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맥산맥'의 작가 조정래씨 사부곡

2006. 5. 8.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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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시인 조종현씨 탄생 100주년 맞아 회고글

(서울=연합뉴스) 정천기 기자 = 대하소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을 통해 굴곡많은 우리 현대사를 웅장한 벽화로 그려낸 중진 작가 조정래(63) 씨가 작고한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글을 발표했다.

민족문학작가회의(이사장 정희성)와 대산문화재단(이사장 신창재)이 12일 공동개최하는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의 부대행사인 '문학의 밤'에서 낭독할 예정인 조씨의 '두 가지 화두'는 승려이자 시조시인이었던 부친 조종현(1906-1990)을 회고하며 쓴 글이다.

"아버지의 인생은 열여섯 나이로 출가하면서 시작되었다"로 시작하는 이 글은 가난한 양반가의 장남으로 태어난 부친이 신식 교육을 받기 위해 선암사에 갔다가 스물네 살에 법사가 된 사연, 일본 유학에서 돌아온 뒤 만해 한용운을 만나 독립운동을 펼친 사연 등을 담고 있다.

조씨의 부친은 1927년 조선일보로 등단한 이후 주로 '불교'지를 통해 시조를 발표했으며 '그리운 정' '파고다의 열원' '어머니 무덤가에' '의상대 해돋이' 등 다수 작품을 남겼다. 이태극과 '시조문학'을 발간했고 교육자로도 활동하며 우석중고교 교장으로 정년 퇴직했다.

조씨의 부친은 일제시대 만해 한용운을 중심으로 구성된 '만당(卍黨)'이라는 비밀독립운동 단체의 재무위원으로 활약했고, 만해가 서거했을 때 총독부가 공개 장례식을 엄금했는데도 장례를 치른 사람 중 한 명이었다. 해방 후에는 순천 선암사의 부주지로 활동하며 ▲절은 사회에 봉사해야 한다 ▲모든 사답(寺畓)은 소작인들에게 무상분배해야 한다 ▲승려들은 자질향상을 위해 공부에 매진해야 한다는 현수막을 절 앞에 내걸기도 했다.

절에서 펼친 그의 혁신운동은 이른바 '여순반란사건'을 전후해 그를 수난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이런 사연은 소설 '태백산맥'에서 법일 스님을 통해서 가감 없이 그려졌다. 여순사건에 휘말려 죽을 고비를 몇 차례 넘긴 다음 조씨의 부친은 절에서 쫓겨났다. 이후 6ㆍ25가 끝나자 고등학교 국어교사가 되어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학교에서 정년퇴임한 뒤에는 기다렸다는 듯이 절 생활로 돌아가 관음종 종정으로 세상을 떠나갔다고 조씨는 회고했다.

조씨는 "아버지는 평생의 화두로 한 손에 불교를, 다른 손에 문학을 들고 살았다"면서 "내가 문학을 하겠다고 국문과를 선택했을 때 아버지는 침묵으로 허락하셨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내가 시를 쓰기를 은근히 바랐고 나도 시인이 되고 싶었지만 능력이 모자라 1년 시를 써보다가 소설로 미끄러졌다"고 덧붙였다.

조씨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어머니로부터 "니 '태백산맥' 보시고 자식 키운 보람 있다고 하셨니라"고 했다는 아버지의 말을 기억한 뒤 "나는 그때서야 문학을 하게 된 것에 안도했지만 불효를 뼈저리게 앓았다"고 적었다. 이어 "왜냐하면 아버지는 빼빼 마른 몸으로 평생 가난에 시달리며 고생했고, 뜻밖에 책이 잘 팔려 용돈을 좀 넉넉하게 드리고 싶은데 아버지는 이미 안 계셨던 것이다"라고 안타까워 했다.

한편 조씨는 "절에서 태어났다는 나의 약력을 보고 많은 독자들이 의아해 하고 궁금해 한다"며 자신의 출생 이력을 다음과 같이 적었다.

"그건(내가 절에서 태어난 것은) 아버지가 땡초였기 때문이 아니다. 일본은 식민지 조선에서 종교마저도 황국화했다. 승려들을 일본식으로 결혼을 시켜 대처승으로 만든 것이다. 아버지는 그 포망에 걸려 스물여덟 나이에 선암사에서 결혼식을 올린 최초의 승려가 되어야 했다. 나는 그렇게 태어났고, 일본의 은혜에 감사하듯 '아리랑'을 썼다. 인생살이는 이렇듯 얄굿고, 미묘하다."

조씨의 아버지에 대한 회고의 글은 문학교양지 '대산문화' 여름호에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소설가 유진오, 최정희의 자제들이 쓴 글과 함께 실릴 예정이다.

ckch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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