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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길] 대전 인돈학술원.. 동·서양 조화 건축물엔 선교사 애환 서려

입력 2006. 05. 05. 15:30 수정 2006. 05. 05.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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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종의 조류가 서식하는 생태숲에 서양건축과 동양건축의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곳이 있다. 대전시 대덕구 오정동 한남대 캠퍼스에 있는 '인돈학술원'은 종교적 건축학적 생태학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 곳이다.

이곳은 1950년대 대전을 비롯한 충남 지역에서 활동하던 선교사들이 거주하기 위해 1955∼58년에 건축한 선교사 사택들이 군락을 이뤘던 마을로 '오정골 선교사촌'으로 불렸다.

당시 오정골에는 1만9000평에 달하는 선교사촌이 조성돼 있었다. 본래 침례교 선교사들이 살던 주거지역과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이 교육사업을 하던 지역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전자는 오래 전에 침례교신학대학의 소유로 넘어가고 그 후 신학대학이 유성으로 이전하면서 건설회사에 매각돼 건물과 수령 40년이 넘던 고목들이 모두 사라진 상태이다. 지금은 6000여평에 달하는 선교사 주거지만 남아있다.

현재에는 1955년에 지어진 '인돈 학술원'을 주축으로 7개 동의 건물이 하나의 마을처럼 구성돼 있다. 중앙에는 채소밭이 있고 이를 중심으로 입구 쪽으로 순수 한옥으로 지어진 관리동 1채와 동?서양 절충식으로 되어 있는 3개 동의 건물 및 양옥 3채가 ㄷ자형으로 자리잡고 있다.

양옥은 서양 건축양식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근대 건축양식을 띠고 있다. 특히 '인돈 학술원'은 1950년대의 시대상을 담고 있다. 한남대 설립자인 린튼(William Alderman Linton?한국명 인돈)의 부인이 직접 설계하고 한국인 목수가 시공한 것으로 건축사적으로 소중한 자료로 주목받아왔다. 붉은 벽돌에 한식 지붕을 올린 점이나 진입로가 현관으로 모인 점 등 서양식 건축에 한국 건축양식을 도입했다.

한남대는 선교사들이 떠난 후인 1994년,사택 일부에 인돈을 기념하는 인돈학술원을 개원해 유물을 보관하고 있다. 건물내에는 당시 선교사들의 생활도구와 각종 서적 편지 그림 도자기 등이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어 사료로도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한때 이 아름다운 터전이 소멸될 위기에 처했었다. 선교사들이 미국으로 돌아갈 때 2개 대학(한남대와 대전신학교)에 토지를 균등하게 분할,무상으로 증여하면서 이곳의 보전이 점차 어렵게 된 것. 토지를 매입한 건설회사는 3121평에 달하는 이곳에 9층 규모의 원룸 아파트 2개 동을 지으려고 했다. 그러나 지역의 귀중한 자연·문화유산이 사라지는 데 대한 위기의식이 지역의 일부 지식인들 사이에 확산되면서 이곳을 지켜야 한다는 공감대가 빠르게 형성돼 갔다.

언론인 법조인 종교인 기업인 시민운동가 일반인 등 약 50여명의 지역인을 발기인으로 하여 '오정골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약칭 오시모)이 1999년에 결성돼 '땅 1평 사기 운동'을 벌였다. 결국 한남대가 원룸 아파트 건설 부지를 매입,오정골 선교사촌은 개발로 인한 멸실의 위기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됐다.

이를 계기로 당시 최초(1955년)에 지어졌던 북측의 3개 동이 2001년 6월 대전시로부터 문화재(문화재자료 제44호)로 지정되어 영구 보존되고 있으며 건축 문화의 해인 1999년에는 '좋은 건축물 40선'에 인돈학술원이 선정되기도 했다.

인돈학술원 주변은 40∼50년생 아름드리 나무들이 빽빽히 들어서 있고 솔부엉이 새매 소쩍새 등 52종의 조류가 살고 있을 정도로 보존가치가 높은 도심 속의 '소생물권'(Biotope) 지역이다. 이를 보전하기 위한 노력으로 한남대는 지난해 4월 이상윤 총장을 비롯한 50여명의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오정골 선교사촌' 일대에 오동나무 500여 그루를 심기도 했다.

대전=이지현 기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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