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가는 집시법 개정..'복면금지' 추진

2007. 1. 8.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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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면을 쓰고 집회나 시위에 참가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하 집시법)' 개정안을 두고 인권단체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인권단체들은 이른바 '복면금지'와 같은 일련의 조치들을 헌법이 규정한 집회 시위와 자유를 크게 위축시키는 반인권적 발상으로 규정하고 집시법 불복종 운동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에 나서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이상열 의원 등 국회의원 13명이 제출한 이 법안은 지난해 10월말 국회에 제출,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개정안은 '신분 확인이 어렵도록 위장하는 행위 또는 신분 확인을 방해하는 기물을 소지하여 참가하거나 참가하게 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이를 어기면 1년 이하 징역이나 1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인권단체연석회의 소속 회원 15명은 8일 오전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참여정부 들어 집회·시위의 자유가 오히려 더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면서 "복면금지 개악안을 철회하고 집시법을 전면 재검토하라"고 국회와 경찰에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은 마스크와 목도리, 동물 가면 등의 소품으로 얼굴을 가리고 집회에 참가, 집시법 개정안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박주민 변호사는 "경찰과 국회의 발상은 집회와 시위를 범죄로 예단하는 기본인식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라면서 "허가제와 다름아니게 변질된 집시법 자체의 문제점은 차치하더라도 복면처벌 운운하는 주장은 우리나라 경찰과 국회가 코미디 수준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최근 '복면처벌 논란'이 기폭제가 되기는 했지만 집시법 불복종 운동까지 등장하게 된 이면에는 기존 집시법의 불합리한 조항이 밑바탕이 됐다. 관할 경찰서장의 판단에 따라 문제가 될 수 있는 집회를 사전에 금지할 수 있는 집시법 12조와 단속근거가 모호한 '현저한 일탈 행위 금지' 규정 등은 대표적인 불합리 규정으로 개선의 목소리가 높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가 2004년 현행 집시법(당시 개정 집시법)이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낸 헌법소원은 현재 헌법재판소에서 심리가 진행 중이다.

인권단체들은 반 FTA 시위와 각종 노동집회가 많았던 지난해부터 정부의 집회·시위에 관한 정책방향이 심각한 인권침해 일변도로 흐르고 있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9월 경찰청이 발표한 '집회 시위 현장조치 강화지시'는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이후 연말까지 각종 집회 신고들이 무더기로 불허 통보를 받으며 이름만 신고제일 뿐 경찰의 판단에 따른 허가제로 변질됐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경찰은 또 지난해 11월30일 FTA 반대 범국민운동본부(이하 범국본)의 1차 국민대회가 폭력시위였다는 점을 들어 "이후 범국본의 모든 집회 신고를 허가하지 않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폭력시위를 주도한 단체에 대해 집회를 금지할 수 있다는 집시법 조항을 근거로 제시했지만 이 역시 집시법 조항을 지나치게 경찰에 유리하게 해석한 인권침해적인 조치로 비판받았다.

민주노총 권두섭 변호사는 "경찰에서 독일의 사례를 들어 복면금지 방안을 지지하고 있지만 독일을 제외한 전세계 어느 국가에서도 이런 제도를 시행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집시법은 '금지통고' 하나만으로도 심각한 인권침해적 요소를 가진 만큼 집시법 전반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집시법 개정안은 공식적인 경찰의 입장이 아니라 국회의 몫"이라면서 "하지만 과격 불법시위가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이런 방법을 강구해야 할 필요성은 충분히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호준기자 hj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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