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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 초산테러·DJ 납치 등 독재시절 야당 대상 빈번

입력 2006. 05. 21. 22:36 수정 2006. 05. 21.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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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피습 사건처럼, 주요 정치인을 대상으로 한 '테러'는 정치적 혼란기인 1945년 해방 직후부터 계속됐다. 해방 공간에서는 주로 극심한 좌우 이념 대립 속에서 테러가 발생했다. 이와 달리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는 정권 차원의 야당 탄압 의혹이 제기되는 사건들이 많았으나, 대부분 범인이 붙잡히지 않았다.

거물 정치인에 대한 테러의 시초로 꼽히는 것은 동아일보사 사장을 지낸 우파 정치인 송진우가 1945년 12월 서울 종로구 원서동 자택에서 좌익계 청년 한현우에게 암살된 사건이다. 이어 좌우합작을 추진하던 근로인민당 당수 여운형이 1947년 7월 서울 혜화동로터리에서 한지근이 쏜 권총에 맞아 숨졌다. 1949년 6월에는 대표적 독립운동가인 김구가 숙소 겸 집무실로 쓰던 경교장에서 현역 육군 소위 안두희에 의해 저격돼 세상을 떠났다.

박정희 정권 시절에는 주로 야당 정치인들이 테러 대상이 됐다. 1969년 6월 김영삼 당시 신민당 원내총무의 자택 부근에서 괴한들이 매복하고 있다가 김 총무의 승용차 창문에 초산을 뿌리는 사건이 벌어졌으나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1973년 8월에는 일본에서 민주화 활동을 하던 야당 지도자 김대중씨가 도쿄 팔레스호텔에서 납치된 뒤 한국으로 끌려왔다.(윗 사진) 김대중 납치사건은 한국과 일본은 물론, 미국까지 개입하는 외교 문제로 비화했다. 이 사건은 당시 중앙정보부의 소행으로 밝혀졌으나, 납치의 최종 배후가 누구인지는 아직도 명백히 확인되지 않았다.

1974년 8·15 기념식장에서의 박정희 대통령 부인 육영수씨 저격 사건이나 1979년 10·26 사건도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테러 사건으로 꼽힌다.

그 뒤 최근까지 정치인의 목숨을 위협하는 수준의 테러는 한동안 없었다. 그 대신, '혈기' 넘치는 대학생들이나 시민들한테 정치인들이 봉변을 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1991년 6월 정원식 국무총리 서리는 취임을 앞두고 한국외국어대에서 마지막 강의를 마치고 나오다 학생들이 던진 달걀과 밀가루를 뒤집어썼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퇴임 뒤 1999년 6월 일본 방문길에 나섰다가 김포공항에서 71살 노인 박의정씨로부터 붉은색 유성 페인트가 들어있는 달걀을 얼굴에 맞는 봉변을 당했다.

황준범 기자 jay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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