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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한기택, 목숨걸고 재판한 당신이 그립습니다"

입력 2006. 07. 20. 18:53 수정 2006. 07. 20.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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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하리만치 성실하면서도 끊임없이 자신의 부족함을 질책했던 고 한기택 판사가 가족과 함께 한 휴가여행에서 심장마비로 갑자기 유명을 달리한 지 1년이 흘렀다. 당시 그의 나이 46세.

현직 고법부장판사의 금품 수수 의혹이 불거지고 젊은 판사들까지 지역유지들로부터 술접대를 받는 등 사법부의 도덕적 불감증이 사회문제화되고 있는 지금 평생을 '법관의 표상'으로 살다간 그의 죽음은 더욱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판사 한기택'은 법원에서만 존재하는 이름이었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 누구보다 열심히 성당에 다녔지만 성당 사람들도 그가 판사인지 알지 못했다.

한판사는 개인적으로 법률상담을 결코 하지 않았다고 부인 이상연씨는 기억한다. 아는 사람의 갑작스러운 전화를 받고 얼떨결에 몇마디 해줬다가 지인이 감사의 표시로 들고온 델몬트 주스 2병을 승강이끝에 돌려보낼 정도로 자신에게 엄격했다.

그는 혹시 누군가 '당신이 과연 남을 재판할 자격이 있느냐'고 물어오지 않을까 늘 두려워했다.

2005년 2월 차관급인 고법 부장판사로 승진해 받은 관용차를 부인과 자녀들에게 단 '1초'도 태워주지 않은 것도 그의 원칙주의적인 면모를 잘 드러내는 대목이다.

그는 누구를 비판하거나 비난하기보다 자성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변화시키며 세상의 불합리와 싸우는 스타일이었다.

김용철 대법원장의 사퇴를 이끌어낸 1988년 2차 사법파동때 400여명의 판사 서명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도 '온건'과 '자성'으로 어우러진 그의 성명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판결에 있어서는 철두철미했다. 10분 단위로 재판을 진행했고 사건 당사자들이 다 출석해도 정해진 시간 전에 선고를 하는 법이 없었다. 판결문 작성과 재판은 그의 표현대로 '목숨을 걸고' 진행했다.

그의 판결은 사회 소수자들이 받는 차별과 권익 보호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는 평가다. 반면 고위공무원 등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한 양형은 가차없었다.

그를 먼저 떠나보낸 '한기택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사후 1주기를 맞아 추모집 '판사 한기택'을 펴냈다. 책에는 고인이 중학교 시절부터 써 왔다는 일기, 아내에게 보냈던 편지와 함께 박시환 대법관과 이광범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연구실장 등의 추모글이 실렸다.

〈권재현기자 jaynew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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