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심층탐구> 해적의 실체를 벗긴다

입력 2006.08.02. 08:33 수정 2006.08.02.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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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600여년부터 기록에 나타나는 해적

현대판 해적은 말라카해협, 소말리아가 주 활동무대

해적 퇴치 국제공조, 첨단장비도 등장

(서울=연합뉴스) 이선근 편집위원 = 소말리아 해상에서 해적에 피랍된 지 넉 달 만에 풀려난 동원호가 케냐를 향해 항해 중이다. 협상과정에 우여곡절도 많았고, 선원 25명의 고초도 심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무엇보다 선원 전원을 무사히 인도받게 된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해적들의 관심이 선박 적재물에서 선원들의 몸값으로 옮겨지면서 그동안 인명피해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원호의 피랍과 석방을 계기로 21세기에도 지구촌 곳곳 해상에서 준동하고 있는 `유구한 역사를 가진 직업' 해적에 대해 알아보자.

◇ 해적의 오랜 역사 = 해적이 기록에 나타난 것은 기원전부터다. 해상교통의 역사가 곧 해적의 역사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기원전 600여년부터 그리스에서는 해적질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사모스섬의 맹주 얘기가 보인다. 로마 초기의 영웅 카이사르도 한때 해적의 인질이 된 적이 있다. 카이사르는 에게해를 지나던 중 해적들에게 잡혀 거액의 몸값을 지불한 뒤 풀려나자 즉각 군대를 동원해 이들을 토벌한 기록이 나온다.

또 바이킹은 8-10세기 영국 해협과 유럽 해안지방에서는 공포의 대상이었고, 북쪽 발트해 지역에는 슬라브 해적이 해상을 장악했다.

`무법'의 대명사처럼 되어 있는 해적이 항상 국가나 지방권력과 대치관계에 있었던 것만은 아니다.

신대륙과 식민지를 놓고 유럽 열강이 각축을 벌이던 16세기 당시 영국과 스페인은 적대국의 선박을 약탈해도 좋다는 국왕의 특허장을 자국의 선박들에게 발부했다.

이에따라 군함이 아닌 민간선박들에 의한 해적행위가 공공연하게 자행됐고, 1588년 영국이 스페인 무적함대를 격파하는 과정에서 큰 공을 세운 것도 이들 민간 약탈선 출신들이 적지 않았다.

이어 17세기 유럽 해역이 안정되자 해적들은 공권력 공백해역이었던 신대륙으로 활동 무대를 옮겼는데 요즘 개봉된 해적영화들의 무대이기도 한 카리브해가 주요 해적 출몰해역이었다.

◇ `해골깃발'은 해적의 전유물? = 요즘 해적들은 `해골 깃발'을 배에 달고 다니지 않는다. 국제적으로 해적퇴치를 위한 공조가 강화되면서 주요 해역에서 검문활동이 강화되고 있기 때문에 최대한 어선 등 민간선박의 모습을 하고 단속기관의 눈에 띄지 않도록 조심하기 때문이다.

해적의 전유물처럼 돼 있는 해골깃발의 유래는 18세기 초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7세기 카리브해에서는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등 다양한 국적의 해적선들이 출몰해 당시 신대륙에 많은 식민지를 두고 있던 스페인 선박들을 괴롭혔는데 여기 가세한 것이 현지 인디오들이었다. 이들은 스페인의 점령으로 생계의 터전을 잃자 바다로 진출한 것이었다.

이들 인디오 해적 중 일부가 교차된 사람의 뼈 모양 위에 해골이 놓여 있는 툴텍족의 신전 문양을 모방해 깃발로 내걸었고, 그 기분나쁜 느낌을 주는 깃발은 약탈대상 선박들에게 극심한 공포감을 조성해 선원들을 당황케함으로써 상당한 효과를 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때문에 해골 깃발이 빠르게 번져나갔고, 해적선의 상징처럼 됐다는 것이다.

◇ 21세기 해적들의 유형 = 요즘 국제법상으로 해적 행위란 국가기관 등의 지휘없이 사적인 목적으로 선박을 약탈하고 폭력행위를 저질러 해상 교통을 위험하게 하는 것으로 규정된다.

해적들은 선박을 습격하거나 도주하기에 편리하고 약탈물을 처분하기도 쉬운 해협지대나 항구가 많은 섬 지방을 주요 활동거점으로 하고 있다.

이에따라 해적은 국적불문 `공적'으로 규정돼 어느 나라든지 나포해 자국의 국내법에 따라 처벌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국가 공권력의 감시망이 촘촘해진 요즘은 난파된 것처럼 돛을 내리고 있다가 약탈대상 선박이 접근하면 갑자기 해적선으로 돌변하는 그런 영화의 한 장면같은 해적활동은 없다.

상당부분은 내전이나 단속력 부족으로 국가공권력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작은 배로 소규모 약탈을 하는 `생계형'이다. 경계가 소홀한 저속의 소형 화물선이나 어선들을 상대로 해안 마을 주민들이 작은 배로 습격, 적재물이나 선원들의 금품을 털어 달아나는 것이 그 전형적 유형이다.

그러나 그중에는 자동소총과 로켓발사기 등으로 중무장한 채 선원들의 몸값을 뜯어내는 테러형이나 아예 선박을 통째로 빼앗아 새로 페인트칠을 하고 선명도 바꿔 등록하는 기업형 해적도 드물지 않다.

이번에 소말리아 해상에서 117일 간이나 억류됐다 풀려난 동원호나 1998년 9월 말라카 해협에서 실종됐다 3개월만에 다른 배로 선명이 바뀐 채 발견됐던 화물선 텐유호 사건이 그 대표적 사례다.

특히 최근들어 국제사회의 주목을 끌고있는 것은 테러형 해적행위다. 테러를 목적으로 초대형 유조선을 공격해 파괴하거나 많은 인원이 승선한 대형 호화유람선을 납치할 경우 환경, 경제, 정치적으로 그 파장은 심대할 전망이다.

◇ 해적이 자주 출몰하는 위험해역은 = 해적영화 속의 `카리브해'는 요즘으로 치면 동원호가 납치됐던 소말리아 주변해역이나 인도네시아 말라카 해협 같은 곳이다.

그만큼 이 해역들은 해적들에 의한 피해사례가 집중되어 있는 공포의 바다다.

말레이시아 서부와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 사이에 위치한 말라카 해협은 인도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해상교통의 요충이며 `해적들의 천국'이기도 하다. 길이가 약 900km, 폭이 평균 65-249km인 말라카 해협은 수심이 평균 30m가 안될 정도로 얕고 좁은 곳은 육지 사이의 거리가 수km에 불과할 정도여서 해적들에게는 천혜의 해역인 셈이다.

이 곳은 매년 5만 척 이상의 화물선이 통과하고, 우리나라 선박도 연간 2천여 척이 오간다. 우리 수입 원유의 99%, 해상 물동량의 3분의1도 이 해역을 통과한다.

지난 10년 간 전세계에서 집계된 3천여건의 해적 사건 중 절반 가량이 말라카해협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 해역에서 발생한 사실로만 봐도 이 지역이 선원들에게 공포의 해역이 되고 있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지난달 해양경찰청이 말레이시아 왕립해양경찰과 해적진압 합동 해상훈련을 실시한 해역도 바로 페낭 북쪽의 말라카해역이다.

최근에는 미 해군까지 해적단속에 나서고 있으나 수로가 워낙 긴 데다 해안지역 치안이 부실해 해적 출몰을 차단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말라카 해협 외에도 작년 자바해와 롬복 해협도 화물선 통행시 각별히 경계가 필요한 위험 해역으로 선포했다.

소말리아 등 아프리카 동부해안은 내전으로 해상치안이 사실상 공백상태에 빠져들면서 무장세력들이 자금 조달 등의 목적으로 약탈에 나서면서 위험해역으로 부상한 곳.

소말리아 해역은 작년 3월 이래 최소 23건 이상의 해적 습격사건이 보고됐으며 유엔의 구호선박까지 피랍될 정도로 해적이 들끓고 있다.

이밖에 인도, 방글라데시, 베트남 주변 해역과 나이지리아, 가이아나, 에콰도르 해상 및 최근에는 이라크 주변해역도 해적사건이 자주 보고되는 곳들이다.

◇ 대표적 피해사례 = 이번 동원호 사건말고도 한국선박이나 한국인 선원이 탑승한 선박이 해적들의 습격대상이 된 경우는 적지 않다.

지난 2000년 2월 한국인 8명 등 선원 18명을 태운 야자유 운반선 `글로벌 마스'호가 태국 근해에서 해적들에게 붙잡혔다 풀려난 사건이 있었다. 그에 앞서 1991년 3월에는 한국인 선원 24명이 탄 파나마 선적 참치잡이 어선이 베트남 영해 인근 해역에서 무장괴한에 의해 납치됐다가 석방되기도 했다.

또 1998년 9월에는 화물선 텐유호(2천660t급)가 인도네시아에서 알루미늄괴 등을 싣고 인천항으로 항해 중 말라카 해협에서 실종됐다. 텐유호는 석 달 후인 12월 `산에이-1호'로 선명이 바뀐 채 중국 장쑤(江蘇)성의 한 항구에서 잘견됐으나 한국인 기관장 등 선원 14명의 생사는 지금도 불명이다.

일본의 경우 작년 3월 말라카 해협에서 예인선 이다텐호(498t)가 해적의 습격을받아 일본인 선장과 기관장, 필리핀인 3등기관사가 납치됐다 거액의 몸값을 물고 풀려나는 사건이 발생했고, 특히1999년 알루미늄괴를 싣고 가던 화물선 알론드라 레인보호 피습사건은 일본이 해적단속을 위한 국제공조기구 마련에 적극 나서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작년 6월엔 소말리아 해역에서 유엔세계식량계획(WFP)의 구호식량 수송선 셈로호가 해적들에게 붙잡혔다 석 달여 만에 풀려났고, 10월에는 같은 해역에서 화물선 토겔로호가 납치됐다.

또 11월에는 소말리아 해안에서 110여km 떨어진 해역에서 호화유람선 시본 스피리트호가 로켓발사기까지 갖춘 중무장 해적들의 공격을 받았으나 선원들의 공세적 대응으로 다행히 경미한 피해만을 입고 현장을 빠져나온 사건도 있었다.

◇ 해적퇴치 첨단 무기 = 해적 출몰이 빈번해지면서 선박들의 자구노력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 치고빠지는 식의 공격에 능숙한 해적들의 공격을 받을 경우 국가기관의 보호를 받기 어려운 만큼 스스로 방어능력을 확보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작년 11월 소말리아 해역에서 중무장한 해적들의 공격을 받았으나 별다른 피해없이 현장을 빠져나오는데 성공한 1만t급 호화유람선 시본 스피리트호의 사례다.

시본 스피리트호는 해적 10여 명이 나눠탄 중무장 고속 고무보트 두 척이 접근해오자 전속력으로 지그재그 항진, 해적들이 선체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면서 첨단 음향무기를 동원해 이들을 쫓아냈다.

시본 스피리트호가 사용한 무기는 300m 밖에서도 청각에 영구 손상을 줄 수 있는 `장거리 음향무기(LARD)'. 2000년 예멘에서 미 해군 구축함 콜호가 알 카에다의 공격을 받은 것을 계기로 제작된 이 비살상무기는 무려 150데시벨에 이르는 압축음파를 발사해 적군이나 군중들을 무력화시킨다. 일종의 폭음발사기인 셈이다. 길이 84㎝에 무게 20㎏으로 개당 가격이 3만 달러인 이 음향무기는 앞으로 위험해역을 지나는 유람선의 필수장비가 될 전망이다.

해상범죄 감시기구인 국제해사국(IMB)도 작년말 해적퇴치를 위한 선박들의 자체방어조치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첨단장비들을 제시했다. 그중에는 해적 출몰지역 상공을 순찰하는 무인항공기와 9천 볼트의 전기가 흘러 해적들의 승선을 막는 전기 난간, 범행 후 달아나는 해적선을 위성으로 뒤쫓아 거점을 찾아내는 추적장치 등이 포함돼 있다.

예정된 항로를 따라 자동으로 항해하면서 선박보호 임무를 수행하는 무인 로봇순찰선도 민간업체가 선보였다. 머린 로보틱스 인터내셔널사가 `고스트가드'란 이름으로 시제품을 선보인 이 무인순찰선은 육상에서 관제사가 순찰선에 장착된 비디오와 마이크, 확성기 등을 통해 직접 현장영상을 보면서 순찰선 부근을 지나는 선박의 승무원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고 뭔가 의심스러운 것이 발견되면 해군 경비함에 연락, 현장에 출동시킬 수 있다.

◇ 구체화되고 있는 국제공조 = 우리나라는 지난 4월 싱가포르에서 `아시아에서의 해적행위 및 선박에 대한 무장강도 행위 퇴치에 관한 지역협력 협정'(ReCCAP)에 서명했다.

우리나라가 해적관련 협정에 가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그만큼 동남아 해역에서의 해적위 위협이 증가하고 있는 데 따른 것.

협정 서명국은 브루나이, 캄보디아, 인도, 일본, 라오스, 미얀마, 필리핀, 싱가포르, 스리랑카, 태국과 우리나라 등 11개국.

앞으로 비준국 요건 충족과 함께 협정이 공식 발효되면 협정 가입국들 간 정보공 유와 협력증진을 위한 `정보공유센터'가 싱가포르에서 가동에 들어가게 된다.

해적 행위에 이용된 선박이나 항공기의 추적 및 나포, 피해선박 탐지를 위한 가입국간 협력과 해적행위 등에 연루된 범죄인 인도 등 사법공조를 위한 협력체제도 구축될 예정이다.

또 국제해사기구(IMO)는 작년 9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30개국이 참가한 가운데 `말라카해협의 안전증진에 관한 국제회의'를 개최해 말라카 해협의 안전강화를 위한 협력 결의문을 채택하고 해적퇴치 방안 마련을 위한 회동의 정례화 및 상호 정보교환 등에 합의했다.

이와함께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싱가포르 등 4개국은 말라카 해협에서 합동 공중정찰에 나섰다. 이들 4개국은 `하늘의 눈'이라 명명된 공중 정찰활동을 위해 각각 2대의 항공기를 보내 해적의 출몰 여부를 감시하기로 했다.

그러나 국제공조가 순조로운 것만은 아니다. 여러나라의 국경이 맞닿은 말라카해협이 해적들의 주요 활동무대인데서 엿볼 수 있듯이 해적단속 활동은 영해침범 등 미묘한 주권문제와도 연결될 수 있기 대문이다. 이때문에 해적 출몰해역 국가들간의 합의로 비정부 민간단속기구에 해적퇴치 임무를 맡기자는 제안도 나오고 있다.

올해초 미국이 인도양 해역에서 구축함을 동원해 해적 단속활동에 나서자 주변국들이 별로 탐탁지 않은 반응을 내보인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고 있다. 해적 단속은 군이 개입할 대테러전 차원의 문제라기보다는 각국의 사법당국의 임무라는 시각이 강한 것이다.

sunn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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