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한겨레

[어린이에게 책은 미래다] ④ 아가에게 책을 주자

입력 2006. 05. 18. 22:06 수정 2006. 05. 18. 22:06

기사 도구 모음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한겨레] 지자체·보건소 등 "책을 장난감으로"

북스타트운동 확산 정서적 교감 쑥쑥

집중력 언어력은 덤

지난 4일 인천시 연수구보건소. 북스타트 자원봉사자 강영숙(45·여)씨가 생후 6개월 된 아기에게 비형 간염 예방접종을 위해 이곳을 찾은 박진희(20·여·가명)씨를 앞에 두고 아기에게 책 읽어주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아기는 6개월부터 소리에 민감해지는데 엄마와 주위 사람이 함께 책을 읽어주고 장난감처럼 갖고 놀 수 있게 해주면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자라납니다."

강씨가 책을 넘기며 설명하자 박씨 품에 안긴 아기가 손을 뻗어 책을 만졌다. 그림이 눈앞에 펼쳐지자 두 눈을 똥그랗게 뜨고 책을 바라본다.

설명이 끝난 뒤 강씨는 작은 가방을 건넸다. '북키트'로 불리는 가방에는 그림책 두 권과 부모를 위한 북스타트 가이드북, 추천도서 목록, 연수구 도서관 프로그램 안내 책자, 손수건 등이 들어 있다.

매일 오전 보건소에서 진행되는 이 행사는 북스타트한국위원회(이하 위원회)가 '아가에게 책을'을 구호로 내걸고 2003년부터 시작한 북스타트 프로그램이다. 이는 영국에서 시작된 운동인데, 우리나라는 서울 중랑구보건소의 시범사업을 시작으로 전국 23개 지역에서 진행중이다. 지난해 말까지 2만6천여명의 아기들이 참여했다.

북스타트에는 지방자치단체, 기업, 도서관, 시민단체 등이 함께 참여한다. 북키트 제작에 드는 비용은 해당 지자체나 기업 등이 나눠 맡는다. 연수구처럼 지자체가 모두 지원하는 곳도 있다. 도서관, 보건소, 기초자치단체 등은 북키트 보급과 후속 프로그램을 맡고, 시민단체와 자원봉사자들이 이를 돕는다.

북스타트를 처음 접한 이들은 돌도 되지 않은 아기에게 책을 읽어주자는 말에 고개를 갸우뚱한다. 이날 연수도서관의 스토리텔링 프로그램에 참여한 신현미(38·여)씨도 처음에는 그랬다. 하지만 놀라운 체험이 기다리고 있었다. 2004년 북스타트에 참여한 신씨는 책을 읽어주기 시작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가 책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두 달쯤 됐나요. 아이가 책을 골라잡아 읽어달라고 하기 시작했어요. 북스타트에서 받은 〈까꿍놀이〉와 〈얌냠 짭짭〉은 숫제 달달 욀 정도예요."

더욱 놀라운 사실은 북스타트에 참여한 아이들의 집중력, 언어습득능력 등이 다른 아이들에 비해 빠르다는 점이다. 영국에서 북스타트에 참여한 뒤 5년이 지난 아이를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참여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에 비해 집중력, 읽기, 수리 등에서 우수한 능력을 보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북스타트는 훌륭한 유아 교육 프로그램으로도 평가받고 있다. 책 읽어주기가 지적 성장뿐만 아니라 정서적 안정에도 크게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덕성여대 유아교육과 이영자 교수는 "부모의 품 안에서 이야기를 들으며 자란 아이는 정서적으로 안정이 될 뿐만 아니라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자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북스타트는 빠른 속도로 퍼져가고 있다. 영국은 65만명 신생아 대부분이 참여하고 있으며 일본은 2000년에 이를 도입해 현재 2213개 시·구·정·촌 가운데 630개 지역에서 시행되고 있다. 타이,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칠레, 남아공, 폴란드, 이탈리아 등도 이름은 다르지만 북스타트와 비슷한 형태의 프로그램이 있다.

북스타트한국위원회 도정일 대표는 "북스타트는 조기교육이 아니라 책을 장난감으로 주는 것"이라며 "가족들이 책을 매개로 아가와 정서적 교감을 나누도록 도와주는 양육 프로그램이자 소외된 아기들을 위한 교육복지 안전망"이라고 말했다.

권복기 기자 bokkie@hani.co.kr

'보고 또 보고' 아이에 가장 좋은 선물

늦둥이 키우는 안경화씨보건소서 권유받고 시작"아이 키우기도 배웠어요"

"북스타트가 아이에게 가장 좋은 선물이 됐다고 생각해요."

진해시 충의동에 사는 안경화(45·여)씨는 늦둥이 정호를 볼 때마다 신기한 생각이 든다. 태어난 지 16개월째인 정호는 책을 가장 좋아한다. 장난감처럼 갖고 놀고 틈만 나면 책을 들고 걸어와 읽어달라고 보챈다.

7일 안씨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정호는 책꽂이에서 책을 들고 와 안씨 앞에 퍼더버리고 앉았다. 보건소에서 받은 그림책 〈누구야〉다.

"정호가 좋아하는 책이에요. 하루에도 10번 이상 읽어줘 너덜너덜해졌어요."

여자 아이가 성장이 빠르다지만 정호는 또래 여자 아이를 가진 부모들이 시샘을 낼 정도다. 15개월부터 부모 말을 다 알아듣고 지금은 심부름도 곧잘 한다. 말도 빨라 발, 신발, 신, 찌찌 등 쓰는 단어도 많다.

"얼마 전 학습지 회사에서 찾아와 발달 상태를 테스트했더니 인지 능력이나 운동 능력 등이 또래 아이에 비해 무척 빠르다고 하더군요."

대개 둘째가 맏이보다 성장이 빠르다지만 정호는 사정이 다르다. 형 대규는 지금 고3이다. 형과 놀면서 배울 기회도 없었다. 안씨는 정호의 빠른 성장이 책 읽어주기의 효과라고 믿는다.

안씨는 북스타트를 통해 아이 키우기도 배웠다. 두 달 동안 매주 열리는 후속 프로그램을 통해 아기 마사지, 베이비 사인, 동요놀이, 동화구연 등을 익혔다. "어디서도 아기 키우기를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북스타트에서 정말 많이 배웠어요. 더구나 공짜로 가르쳐 주잖아요."

안씨가 북스타트를 알게 된 것은 진해보건소를 통해서였다. 처음에는 아기가 무슨 책을 읽느냐는 생각이 들었지만 돈 안드는 일이니 해보자는 생각에 참여했다. 지금은 북스타트를 권하는 전도사가 됐다.

"엄마들에게 꼭 참여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돌이 지난 아이를 위한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진해/권복기 기자

일찍 접할수록 수리·말하기·듣기 뛰어나

북스타트 효과 살펴보니

영국은 1992년 생후 9개월 된 영아 300명에게 북스타트를 시작하면서 그 효과를 알아보기 위해 연구 작업도 함께 벌였다. 버밍햄 대학 매기 무어와 배리 웨이드 교수는 북스타트에 참여한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에 비해 책에 대한 관심도와 책에 대한 반응, 질문 등에서 크게 차이를 보이는 것을 확인했다.(그림)

나아가 북스타트에 참여한 아이들은 수리, 언어, 글쓰기 등 학습 능력도 훨씬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수리 분야에서는 북스타트 참여 아이들이 비교 집단에 비해 월등한 능력을 보였다. 북스타트 아이들은 4명이 최고점인 3점을 받은 데 비해 비교집단에서는 1명도 없었다. 2점을 받은 아이도 북스타트 16명으로 비교 집단 10명에 비해 훨씬 많았다.

북스타트에 참여한 아이들은 말하기와 듣기에서 비교 집단에 비해 월등한 능력을 보였다. 최고점인 3점을 받은 아이들 수는 8명으로 같았지만 2점을 받은 아이들은 15명과 8명으로 큰 차이를 보였다. 특히 북스타트 아동은 0점을 받은 아이가 한명도 없는 반면, 비교 집단은 4명이나 됐다. 쓰기에서도 최고점인 3점을 받은 아이가 6명과 0명, 2점을 받은 아이도 7명과 4명으로 차이가 났다.

우리나라 연구 결과도 북스타트의 '효과'를 입증해준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2003년 4월 북스타트 시범 사업과 함께 시작한 연구를 통해 북스타트 시작 뒤 3차례에 걸쳐 조사한 결과 참여 아기들이 인지와 언어 발달이 빠르고 사회성도 높으며 그 차이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권복기 기자

<< 온라인미디어의 새로운 시작. 인터넷한겨레가 바꿔갑니다. >>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포토&TV

    이 시각 추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