 부스러기들에 만족하여라'와 같은 말이었다.

나는 작은 집에서 넓은 집으로 이사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지만, 작은 집이라도 그 안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하며 지내는가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었다. 소형 자동차에서 중형 자동차로 바뀌는 것에는 관심이 없지만, 그 차의 주인이 어디를 향하는가에는 관심이 가는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남편의 선택은, 내게 슬픈 일이었다. 나는 한 번도 부스러기의 찬란함에 매혹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불기둥을 매단 자본주의 열차가 가속도를 더해 달린다. 열차 안의 승객들이 토막 난 시간과 이익을 계산해내는 기능을 극적으로 진화시키는 동안, 이와 반대쪽에 놓인 기능들은 급격히 쇠약해진다. 계산을 멈추는 법, 느슨히 앉아 비효율을 견디는 법, 진정한 시간의 불가항력 앞에 겸허해지는 법…. 그러나 마음이 거세되고 욕망만이 비대해지는 이곳에서 사라지고 쇠약해지는 것들을 소중히 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오직 앞서가는 것, 새로이 만들어진 것들이 열광과 환호의 주인공이 될 뿐이다.극소수의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기차에서 뛰어내려 "당신들이 잃고 있는 것을 바라보라!"고 외치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기차의 굉음 속으로 순식간에 파묻힌다. 심지어 기차의 승객 가운데 영악한 몇몇은 그들의 목소리마저 '웰빙'이라는 이름으로 상품화한다. 실로 기차의 화력과 자력은 엄청나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한번 내달리고 나면, 선로 주변에 아슬아슬하게 자립해있던 모든 것이 한순간에 그것에 들러붙는다. 기차는 온갖 잡동사니를 매단 채로 괴기스럽고 시끄러운 행진을 계속한다.

나는 무력감을 느꼈다. 제 시간에 떠나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고 싶어졌다. 지연되는 것에 대해 아무 불평도 않는 순한 눈빛의 군중들과 함께. 같은 버스를 타고 같은 휴게소에 들러 주린 배를 채우고 난 뒤 다시 버스가 출발했을 때 어느새 느껴지는 따스한 동지애 같은 것들, 아무런 이해관계 없이 눈빛과 미소를 나누며 곁을 지키고, 진심으로 서로의 여정을 걱정해주며 버스에서 내릴 때 따스한 포옹을 나누고 연락처를 주고받는 행위들. 그 모든 것들이 -십 분만 지하철이 지연되어도 모두 불같이 성을 내는 이 서울 하늘 아래서- 나는 그리워졌다.

해가 지면 상점들이 하나 둘 문을 닫고, 아이들은 팔꿈치가 낡은 코트를 벗는 아버지를 반기며, 고요히 흐르는 교향곡처럼 집집마다 창 너머로 흘러나오는 따스한 음식냄새와 웃음소리가 섞인 대화들, 그리고 저녁 식사 후에는 일찍 잠자리에 들어 밤의 은은한 빛과 적요를 존중하는 사람들. 그 모든 것들이 -피로한 눈을 한 사람들이 자정이 넘도록 욕망의 하수구를 찾아 부유하는 이 충혈된 도시에서- 나는 그리워졌다.

때는 마침 이슬람력으로 라마단 기간이었다. 해외단신을 통해 전해지는 라마단에 대한 이야기들은 내게 신비롭기만 했다.

'마호메트가 명상 중 최초로 알라의 계시를 받은 것을 기리는 금욕 기간. 이 기간 동안 무슬림들은 알라에 대한 헌신을 재확인하며 내적 성찰을 다진다. 해가 떠 있는 동안 가게와 상점은 모두 문을 닫고 학교도 일찍 파한다. 노약자와 어린아이, 임산부 및 수유부 등을 제외한 사람들은 해가 질 때까지 아무런 음식물도 섭취하지 않는다. 물, 담배, 성행위도 금지된다. 침을 삼키는 것조차 자제해야 한다.'

ⓒ2006 오소희

금욕과 내적인 성찰, 이를 위해 한 나라가 전부 일을 멈추고 휴식을 취한다? 아마존 정글 속 어느 부족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전세계 인구의 20%를 훨씬 웃도는 이슬람 국가에서 실제로 매해 한 달씩 벌어지는 일이었다.

나는 그곳에 가보기로 했다. 이슬람이란 종교가 개인을 어떻게 구속하고 자유롭게 하는지, 또 그것이 권력의 핵심과 맞닿아 있을 때 어떻게 시대와 불화하고 조화하는지에 대해서도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다. 물론 나의 경우, 내가 접하는 무작위적인 소수의 표본을 통해서만 확인이 가능할 터였지만 말이다.

여행지는 요르단과 시리아와 레바논으로 정해졌다. 때마침 레바논의 하리리 수상이 시리아 권력에 의해 폭탄 테러로 사망한 직후여서, 아랍의 정세는 다시 살얼음판이 되었다. 주변 사람들은 그 위험한 곳을 어린아이와 함께 단둘이 간다며 걱정에 쓰러졌다. 그러나 사고와 죽음에 대한 공포는 도처에 있기 마련이다. 아마도 이곳에서 교통사고와 암을 피할 수 있는 확률과 아랍에서 테러를 피할 확률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적은지를 계산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오히려 내게 테러보다 더 염려되는 것은 라마단 기간 동안 아이의 끼니를 구하는 일이었다. 다행히 대한민국에는 아무리 흔들어도 새지 않는 'Lock&Look'이 있었고, 품바에게 떨어뜨려도 깨지지 않는 바가지가 가장 중요하듯이, 나는 그것을 전대 한가운데 여권 앞자리에 소중하게 챙겨 넣었다. 9·11 테러 이후 이슬람에 대한 관심이 한차례 들끓었다가 서서히 가라앉은 무렵이었다.

/오소희 기자

덧붙이는 글지난해 10월 말~11월 중순경, 이슬람력으로 라마단 기간 동안 아들과 저는 아랍 지역을 여행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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