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경이 만난사람]"대통령 언행에서 위선이 보여요"

2006. 9. 15.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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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오 한나라당 원내대표

디지털에 능통한 보수신봉자 "자기반성과 외부 수혈이 한나라당의 미래"

경쟁자의 약점이 드러나고 인기가 뚝 떨어지면 상대방의 인기는 반비례해서 올라가게 마련이다. '파탄지경의 국정' '잔여임기 1분도 지겹다' 등의 여론으로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이 10%대로 추락한 지금, 한나라당은 우아하게 미소지으며 내년 대통령선거 때까지 꽃길만 사뿐사뿐 걸어가면 되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 최연희 의원의 성희롱 사건에도, 박성범 의원의 뇌물수수 스캔들에도 끄떡없이 5·31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에 보내준 국민의 뜨거운 사랑이 식고 있다. 한국사회여론조사(KOSI)의 조사결과 6월 말 45.9%였던 한나라당 지지율은 8월 말 34.9%로 떨어졌다. '무조건 한나라당이 싫다'는 '절대혐오층'도 지난해 11월 29%에서 최근에는 31.8%로 늘어났다. '바다이야기' 등 사행성 성인오락실과 청와대 식구들의 스캔들,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논란 등 저절로 차려진 푸짐한 밥상 앞에서 숟가락을 들기는커녕 모래를 뿌려서 '딴나라당' '웰빙 한심당' 등이라는 비난까지 받고 있다.

잘 되는 이유보다 잘 못하는 비결(?)도 궁금해 한나라당의 김형오 원내대표를 찾아갔다. 그 어느 계파에도 속하지 않고 항상 시대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정치인으로 인정받는 김 대표는 '박빠'(친박근혜측) '명빠'(친이명박측)로 나뉘어 저질 공방을 펼치는 당 홈페이지나 계속 삐걱거리는 의원들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갖고 있을까. 계속되는 국회 인사청문회와 상임위회의 등으로 피곤해 목감기에 걸린 김 대표에겐 미안했지만 위로의 말이 아니라 "강재섭 대표와 계속 엇박자라던데…"라고 아픈 곳을 더 찔렀다.

"우리가 월드컵 때 '대~한민국'이란 엇박자를 활용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잖습니까? 일부 언론에서 잠깐 묘사한 거지 엇박자 아닙니다. 당대표와 원내대표가 모든 생각이 일치하면 한 사람만 대표로 두면 되지 왜 두 사람을 두겠습니까. 서로 오해와 불신이 있는 것도 아니고 혼자 결정할 일도 수시로 강 대표에게 상의합니다. 오늘도 동북공정 문제가 예삿일이 아닌 것 같아 5당 원내대표가 모여 동북공정 중단 결의안을 촉구하는 회담을 해야겠기에 강 대표에게 말씀드렸더니 좋은 생각이라고 찬성합디다. 사랑하는 부부 사이에도 늘 의견이 맞는 건 아니잖습니까."

연신 기침을 하면서도 유머감각을 잃지 않는 김 대표는 이번 정기국회에 대한 열의와 기대가 대단했다.

"이번 정기국회는 내년 대선을 고려하면 노무현 정권의 마지막 정기국회이자 마지막 국정감사입니다. 그래서 이번 정기국회에선 특히 민생, 경제, 안보에 중점을 두겠습니다. 서민생활 안정을 위한 감세정책에 중점을 두고 출총제 폐지로 기업이 활동의 폭을 넓힐 수 있도록 해주고 전시 작전통제권 문제로 나라가 혼란스러운데 국가안보 수호 차원에서도 적극 대처할 생각입니다. 또 열린우리당 내부에서도 사학법을 재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만큼 지난번 사학법은 날치기 강행통과된 법이고 여러 가지 독소·위헌적인 조항이 있습니다. 이 법을 가지고는 사학의 자율적인 육성은커녕 사학의 싹을 자를 수도 있습니다. 빈대를 잡기 위해서 초가삼간 태우는 우를 범하는 것을 우리만이 아니라 열린우리당 의원들도 지적합니다. 그래서 반드시 이번 국회안에서 재개정이 해야 합니다."

'시다바리'로 바닥 다져 4선까지

김형오 대표는 4선의원이다. 동아일보 기자로 출발했지만 실력을 인정해준 강연훈 당시 외교안보연구원장의 권유로 외교안보연구원에서 일하다 다시 청와대 비서실로 옮겼다. 전두환 대통령 시절에 4년, 노태우 대통령 밑에서 4개월 등 오랜 기간 청와대 비서실 생활을 했다. '대통령을 보필하기보다 대통령에게 누를 끼친다'는 비판도 받는 참여정부 청와대 비서실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어봤다.

"처음엔 행정관으로 시작했으니 영화 '친구'에서 나온 용어로 표현하자면 '시다바리'로 출발했죠. 하지만 청와대 비서실 사람들은 당시에도 각 부처의 엘리트란 자부심이 대단했고 해야 할 말은 과감하게 전달했습니다. 솔직히 전두환 대통령 시절엔 물러날 때까지 과연 단임제를 지킬까 예측하기 어려워 모두 '단임대통령'을 만들어야 한다는 소명의식이 있었고 실력없다는 소리를 안 들으려고 노력했죠.

이 정부는 '코드'를 중시하는데 코드는 필요충분조건이 아닙니다. 충성도만이 아니라 실력도 중요하죠. 행정능력이 전혀 없는 이들을 청와대 비서들로 앉히니 왜 정부가 있어야 하나 의구심이 들 정도입니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청와대 비서진에서 청와대 주인인 노무현 대통령으로 옮겨졌다.

"노 대통령은 저보다 4년 먼저 바로 옆 지역구에서 국회의원이 됐고 '청문회 스타'가 됐습니다. 대통령의 언행을 보면 솔직을 가장한 위선이랄까, 그런 점이 보입니다. 자신이 부족하다는 걸 숨기기 위해 너무 거친 말로 국민을 놀라게 합니다. 스스로 '분노 때문에 정치를 시작했다'고 했는데 아직도 그 분노가 식지 않았고 피해의식이 너무 큰 것 같습니다. 우리 시대에 사회에 분노를 안 느끼고 성장한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그런데 대통령은 국민간에 생긴 증오와 갈등, 즉 '분노'를 해소하기 위해 그동안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묻고 싶습니다. 소리만 요란한 개혁은 국민의 협조는커녕 냉소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강남 사람들, 좋은 학교 나온 사람들, 미국 등에 대한 분노와 증오가 너무 가득 차 있고 수시로 말을 바꾸어서 정서적으로 대통령을 신뢰하기가 힘듭니다. 국민이 느끼는 불안감도 큰데다가 국제사회에서도 고립될까봐 걱정입니다.

몇 년 전에 외국에 가면 정치인들 가운데 '김대중 대통령은 훌륭한 분인데 왜 그리 비난을 하나'고 묻는 사람도 꽤 많았는데 요즘은 외국 정치인들조차 노 대통령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부족하고 대통령도 결점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국민 마음을 편히 해주었으면 합니다."

전혀 흥분하지 않고 차분하게 청와대 비서실과 대통령에 대해 직격탄을 날리는 김형오 원내대표의 말을 받아 적으면서 그래도 이 참여정부가 권위주의는 확실히 청산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지난 원내대표 경선에서 김형오 대표가 당선됐을 때 언론에서는 그의 능력보다 '(김무성 후보에 비해)박근혜 대표와 덜 친하기 때문'이라면서 어느 계파나 조직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는 정치인이라고 표현했다.

생존의 비결은 배신하지 않는 것

특정 계파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고 조직도 활용하지 않으면서 살벌한 정치세계에서 어떻게 버텨 4선의원에다 원내대표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을까. 그렇다고 혼자 튀는 저격수 스타일도 아니고 소외된 왕따도 아닌데 말이다.

"제가 게으르고 능력이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제가 처음 정치를 시작했을 때는 그야말로 상도동, 동교동, 청구동으로 구분되어 정당원들은 물론 기자들까지 당대표 집에 찾아가 밥도 먹고 눈도장을 찍는 게 문화였지요. 다들 안방정치에 익숙해 있고 누구 집 현관에 더 신발이 많이 놓여 있나로 세력을 비교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런 게 취향에도 안 맞고 정치 발전에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드나들지 않았죠. 평소에 안 가는데 추석이나 설날엔 더더욱 못갔죠. 주변에서 왜 집에 안 찾아가냐, 그러다 공천 못받는다고 걱정해주더군요.

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정치생활을 해온 비결이라면 제가 누구에게도 아첨을 못 했지만 그 누구도 배신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뭐 신세진 게 없어 배반할 일도 없었지만요. 초선 때부터 그저 제 일만 열심히 했는데 몇몇 기자가 그걸 좋게 봐서 의정활동에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고…."

그렇게 게으르다면서 김 대표는 가장 첨단적인 '디지털' 정치인으로 불린다. 2002년, 첫 국정감사장에서 자료가 수북한 다른 의원들의 책상과는 달리 노트북과 CD만 깔끔하게 놓인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의 모습이 주요 일간지 1면을 장식했는데 국회를 디지털화하겠다는 김 대표의 의지가 실현된 모습이었다.

"당시 교통체신위원회가 가장 인기없는 위원회였습니다. 그런데 제 지역구가 영도여서 항만청이 관련된 교체위에서 일해야겠다는 생각에 1지망부터 3지망까지 똑같이 신청했죠. 마침 여야간의 기싸움으로 국회가 두 달 동안 휴업에 들어가 정보통신 전문가에게 과외지도를 받았더니 실력이 늘더군요. 전문가 취급을 받고 나니 공부를 안 할 수가 없어 계속 하게 되고… 10년간 파고드니 디지털 정치인이란 별명도 얻었습니다."

취미가 인터넷 검색이 되었고 인터넷 정보 바다를 샅샅이 뒤지는 그의 능력을 인정받아서인지 그는 지난 지방선거에서 전국의 인재를 샅샅이 찾는 '인재영입위원장'도 맡았다. 스스로 보수주의자, 보수신봉자라고 주장하는 김 대표는 한나라당의 미래 역시 보수정당으로 정책의 이슈를 선점하고 철저한 자기반성과 외부 수혈을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지방선거 이후에 당이 아직도 무기력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선거 승리 역시 냉정하게 생각하면 낙하산인사나 권력형 도박게이트, 전작권의 마구잡이식 단독행사에 따른 이 정부의 오만과 독선과 무능에 대한 반사이익 성격이 짙죠. 우리 스스로의 노력으로 지지도를 끌어올린 점이 무엇인가 생각해봐야 할 때입니다. 한나라당을 두고 일각에서는 야성의 상실, 헝그리 정신 부족, 성장엔진 부재, 웰빙정당이라고 비판한다는 것도 잘 압니다. 국민의 따가운 질책과 여론의 비난에도 꿈쩍도 않는 것은 뻔뻔함이지 용기가 아니죠. 우리 한나라당은 가장 먼저 철저한 자기반성을 하고, 자신감을 되찾고 도덕성을 회복해 국민의 애정과 신뢰를 찾으면 확실히 수권정당이 될 겁니다."

국회가 열리는 동안은 '출근 시간은 있어도 퇴근시간은 없다'며 30분 단위로 쪼개진 스케줄을 소화해내는 김형오 대표. 감기에도 형형하게 빛나는 그의 눈빛처럼 우리나라의 정치 미래도 밝으면 얼마나 좋을까.

<글/유인경 편집위원 alice@kyunghyang.com>

<사진/김세구 기자 k3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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