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더맨도 무색케 할 다뉴세문경
전북 완주 갈동유적 다뉴세문경 2점 발굴
'거미줄 공예품'..촘촘하게 새긴 가는 줄무늬가 특징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명경지수(明鏡止水)라는 말은 전국시대 말기에 완성된 장자(莊子) 중의 덕충부(德充符)라는 곳에서 처음 출현한다. 밝고 맑음이 거울이나 고요한 물과 같다는 뜻이다.
거울을 지칭하는 '鏡'이라는 말에 '金(금)'이 들어가 있다고 해서 그 재료를 황금으로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금이라면 장자 시대에는 은(銀), 동(銅)까지 포괄했다. 실제 장자가 말하는 명경 또한 동경이었음은 각종 출토 유물을 통해 알 수 있다.
장자와 비슷한 기원전 3-2세기 한반도에서도 다뉴세문경(多紐細紋鏡)이라는 동경이 유행한다. 연구자에 따라서는 정문경(精文鏡)이라고도 하는 다뉴세문경은 촘촘하게 새긴 가는줄무늬가 특징이다.
이 동경은 첨단을 구가하는 요즘에도 복원이 어려울 정도로 제작기법이 정밀하다.
1971년 12월21일 국보 141호로 지정된 숭실대박물관 소장 다뉴세문경(지름 21.2㎝)은 출토지를 알 수 없어 아쉬움을 주긴 하지만, 줄무늬만 1만300여 개, 동심원 무늬는 100여 개를 표현했다. 스파이더맨도 무색케 할 만한 '거미줄 공예품'인 셈이다.
스파이더맨이야 실을 뽑아내 집을 만든다지만, 2천수백년 전 이 땅에 살던 사람들은 청동을 주물해 그 보다 더 세밀한 거울을 만들어 사용한 것이다.
호남문화재연구원이 최근 전북 완주 갈동유적에서 발굴한 다뉴세문경 2점 또한 찬탄을 자아낸다.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역임한 한국청동기시대 전공 이건무 용인대 교수는 "숭실대박물관 소장 다뉴세문경에 버금가며 당장 문화재로 지정해도 손색이 없다"고 평가했다. 육안 관찰이 힘들 만큼 질서정연히, 그리고 촘촘히 돋을새김한 가는줄무늬는 대형 돋보기를 통해 들여다 보면 더한 경탄을 자아낸다.
다뉴세문경을 관찰한 일반인 대다수는 과연 저것이 거울일 수 있겠느냐고 의아심을 표시하곤 한다. 이번 갈동유적 다뉴세문경만 해도 상태가 아주 양호한 편에 속한다고 하지만, 막상 거울 역할을 하는 앞면에 얼굴을 비춰 보면 거울이라고 할 만한 수준에는 크게 못 미친다.
그러기에는 동경은 너무나 어둡고 또 색깔 또한 온통 시커멓다.
문화재보존과학자인 이오희 한국전통문화학교 석좌교수는 "지금은 녹이 슬어 시커멓게 보이지만 갖 만들어냈다고 생각하면 유리거울 못지 않은 훌륭한 거울이 된다"고 말한다.
그에 의하면 다뉴세문경은 정밀한 성분분석이 이뤄진 적이 없다. 이를 위해서는 파괴 분석이 필요하지만 현재까지 30점 안팎이 보고된 드문 유물을 함부로 깨뜨릴 수는 없는 일이다.
다만, 숭실대박물관 소장 국보 다뉴세문경은 몇 년 전 비파괴 분석이 이뤄진 적이 있다. 그 결과 주석 비율이 상당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많게는 주석이 30-40%나 검출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성분 분석이 완벽을 기했다고는 할 수 없다. "파괴분석이 아니라 동경에 슨 녹을 떼어내 분석한 결과이기 때문"이라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갓 구워낸 다뉴세문경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주재료인 구리는 붉은 빛이 돌지만 여기에 주석 비율을 높이면 백색이 많이 나타난다고 한다. 이 때문에 다뉴세문경 원료를 백동(白銅)이라 표현하는 글이 매우 많다.
이 교수는 "요즘 과학에서 말하는 백동이란 니켈 합금이기 때문에 다소간 문제가 있다"면서도 "다만 흰색이 돌았기 때문에 옛날 사람들이 백동이라 표현한 경우도 더러 있다"고 소개했다.
2천년이 훨씬 지나 우리 앞에 선 다뉴세문경이 시커먼 빛을 보이는 까닭 또한 "확실치는 않으나 주석으로 인한 녹으로 추정할 뿐"이라면서 "다뉴세문경이 훌륭한 거울임을 확인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그대로 재현해 보는 방법이 있으나 이 조차 쉽지는 않다"고 이 교수는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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