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제사는 지내지 마라"

2006. 9. 1.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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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박창욱기자]'사랑하는 처와 자식들에게.

나는 내 평생을 행복하게 살았다고 생각한다. 하고 싶은 일도 하였고 물질적으로도 그만하면 모자람없이 지낼만 했다. 아이들도 건강하게 잘 키웠고 교육도 잘 시켰다고 생각한다. 이만하면 수지맞는 인생을 산 것이다.

그런데 내가 행복하게 산 것은 다른 사람들의 도움도 컸다고 생각된다. 이 세상에는 불행한 사람도 많다. 마음은 있어도 그들에게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 불행한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된다면 내 몸 하나 바치는 것은 아깝지 않다.

우리나라는 시신을 병원에 기부하는 사람이 적어서 젊은 의학도들이 해부학 공부에 큰 지장을 받고 있다고 한다. 이런 현상이 오래가면 의사들의 실력 저하로 환자의 생명을 구하기가 더 어려워 질 것이다.

기왕에 내 장기를 기증하는 마당에 내 시신도 의학도들의 실험공부를 위하여 대학병원에 기증하기 바란다. 나중에 화장을 하고 유골을 내가 좋아하는 동해 바다에 뿌려주기 바란다. 평생을 바다와 함께 한 나로서는 바다로 돌아가는 것이 나의 가장 큰 기쁨이다.

일반적인 제사는 지내지 말아라. 어느 집이나 맏며느리 되는 사람의 노고가 너무 크다. 기일 아침에 각자의 집에서 내 사진과 꽃 한 송이 꽂아놓고 묵념추도로 대신하기 바란다. 그리고 저녁에 음식점에 모여 형제간의 우의를 다지는 기회로 삼아라. 식비는 돌아가면서 내도록 하여라. 그리고 이러한 추도도 너희들 일대(一代)로 끝내기를 바란다

1998.8.25 아버지로부터'

지난 2월 한국CEO연구포럼과 머니투데이가 개최한 `제1회 한국CEO 그랑프리'에서 '아름다운 CEO상'을 수상한 박종규 KSS해운 고문(전 규제개혁위원장).

그가 31일 한국CEO연구포럼 초청으로 태평로클럽에서 가진 특별강연회에서 자신의 개인적인 내용을 담은 유언장을 공개했다.

박 고문은 이 강연에서 지난 30여년간 깨끗한 기업인으로 남기 위해 애써왔던 소회와 고민, 그리고 사회에 대한 애정어린 쓴 소리를 풀어놓았다.

2005년 초, 박종규 KSS해운 고문은 위암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수술을 받다 그대로 숨질 수도 있다고 했다. 그래도 그는 두렵지 않았다. 다만 회사가 걱정이었다. 박 고문은 수술 전날, 병원을 몰래 빠져 나왔다. 사무실에 홀로 앉았다.

"대부분 기업은 오너가 죽으면 회사가 망가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 이미 유언장에 제가 가진 재산을 3등분해 사회환원과 우리사주조합, 가족에게 각각 나누도록 적어 뒀습니다. 하지만 우리사주조합에 주식을 주면 이 주식이 남지 않고 처분돼 결국 적대적 M&A의 빌미가 되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그래서 유언장을 꼼꼼하고 상세하게 보완했습니다. 운좋게도 저는 살아났지만 그날의 일은 지금의 경영진도 모르는 일입니다."

◆혜택만 받았지…

그는 자식에게 재산은 물려줄 수 있지만 경영권을 물려줘서 안된다고 생각에 KSS해운에 전문경영인 체제를 구축했다. "회사의 경영은 그 회사에 가장 크게 기여한 사람이 맡아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 오너의 자식들은 혜택을 받으면 받았지 회사에 기여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임원을 맡고 대표이사를 하는 것은 안 될 말입니다. 정실인사입니다."

사실 많은 기업인들은 자식에게 독립심을 심어주는 것에 매우 서투르다고 박 고문은 꼬집었다. "일본 원숭이들을 보면, 새끼들을 그렇게 귀여워하다가도 사람들이 먹이를 던져주면 옆으로 내팽개칩니다. 어릴적부터 자기힘으로 독립할 수 있는 습관을 길러주는 거죠. 하물며 사람이라면 원숭이보다 못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자식에게 회사경영을 맡기진 않았지만, 전문경영인 체제를 만드는 것이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고 털어놨다.

"많은 사람들이 아들에게 회사를 물려주지 않으면 자식들이 뭔가 모자란 것이 아닌가 하고 바라봅니다. 보통 스트레스가 아니지요. 자식은 아버지의 등을 보고 자랍니다. 그래서 자식은 설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성애로 가득찬 아내를 설득하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도 결코 주식회사를 가족회사로 만들면 안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관련된 주식회사는 주식회사답게 운영돼야 합니다."

박 고문의 세 아들은 모두 미국유학을 했다. 일체 지원없이 모두 자신들의 힘으로 다녔다. 특히 가운데 둘째 아들은 사업을 한다. 역시 자신만의 힘으로 이뤄낸 결과물이다.

"어느날 둘째에게 `네가 우리 회사를 경영하고 싶다면,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을 만큼 시장에서 주식을 사라`고 농담을 건넸습니다. 그랬더니 `그건 아버지 사업이지 내 사업이 아니지 않아요. 그리고 좋은 주식이 얼마나 많은데요. 전 살 생각 없습니다`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웃음)

◆비워야 흐른다

박 고문은 지난 30여년간의 기업경영과 규제개혁위원장으로서 일했던 경험을 토대로 기업인들이 되새겨 할 이야기도 풀어냈다.

"삼성 등 일류기업들은 산업화 초창기 일본에서 많은 경영시스템을 배워, 오늘날 세계적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시스템만 배워 왔을 뿐, 참된 기업가 정신까지는 가지고 오지 못한 듯 합니다. 예컨대 `마쓰시다�렝� 시스템만 배웠지, 그 정신은 배우지 않은 것입니다."

그는 기업인은 돈만 벌려 하지 말고 마음이 넓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전에 제가 어느 어려운 기업을 인수하려 했을 때입니다. 인수 대상 기업의 오너는 절대 팔지 않겠다고 맞서더군요. 자존심때문이랍니다. 우리 기업인들은 자기 재산을 팔아 새로운 재산을 사는 일에 서투릅니다. 항상 새로 채우려고만 합니다. 경제는 흐름입니다. 따라서 때로는 비울 줄도 알아야 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현안인 출자총액제한제도에 대해서도 한마디했다. "대기업들은 출총제로 인해 투자하기 힘들다고 합니다. 하지만 반드시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그것보다는 현재 대기업 내부의 인식을 정확히 꿰뚫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전에 비하면 많이 개선됐지만, 아직도 대기업에게는 모든 것을 자신들이 갖겠다는 태도가 남아있다는 지적이다. "우수한 중소기업이 납품을 하려하면 '그 좋은 걸 왜 남주나, 우리가 하자'는 식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안하는 일 없이 다 하는 문어발이 됩니다. 만약 출총제가 폐지되면 이런 부작용이 더 불거질 수도 있습니다."

그는 대기업의 계열회사 확장을 정부의 '낙하산 인사'에 빗대서도 설명했다. "대기업의 조직이 커지면 인사 적체가 일어나게 됩니다. 자리가 더 필요하게 되죠. 그래서 더 많은 계열회사를 만들어 본사 임원들이 낙하산으로 내려가게 되는 겁니다. 정부가 해서 안 되는 일이라면 기업도 해서는 안됩니다."

박 고문은 기업의 적대적 인수합병(M&A) 문제에 대한 견해도 밝혔다. "자세히 보면 지분분산이 잘 돼 있고 경영이 깨끗하고 투명한 전문경영인 체제인 기업이 M&A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엄밀한 의미로 볼 때, 우리나라에서 전문경영인 체제인 기업은 대략 포스코, KT&G, KT, 유한양행 등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기업들이 서로 뭉쳐서 투기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자본세력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야 합니다. 그래야 건전하고 바람직한 전문경영인 체제가 우리 사회에 자리잡을 수 있습니다."

<박종규 고문은…>

박종규 KSS해운 고문(71)은 1961년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대한해운공사에서 10년동안 일하다 1970년 KSS해운을 설립했으며, 2002년 고문으로 물러났다. 특수화물운송분야에 뛰어들어 우리나라 해운산업 발전에 기여했다. `바른경제 동인회' 활동을 통해 바른 경영을 위한 사회적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으며, `유서쓰기 운동' 등 다양한 시민사회 활동을 펼쳤다. 규제개혁위원장으로 활동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박창욱기자 pcwpcw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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