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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른 한국문학 '그리운 김소진'

입력 2007.04.20. 05:11 수정 2007.04.20. 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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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커버스토리 / 작가 김소진 10주기 추모

작가 김소진(1963~1997)이 우리 곁을 떠난 지 22일로 꼭 10년이 된다. 1963년 음력 12월 3일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에서 태어난 김소진은 1997년 양력 4월 22일 새벽 서울 연희동의 한 한방병원에서 숨을 거두었다. 향년 34의 풋풋한 나이였다.

1991년에 등단해 1997년에 세상을 뜨기까지 불과 6년여의 활동 기간 동안 김소진은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글을 썼던 다산의 작가였다. 그 사이 그의 소출은 소설집 네 권, 장편 2편과 미완성 장편 하나, 콩트집 2권, 동화 1권, 산문집 1권에 이른다. 그러나 김소진 소설의 의미와 가치를 양적인 측면에서만 찾아서는 곤란하다. 그의 활동기는 80년대를 풍미했던 공동체적 윤리감각이 90년대의 개인주의에 자리를 내준 시기와 겹친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청년기이자 습작기였던 80년대의 문학관을 의연히 작품 속에서 견지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80년대적 교조까지도 답습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여전히 민중에 대한 애정을 지니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지만, 결코 민중을 맹목적으로 신격화하지는 않았다. 그는 우리 사회가 더욱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믿음을 소설 속에 담았지만, 그런 당위에 꿰어 맞추느라 현실의 복합성을 호도하지는 않았다. 한마디로 김소진은 80년대적 가치를 90년대적 현실에 적합한 방식으로 구현하고자 애쓴 작가였다. 80년대 문학의 '전통'을 지양함과 동시에 90년대 문학의 새로운 '주류'와도 분명한 거리를 둔 그는 차라리 2000년대 문학의 선구자로 불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34살, 6년간의 창작인생 접다

그러나 그 없는 세월이 10년의 두께를 쌓아 가는 동안 '김소진'이라는 이름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점차 희미해져만 갔다. 그의 사후에 등장한 젊은 독자들은 물론 그와 동시대를 호흡했던 '늙은' 독자들조차 더 이상 그의 소설을 읽지 않으려는 듯하다. 그가 죽음의 방문을 받고 더는 소설을 쓰지 못하게 되자 독자들 역시 그의 소설 읽기를 그만두기로 작정이나 한 듯이. 그의 10주기를 맞아 남은 이들이 펴낸 추모문집의 제목이 <소진의 기억>(문학동네 펴냄)이라는 것은 그런 점에서 적절해 보인다. '소진(金昭晋)의 기억'은 지금 '소진(消盡)의 기억'이 되어 버렸으므로.

그러나 <소진의 기억>의 편자들(안찬수 정홍수 진정석)이 썼다시피 김소진 문학은 오히려 지금 시점에서 더 큰 의미를 지니는 것일 수도 있어 보인다.

"중심에서 배제된 주변부적인 것들에 대한 이 작가의 생리적인 애착과 공감은 잘 알려져 있지만, 김소진 소설 역시 문단의 주류나 문학적 평가의 중심에서는 어느 정도 벗어나 있는 편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중심에서 한 걸음 비껴나 자기만의 독자적인 세계를 밀고 나간 김소진의 소설이야말로 1990년대 이후 한국문학의 어떤 편향과 맹목을 되비쳐주는 하나의 거울과도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2007년 현재 시점에서 김소진을 다시 읽어보는 일은 의례적인 추모 행위를 넘어 한국소설의 좌표를 점검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당대적 실천의 일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편자들이 고인의 대학 친구들이자 절친한 문우들이라서 하는 얘기만은 아니다. <소진의 기억>에 실린 문인 30명의 글들에서 김소진 문학에 대한 그런 평가는 두루 확인된다.

80년대 공동체 가치 구현한 90년대 비주류"맹목·편향된 오늘의 문단 되비추는 거울"문인 30명 소설로 시로 산문으로 '추모문집'잃어버린 '김소진 폴더' 복구 나섰다

유희석 전남대 영문과 교수는 '김소진과 1990년대'라는 제목의 평문에서 △김소진 소설 속의 민중은 1970년대 미아리 산동네 사람만이 아니라 21세기 오늘의 민중이 겪는 희노애락의 표정까지를 고스란히 담고 있으며 △김소진의 '후일담'은 이념과 탈이념 사이에서 중심을 잡으려 애쓰는 '반후일담적 후일담'이고 △단편 <열린 사회와 그 적들> 등에서는 변혁운동의 관료화 징후와 기층 민중의 주변화를 감지했으며 △중편 <목마른 뿌리>에서 보다시피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의 한반도 상황에 대한 예측까지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 김소진 문학의 21세기적 의미가 있다고 진단했다. 평론가 김형중씨 역시 '비루한 것들의 리얼리즘'이라는 글에서 비루한 존재들의 위계 없는 등장과 발언으로 특징지어지는 김소진 소설의 리얼리즘이야말로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회통'이 운위되는 이즈음의 문학 상황을 선구적으로 구현한 형태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래 및 후배 소설가들이 산문과 소설의 형태로 표한 애정 또한 지극하다. 후배 작가 천운영씨는 '쥐덫과 쥐잡기'라는 제목의 산문에서 생전에 일면식도 없었던 김소진과의 기묘한 인연을 털어놓는다. 대학을 마치고 다시 입학한 예술대학 문창과에서 그가 생애 처음으로 쓴 소설의 제목이 '쥐덫'이었다. "집 안에 득실거리는 쥐를 잡기 위해 곳곳에 쥐덫을 놓으며 시간을 보내는 실직한 가장"과 운동권 아들의 이야기. 스스로 만족해하며 친구에게 보였더니, 그가 읽어 보라며 권한 소설이 김소진의 등단작인 <쥐잡기>였다. 아직 등단하기 전인 후배 작가는 <쥐잡기>를 미처 읽어 보지 못한 상태였거니와, 두 소설은 제목과 설정, 그리고 몇몇 구절까지가 흡사했던 것. "선점이라는 게 이거구나, 더 많이 읽어야 이런 일이 없겠구나, 습작소설과 작가가 쓴 소설은 이렇게 차이가 나는구나." 복잡다단한 생각이 밀려들었다. 씁쓸한 생각과 아울러, 언젠가 등단하게 되면 만나서 할 얘깃거리 하나가 마련되었다는 생각에 재미있어하기도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선배는 후배 작가의 등단(2000년)을 기다려 주지 않았다.

절친한 문우였던 시인 안찬수씨는 "동트기 전/새 울음소리를/듣고 있는 게/나 혼자는 아니다"(<블랙마운틴에서>)라는 말로 친구를 그리워했고, 후배 시인 장철문씨는 "동구 밖으로 가듯이 지평선으로 가듯이/멀어져갈 때,/그냥 내버려두었다/잔을 놓는 벗의 겉옷을 집어주듯이/그때 내 상반신이 튀어나와 꺼이꺼이 울며/달아나는/그림자를 따라가 붙잡으려 했다/나는 뒤에서 내 허리를 꽉 껴안았다"(<2005년 4월, 마르세유>)며 애써 슬픔을 다독였다.

후배 작가들이 쓴 헌정 소설들도 흥미롭다. 김중혁씨는 <무방향 버스­리믹스 '고아떤 뺑덕어멈'>이라는 단편에서 김소진의 소설 <고아떤 뺑덕어멈>의 첫 두 문장과 마지막 두 문장을 자신의 소설 속 첫 두 문장과 마지막 두 문장으로 써먹는 식으로 선배 작가에 대한 '오마주'를 시도했다. 윤성희씨는 김소진 소설들에 구멍을 통해 훔쳐보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는 점에 착안해 <구멍>이라는 단편을 썼다. 김중혁 소설에서 어머니가 '무방향 버스'를 타고 사라지는 데 비해 윤성희 작품에서는 아버지가 어느 날 문득 생의 블랙홀(구멍)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는 비슷한 설정이 등장한다는 점은 가외의 재미를 준다.

50여명 문우, 21일 묘소참배

'그에게 바치는 '쐬주' 한잔'이라는 산문을 기고한 선배 작가 이혜경씨는 생전의 김소진과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다. 그런 그가 추모문집에 글을 보탠 것은 "이 인연으로라도 그의 묘지에 '쐬주' 한잔 올리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이혜경씨는 21일 낮 경기도 용인에 있는 고인의 무덤(김소진의 사후 거처는 용인공원묘원 63번지 5-310이다)에서 바랐던 대로 소주 한잔을 바치게 될 것이다. 이혜경씨말고도 은희경 성석제 김연수 김중혁 윤성희씨 등 50여 명의 문우들이 이날 묘소 참배에 동행할 예정이다. 시인 김정환씨가 추모시 <김소진, 죽은 지 십 년>을 낭송하고, 천운영씨는 문제의 <쥐잡기>의 일부를, 전성태씨와 윤성희씨는 각각 <고아떤 뺑덕어멈>과 <눈사람 속의 항아리>의 일부를 낭독한다.

"혹 지금의 우리는 집단적으로 김소진이라는 이름의 폴더를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추모문집에 실린 평론가 이경재씨의 글 '아버지의 진실'의 한 대목이다. 그러나 추모문집과 추모모임이 이어지면서, "자기 목숨을 앞당겨 글을 씀으로써 소진"(이혜경)한 김소진의 10주기가 아주 쓸쓸하지는 않게 될 모양이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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