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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명산 금강산은 그대로 있었다

입력 2006. 12. 27. 09:28 수정 2006. 12. 27.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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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서종규 기자]

▲ 금강산 신계천에 쌓인 눈과 흐르는 물.
ⓒ2006 서종규

금강산엔 지난주에 내린 눈이 많이 쌓여 있었다. 그래서 관광 일정도 변경을 해야만 했단다. 구룡폭포 코스는 관폭정까지만 가능하고 상팔담 등산은 두절되었고, 만물상 코스는 아예 차가 출발할 수도 없었단다. 대신 해금강과 삼일포쪽으로 발길을 돌려야만 했단다.

우리들은 원래 세존봉과 수정봉 산행을 신청하여 금강산으로 출발하였다. 하지만 우리들도 구룡폭포에서 상팔담 오르는 눈길을 내는 것과 만물상 오르는 눈길을 내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지난 주 내린 폭설로 주저하다가 그것도 산행을 신청한 사람들이 찾아와 어쩔 수 없이 길이라도 내어서 가능하게 해 준 것이다.

▲ 금강산 세존봉
ⓒ2006 서종규

산을 좋아하는 '풀꽃산행'팀 83명이 12월23일부터 24일까지 금강산을 찾았다. 북핵 사태로 개성공단과 금강산 사업에 대한 국내외의 여러 가지 어려움들을 극복하고 남북교류와 협력을 이어나가는데 하나의 끈이 되기 위하여 전교조 광주지부가 주최한 '2006 평화실현, 통일염원 광주교사-가족 금강산 통일산행'에 참가한 것이다.

22일(금) 밤 9시에 광주를 출발하여 밤새 강원도 고성까지 달려갔다. 23일 오전 8시20분에 남북출입국 관리소를 지나 북한땅인 금강산에 도착한 것이 오전 9시 경이었다. 숙소에 짐을 내려놓고 곧바로 구룡폭포 코스 등산에 나섰다.

▲ 금강산 옥류담 옆에서 찍은 고드름
ⓒ2006 서종규

구룡폭포 가는 길에 잘 자라고 있는 미인송이 반겼다. 나무 위에는 눈이 쌓여 있지 않았지만 땅에는 많은 눈이 쌓여 있었다. 신계사 앞을 지나 오전 10시20분에 북한 식당 목란관 앞에 있는 주차장에 도착했다.

목란관에서 삼록수 금강문을 지나 옥류동 다리를 건너 연주담, 비봉폭포 앞을 지나갔다. 금강산 계곡엔 많은 눈이 쌓여 있었다. 계곡이 얼어 있는 곳도 있었지만 가끔 흐르는 물이 보이는 곳도 있었다. 바닥까지 훤하게 드려다 보이는 맑은 물이 눈 쌓인 어름 아래로 흐르고 있었다.

구룡폭포도 마찬가지다. 구룡폭포 앞에 있는 정자 관폭정에 오르자 구룡폭포가 한 눈에 들어 왔다. 그런데 구룡폭포의 한 쪽은 아직도 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폭포가 다 얼지 않고 일부의 물줄기가 눈에 들어 왔다.

사진으로는 결코 표현할 수 없는 금강산의 '겨울'

▲ 금강산 옥류담 위를 지나는 다리
ⓒ2006 서종규

관폭정에서 세존봉을 타고 올라야 하는데, 쌓인 눈으로 엄두를 낼 수 없었다. 처음 구룡폭포 코스로 출발할 때부터 포기를 한 것이다. 하지만 상팔담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구룡전망대는 포기할 수 없었다.

일행들은 눈만 가득 쌓여 있는 조그마한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북한 안내원이 앞에서 눈길을 뚫었다. 허리까지 빠지는 눈길을 뚫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다. 계속 이어지는 계단과 비탈엔 더 많은 눈이 쌓여 있었다.

눈길을 뚫고 1시간 정도 올라 구룡전망대에 올랐다.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상팔담은 꽁꽁 얼어 있었다. 눈앞에 세존봉을 비롯하여 여러 봉우리들이 삐쭉삐쭉 솟아 있었다. 바위 바위들 사이사이에 쌓여 있는 눈들이며, 파란 소나무들이 어우러진 금강산은 멀리 동해바다까지 뻗어 있었다. 눈을 뚫고 오른 구룡전망대로 인하여 가슴 벅찬 감동이 밀려왔다.

원래 산행 목표였던 세존봉 능선이 마음을 끌고 가서, 채하연, 월출봉, 일출봉으로 향하게 한다. 그 줄기를 따라 가면 내금강까지 다 내려다 볼 수 있으련만. 산 뒤로 금강산 제일봉인 비로봉이 보일 것 같다. 오르면서 보았던 하얀 눈의 산 비로봉이 바로 저기인 것인데.

▲ 금강산 구룡폭포은 완전히 얼지 않고 일부의 물줄기가 흐르고 있다.
ⓒ2006 서종규

우리들은 다시 내려오기 시작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내려가는 발길이 무거웠다. 군데군데 북한 안내원들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리고 바위에 새겨진 붉은 글씨들도 어색하게 우리들을 배웅하고 있었다.

금강산 산행은 늘 마음 깊이 자리 잡는다. 더구나 겨울 금강산 산행은 더욱 마음 깊이 파고든다. 사진으로 표현할 수 없는 겨울 금강산이 그대로 우뚝 서 있는 것이다. 겨울 금강산 사진이 멋있게 찍혀 나오는 경우가 많지 않은 것 같다. 흰 눈이 가득 내리는 기회를 잡지 않는다면 시커먼 산만 가득한 사진으로 나온다.

그래서 사진을 열심히 찍어대지만 늘 실망한다. 더구나 160mm 이상의 망원렌즈를 가지고 갈 수 없는 곳이다. 그래서 겨울 금강산 사진은 시커멓게 도배되어 촬영된다고 하여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겨울 금강산 사진은 멋이 없다.

하지만 금강산이 멋이 없겠는가? 그 바위 하나하나에 깃들어 있는 금강산의 멋을 어떻게 사진으로 담아 낼 수 있다는 것인가. 사진으로 표현될 수 없는 아쉬움을 마음에 간직해야만 한다.

활기를 되찾고 있는 '금강산 사업'

▲ 금강산 구룡폭포 앞에 있는 정자 관폭정
ⓒ2006 서종규

오후 2시, 북한 식당 목란관에서 점심을 먹었다. 북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이다. 지난 1월에 방문했을 때보다 메뉴가 더 다양해 졌다. 그 때는 냉면과 비빔밥 두 가지 음식만 나왔는데 이번에는 평양 온반, 쟁반국수 등 몇 가지 음식들이 추가되어 있었다.

평양 온반은 닭을 고아서 국물을 낸 것 같았다. 그릇 맨 아래에 밥을 놓고, 그 위에 녹두지짐을 놓고, 그 위에 닭살을 잘게 쪼개서 얹었고, 버섯볶음 등으로 양념을 하였다. 우리나라 닭갈비탕과 비슷한 맛이었다.

▲ 상팔담을 보기 위하여 구룡전망대에 오르는 눈길을 뚫고 있다.
ⓒ2006 서종규

이후 일정들은 이전의 일정과 대동소이하였다. 오후에 평양 모란봉 교예단의 곡예 연기를 볼 수 있고, 금강산 온천에서 온천욕을 즐길 수 있었다. 금강산 온천은 요즈음 남탕과 여탕을 하루씩 바꾸어 관광객을 받고 있다고 자랑하고 있었다.

24일(일) 둘째 날의 일정도 같다. 만물상 코스 등산이나 해금강-삼일포 코스 중 택하여 갈 수 있었다. 일행의 대부분은 만물상 등반에 나섰다. 만물상 주차장까지 포크레인을 동원하여 어렵게 길을 내어 버스를 운행하였단다. 그리고 주차장에서부터 천선대까지 눈길을 내어 가면서 등반하였다고 한다.

▲ 금강산 해금강 만물상의 모습
ⓒ2006 서종규

일부는 해금강 코스를 택하였다. 시원하게 트인 동해바다가 눈앞에 다가왔다. 아직도 많은 물새들이 날고 있었다. 남쪽까지 넘나드는 물새들의 모습, 저기 바로 통일 전망대의 산기슭이 보이기까지 하였다.

해금강에서 다시 삼일포를 향하였다. 삼일포에서 해설을 하고 있는 여자 안내원이 구성진 가락으로 노래까지 불러 주었다. 모두 제창을 외치자 다시 '아내를 위하는 마음'이라는 노래를 불러 많은 박수를 받았다.

금강산을 찾은 본래의 취지에 북한 핵실험으로 위기에 봉착한 남북 연결의 끈을 잇겠다는 통일의 의지를 담았으나 민족의 명산 금강산은 그대로 있었다. 북핵 직후에 거의 끊어 졌던 관광객들도 다시 찾고 있었다. 금강산은 우리 민족이 하나임을 스스로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 금강산 삼일포의 모습
ⓒ2006 서종규

관광 조장인 임대현씨는 금강산을 찾아주는 것이 바로 통일의 밑거름이라고 강조한다. 금강산 사업은 단순한 관광차원을 넘어 민족의 화해와 민족 통일의 기반을 조성하는 사업이라는 것이다. 북한의 핵실험으로 위기에 봉착한 금강산 관광 사업이 다시 활기를 되찾고 있다는 것이다.

"금강산 관광 사업은 남북통일에서 가장 중요한 교류 협력과 신뢰회복의 유력한 수단으로 긴장 완화와 평화통일의 기운을 민족 전체에게 퍼지게 했다고 생각됩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찾아 주시는 것이 바로 그 밑바탕이 되는 것입니다.북측 핵실험 직후 관광객의 발걸음이 거의 끊어졌어요. 어떤 날에는 관광객들이 두 대의 버스 정도 찾은 적도 있지요. 평상시 500~1000여명에 이르던 관광객들이 끊어졌지요. 단풍 절정기에 많은 사람들이 기회를 놓친 것이 안타까웠답니다. 지금은 다시 회복이 되어 500여명 이상이 찾고 있답니다."

임대현씨는 신년 해맞이에 10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다시 금강산을 찾을 것이라고 하였다. 금강산 사업도 다시 활기를 찾을 것이라는 기대다. 그의 기대 속엔 우리 민족의 통일 염원도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져 나가겠다는 희망도 깃들어져 있었다.

▲ 금강산 연주담의 모습
ⓒ2006 서종규

/서종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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